그 아파트에 한 번 온 이삿짐 직원, 30대 주부는 왜 죽였을까
도박빚 홍덕표 이사 도왔던 집 침입 주부 살해 [사건속 오늘]
18년째 '생활 반응' 없는 용의자…죽거나 불법 밀입국 가능성
- 신초롱 기자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2006년 5월 8일 월요일 오전 9시 30분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의 한 아파트에서 38세 주부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 집에서 일하던 가사도우미는 이날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자 잠겨 있지 않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던 A 씨의 얼굴은 멍이 들어 있었고 목에는 목욕 타월이 감겨 있었다. 몸에는 흉기에 찔린 자상이 24곳에 달했다. 성폭행 등의 흔적은 없었다.
A 씨는 가족들이 모두 나간 뒤 홀로 집에 있었던 상황으로, 안타깝게도 이날은 A 씨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추정 시각 '우당탕' 소리…현금·귀중품 그대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먹던 커피가 쏟아져 있던 점과 현금이나 귀중품이 사라지지 않은 점 등을 미뤄보아 면식범에 의한 사건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A 씨의 집에는 누군가 빨래통을 뒤진 흔적과 남성용 점퍼가 남아 있었다.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같은 시각 우당탕하는 소음이 들렸다고 진술했다.
사건 초기 남편이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범행 추정 시각 출근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수사에서 제외됐다.
◇CCTV 속 의문의 남성…13층 내렸다 환복 후 도주
경찰이 확보한 아파트 CCTV에는 수상한 남성이 찍혀 있었다. 남성은 계단을 오르며 주위를 살피다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주먹을 쥐고 버튼을 눌렀다.
13층에 내린 남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옷차림이 바뀌어 있었다. 그가 입었던 점퍼는 피 묻은 채 A 씨 집에 놓여 있는 것과 일치했다.
경찰은 남성이 여러 집을 물색하지 않고 13층 A 씨의 집을 타킷으로 정했다는 점에서 미리 계획한 범행일 것이라 추측했다.
남성과 안면이 있던 A 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문을 열었고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 현관 밖 계단으로 도망쳤지만, 금세 다시 잡혀 와 끝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또 남성이 범행 후 피 묻은 옷을 벗고 빨래통을 뒤져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실제로 아파트 계단에는 A 씨의 혈흔이 묻어 있었고 집 안에는 피 묻은 양말 자국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가족과 이웃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남성을 안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뒤 A 씨의 혈흔이 묻은 계단 부근에 떨어져 있던 성인 오락실 이름이 새겨진 라이터를 발견하게 된다.
경찰은 해당 오락실 직원으로부터 남성이 단골이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동시에 남성이 남기고 간 점퍼에서 DNA를 확보해 내는 데 성공했다.
◇도박장 드나들던 40대 홍 씨…돈 때문에 범행 가능성
경찰은 용의자로 1961년생 홍덕표를 특정했다. 홍 씨는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였다. 그는 사건 전 피해자 A 씨 가족의 이사를 도운 적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친척과 지인 말에 따르면 홍 씨는 어린 시절 일찍 부모와 헤어진 데다 다른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심지어 27세 때까지 무적자 신분으로 살았다. 일정한 직업 없이 일용직과 배달 일을 하며 돈을 벌거나 여자 친구 집에서 동거하며 용돈을 받아 생활해 왔다. 도박장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그는 상당한 도박 빚도 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경찰은 도박 빚으로 인해 돈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A 씨의 집에 침입한 것으로 추정했다. 빚을 지고 있는 와중에 A 씨 집 이사를 돕게 됐고, 집을 옮기면서 집 구조를 쉽게 파악한 뒤 범행을 계획했을 것이라 추정했다.
◇ 흔적 없이 사라진 홍 씨, 18년째 수배자 명단에 남아
범인의 신원을 파악해내는 데 성공한 경찰은 곧 그를 잡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홍 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사건은 18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홍 씨는 범행 이후부터 자주 들렀던 도박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직장도 그만뒀다. 지인들과도 연락을 모두 끊었다. 자신의 명의로 된 휴대전화도 없는 데다 의료 진료 기록, 카드 사용 내역, 금융 거래 내역, 휴대전화 사용 내역도 조회되지 않고 있다.
2000년 8월 1일 이후 살인 사건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대한민국 수배자 명단에 포함돼 있는 상황이다. 홍 씨는 키 175㎝에 마른 체형으로, 앞머리 숱이 적은 편이고 목소리가 유독 가늘고 팔자걸음이 특징이다.
일각에서는 홍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으며, 신분을 숨기고 어딘가에서 살고 있거나 중국, 필리핀 등지로 불법 밀입국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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