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이어지는 서울광장 논란…"집회 보장해야" vs "광장 시민의 것"
'일정 중복' 이유로 '관 행사' 중심 개방…시민사회 반발
4월 18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서울도서관 행사로 잡혀 있어
- 이기범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이 20주년을 맞았지만 개방성을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행사와의 '일정 중복' 등을 이유로 집회나 시위가 제한되면서 '광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조례에 따라 신고를 수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3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서울광장에서는 현재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행사는 지난달 18일부터 오는 11월 10일까지 매주 목·금·토·일 열리게 돼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연간 계획에 따라 해당 행사를 잡아 놓은 상태다.
문제는 이 같은 지자체 행사가 광장 사용을 선점하면서 집회 및 시위를 비롯해 시민사회의 다른 행사가 열릴 여지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해당 행사에 밀려 서울광장 개최가 무산됐다. 지난달 12일 서울시는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를 열고 오는 31일 개최 신고가 들어온 '서울퀴어문화축제'(서울퀴어축제조직위), 'Boost your youth 청년충전'(다시 가정으로 무브먼트), '책 읽는 서울광장'(서울도서관) 등 3건의 행사 중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가 서울광장 전체를 쓰는 것으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전후 행사의 연속성 및 효율성" "사전에 협의된 대외기관과의 신뢰성" 등을 고려해 이같이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관이 광장을 독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광장이라는 곳은 공공의 장소,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시민 축제 행사를 열 수 있어야 하는데 4월에서 11월까지 도서관 행사로 채워져 있다"며 "서울광장이 관 주도 행사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같이 심의에 올랐던 단체도 저희 행사를 반대하는 곳임에도 시민 사용 공간을 관이 독점하는 행태에 대해선 비판적인 의견을 같이했다"고 덧붙였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있던 2020~2021년을 제외하고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매해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다른 행사에 밀려 서울광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됐다.
지난해 6월 민주노총은 서울광장을 사용하겠다며 신고서를 냈지만 서울시는 '잔디 관리'를 이유로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사용신고 불수리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시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광장 사용이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서울시는 원칙대로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전에 광장 사용 신청을 하면 기본적으로 수리하는 게 원칙인데 사용 희망일이 중복됐을 때 실무적인 조정을 하고, 조정이 안 되면 열린광장심의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광장 사용일 90일 전부터 5일 전까지 신고서를 제출하면 원칙적으로 이를 수리하도록 돼 있다. 사용일이 중복될 경우 신고를 누가 먼저 했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며 또 행사 우선순위 기준이 들어가게 된다.
우선순위는 △국가 또는 지자체 주관 행사 △집시법상 집회 신고를 마친 행사 △문화·예술행사 △어린이 및 청소년 관련 행사 등이다.
또 필요시 연례 행사의 경우 연간 30일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광장 사용신고 및 수리방법을 따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로 서울광장을 11월까지 이용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미리 위원회에서 열기로 한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 일수는 20여 일밖에 안 된다"며 "나머지 날짜는 서울도서관 측의 계획일 뿐 사용 신청서를 제출하면 원칙대로 처리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불허한 이번 위원회 심의에서는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가 2023년 서울시민이 뽑은 10대 뉴스 중에 1위를 차지했다"며 시민들 수요와 해당 행사가 해외 기관들과 사전에 협의돼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우선했다.
앞으로도 11월까지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다른 행사가 같은 이유로 밀릴 수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광장에서 지나치게 집회 및 시위가 열리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집회가 잦은 서울 광화문에서 회사를 다니는 강 모 씨(38·여)는 "출근길에 집회나 시위를 자주 보게 되는데 농성을 벌이거나 과격한 시위는 오히려 시민들의 자유로운 광장 이용을 막는 부분이 있고, 아이들에게도 보기 좋지 않은 거 같다"고 말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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