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에서 옷 갈아입고 화장실도 없어…필수노동자는 말뿐이죠"

5·1 노동절 생활폐기물 청소노동자 인터뷰…"무시·천대 당연시"
안전사고도 빈번…음주 차량이 들이받아 다리 절단되기도

전남 여수시 환경미화원이 생활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인간답게 살 수는 없죠."

저녁 9시 출근, 아침 6시 퇴근. 서울 구로구에서 8년 차 재활용폐기물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김영수 전국민주일반노조 구로구 환경지회장(53)의 일상이다. 밤낮이 바뀐 생활은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김 씨는 "가족 간 대소사를 챙기기 어려운 건 물론이고 은행이나 관공서도 갈 수가 없다"며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비만, 당뇨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뇌출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된다"고 말했다.

작년 노동절인 5월 1일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서울시 환경미화원 A 씨가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A 씨는 부검 결과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 확인돼 산재 인정을 받았다. 2022년 8월에는 환경미화원 B 씨가 뇌경색을 진단받아 산재 일부 승인을 받았다. 야간작업으로 인한 만성 수면 부족은 뇌혈관질환이나 심혈관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씨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6일 구로 1구역(구로 1·3·4동, 가리봉동)에서 재활용폐기물을 수거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휴게시간이 1시간으로 정해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의 쉬지 못한다. 업무량에 비해 인력은 부족한 데다 쉴 곳도 마땅치 않다. 깊은 밤에는 화장실조차 찾기 어렵다. 하루에 총 2만 5000보씩 걸으면서 중간에 10여 분씩 한숨 돌리는 것이 전부다.

백수현 금천구 환경지회장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깥에서 하루 종일 일하다 보니 어느 건물 처마 밑에서 잠깐 허리를 펴는 정도"라며 "바람을 피하고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쉼터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백 씨는 "노조가 생기면서 금천구는 그나마 쉼터가 하나 생겼는데 열 평 남짓한 공간을 30~40명이 쓰고 있다"며 "구로구는 휴게실조차 없어서 지금도 다리 밑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 씨는 "노조에서 아무리 쉴 곳이 필요하다고 요구해도 길바닥에서 쪼그려 앉아서 쉬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돌아오니 노동자들은 계속 자존감이 떨어지고 무시와 천대를 받아도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한탄했다.

인천광역시 서구 원창동의 한 도로에서 1톤 차량이 5톤 쓰레기 차량을 추돌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위험천만한 순간도 많다. 폐기물 부피를 줄이려 발로 밟다가 깨진 유리나 날카로운 금속에 찔려 발바닥이 찢어지기도 한다. 백 씨는 "작년에는 일반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유리가 들어 있어 수거차 내부 돌아가는 기계에 눌려 '팍'하고 깨지며 튄 적도 있었다"며 "그 앞에 있던 노동자 분은 얼굴을 다 못 쓰게 됐다"고 전했다.

백 씨는 "봉투 겉면에 위험하다고 표시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고 야간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며 "몸을 쓰는 일이니 근골격계가 안 아픈 사람이 없지만 약을 먹어가며 일할 정도"라고 했다.

취객과 시비가 붙어 폭행당하거나 음주 차량과 사고가 나는 일도 빈번하다. 구로구에서는 작년 7월 쓰레기 수거 차를 뒤에서 들이받은 음주 운전 차량 때문에 발판 위에 서서 가던 노동자가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후 노조에서는 수거차 발판을 없애고 노동자들이 타고 내리기 쉬운 저상차 도입을 지자체에 요구하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을 듣기 일쑤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배달 음식이 늘었고, 배출되는 재활용폐기물의 양도 배로 증가했지만 인력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라고 김 씨는 지적했다.

김 씨는 "업무가 과중하면 우리도 한두시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기도 하는데 구청은 눈 뜨고 나면 깨끗하니까 인원이 적정하다고 보는 것"이라며 "아침 8~9시에 도로변과 주택가에 생활폐기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서울시가 필수노동자로 선정한 분야 중 하나다. 하지만 백 씨는 "말뿐인 필수노동자"라고 자조했다. 그는 "고생한다며 커피 한 잔이라도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일단 청소한다고 하면 깔아보는 시선이 있다"고 토로했다.

김 씨도 "일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너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고 수군거리는 말도 들어봤다"며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인데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위축되고 이 일을 창피하게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추석 연휴동안 수거된 일반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전문가들은 구청의 생활폐기물 수거의 70% 이상이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는 구조 자체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위탁 업무를 맡은 청소업체에서 유령 노동자를 내세워 인건비를 빼돌리는 등 불법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청에는 30명으로 등록해 놓고 실제로는 27명으로 운영하는 식이다.

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에서는 사각지대에 놓인 생활폐기물 청소 관리감독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는 민간 위탁 운영구조로 인해 청소 행정이 비리의 온상이 되고 관리 비용이 중복되면서 예산 효율성이 더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손익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동대표변호사는 "청소 행정의 위탁 구조를 전면 재검토하고 직영이나 시설관리공단의 공영으로 해야 한다"며 "노동권 보장을 넘어서서 풀뿌리 민주주의 문제까지 결부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