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 지난 라면 주고 감기 방치해 폐렴…시설엔 자유가 없다"

탈시설 장애인 이수미씨가 말하는 시설 생활 15년
서울시의회, '탈시설 조례 폐지안' 이번주 중 표결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회원들이 정부의 UN 장애인권리협약과 탈시설가이드라인의 원칙 준수와 이행을 촉구했다. 2023.4.13/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장애인은 아무 죄 없이 갇혀 살아도 되나요."

이수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62)는 '시설은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지체장애 1급으로 탈시설 장애인인 그는 활동 보조를 받으며 완전히 자립한 사례다.

시설에 들어가기 전 40여 년을 집에서 갇혀 지냈고 이후 15년을 시설에서 갇혀 지냈다는 이 대표는 "사회가 어느 정도 장애인이 살 만큼은 돼야 하지 않겠나"고 되물었다.

현재 서울시의회가 '탈시설 조례 폐지안'을 심사 중인 가운데 장애계 내부에서 '탈시설'을 둘러싼 갈등이 치열하다. 해당 조례 폐지안은 지난해 5월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이하 부모회)가 약 3만 명의 서명을 모아 주민조례로 청구한 것으로 이번주 전체 시의회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맞춤형 돌봄서비스를 국가가 지원하는 '탈시설 정책'을 주장하는 반면, 부모회 등 장애인부모단체는 현실적으로 부족한 복지시스템을 고려할 때 자립할 수 없는 중증 발달장애인은 시설 거주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시설 조례에 대한 찬반은 엇갈리지만 '장애인 권리 보장'이라는 목적은 같다. 양측은 꼭 평행선을 달려야만 할까. 이 대표는 "국가가 방법을 못 찾고 대책을 안 세우면서 부모에게 떠넘기고 부모는 또 시설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어떤 경위로 시설에 들어갔나.

▶어렸을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얻었다. 지체장애 1급으로 부모님이나 할머니가 업고 다녔는데 자라면서는 학교도 갈 수 없었다. 41년 동안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어머니도 나이가 들고 활동지원사 제도도 없던 시대라 2001년에 스스로 선택해서 시설에 들어갔다.

-시설 생활은 어땠는지.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재래식 2층이라 내려올 수도 없었다. TV도 없었고 한 방에 네다섯 명이 생활하는데 누군가 감기에 걸리면 다 옮는다. 약을 사다 주지 않아 개인적으로 사서 먹어야 하는데 혼자 먹을 수도 없고. 그래서 감기에 걸렸다 나아도 다른 사람한테 옮아 또 걸리더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원들이 '자립생활 권리 쟁취 전국 집중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2022.10.19/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병에 걸려도 제대로 보살핌이 안 되는 시스템인가.

▶시설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폐렴에 걸리고 천식이 왔다. 숨이 턱 막히니까 그때야 병원에 데려가더라. 봉사자가 와야 목욕할 수 있었고 머리도 일주일에 한 번이나 감을 수 있었나.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나.

▶개인 생활이 전혀 없었고 눈치가 많이 보였다. 식사도 열악하다. 라면이 후원 물품으로 많이 들어오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지 너무 오래돼 기름에 전 냄새가 났다. 도저히 먹을 수 없어 안 먹었더니 시설장 사모가 "밥 굶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 걸 안 먹으면 어떡하냐"고 잔소리했다.

-어떤 심정이었는지.

▶사소한 말이지만 계속 들으니까 자존감이 많이 깎이고 무력감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해도 이용자 의견은 들어주지 않고 오로지 운영진 편의에 맞춰 생활해야 한다. 나한테 들어오는 수급비도 시설에서 관리하고 내가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시설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만든다고 이용자가 자기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나. 나는 누구를 만나고 싶으니 오늘 몇 시까지 들어오겠다, 그렇게 할 수 있나. 자유가 없다. 누구든 그렇게 가둬놓으면 스트레스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긴 코로나 시기에 격리 1~2주만 해도 다들 답답해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걸 다른 사람한테 견디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나. 집안에만 있으면 사람이 무기력해진다. 감옥에 있는 것처럼 사회성도 떨어지고 자기주장도 못 하고 선택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국가가 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일 텐데.

▶발달장애인도 놀이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과 계속 소통해야 돌발 행동이 줄어든다. 돌발 행동은 욕구 표현을 못 하니까 거칠게 행동하는 건데 시설에서는 더 거칠게 그걸 제압한다. 하루 종일 안정제를 먹여 무기력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자립할 수 있었던 계기는.

▶2016년에 시설이 폐쇄하면서 자립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서울에 있는 단기 보호센터에 갔다. 센터를 전전하며 돈을 모으고 지인한테도 일부 빌려서 2019년에 작은 아파트 월세를 얻어 완전히 자립했다. 지금은 국민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회원들이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단체는 해당 조례가 무연고 중증장애인을 거주 시설에서 내몰게 하는 강제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2023.12.10/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탈시설에 반대하는 분 중에는 국가가 24시간 돌봄 사업을 외주로 주면 전장연이 받아서 하려고, 이권 때문에 탈시설을 주장하는 것 아니냐는 분도 있다.

▶전장연은 100% 모금으로 돌아간다. 정부 돈을 받는 건 없다. 그건 음모론에 불과하고 오히려 시설 쪽이 공무원이나 지역 유지와 연관된 곳이 많다. 지방 토착 뿌리가 깊다.

-가족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설에서 알아서 잘해주겠거니 믿고 보내는 건가.

▶봉사자가 오거나 부모님 오는 날은 깔끔하게 옷도 입히고 신경 쓴다. 잘 지내고 있냐고 물으면 잘 지낸다고 해야 한다. 나도 시설에서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말을 아예 안 했다. 시설은 장애인에게 혜택이 가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시설장에게 정부 보조금이 간다. 땅을 넓히고 시설이 커져도 장애인에겐 여전히 폐쇄적이다.

-자유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건가.

▶아무 죄 없이 평생을 시설에서 갇혀 살아야 하고 시설장 한마디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시설로 가야 한다. 말썽 피운다고 생각되면 더 안 좋은 시설로 보내려고 한다.

-중증 발달장애인처럼 자립이 불가능한 경우 오히려 부모님이 시설 유지에 찬성하는데.

▶시설 폐쇄법을 만든 해외에서는 중증장애인이 다 어디로 갔을까. 물론 부모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회피다. 국가가 방법을 못 찾고 대책을 안 세우면서 부모에게 떠넘기고 부모는 또 시설에 떠넘기는 것 아닌가.

-현실적으로 시설에서 나와 혼자 살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까.

▶시설을 없애자고 해도 금방 되는 게 아니다. 유럽 국가들도 시설 폐쇄까지 가는 데 20년 걸렸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장하는 이유는 그래도 이게 정책적으로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서다. 사회가 어느 정도 장애인이 살 만큼은 돼야 하지 않을까.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