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 지난 라면 주고 감기 방치해 폐렴…시설엔 자유가 없다"
탈시설 장애인 이수미씨가 말하는 시설 생활 15년
서울시의회, '탈시설 조례 폐지안' 이번주 중 표결
- 박혜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장애인은 아무 죄 없이 갇혀 살아도 되나요."
이수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62)는 '시설은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지체장애 1급으로 탈시설 장애인인 그는 활동 보조를 받으며 완전히 자립한 사례다.
시설에 들어가기 전 40여 년을 집에서 갇혀 지냈고 이후 15년을 시설에서 갇혀 지냈다는 이 대표는 "사회가 어느 정도 장애인이 살 만큼은 돼야 하지 않겠나"고 되물었다.
현재 서울시의회가 '탈시설 조례 폐지안'을 심사 중인 가운데 장애계 내부에서 '탈시설'을 둘러싼 갈등이 치열하다. 해당 조례 폐지안은 지난해 5월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이하 부모회)가 약 3만 명의 서명을 모아 주민조례로 청구한 것으로 이번주 전체 시의회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맞춤형 돌봄서비스를 국가가 지원하는 '탈시설 정책'을 주장하는 반면, 부모회 등 장애인부모단체는 현실적으로 부족한 복지시스템을 고려할 때 자립할 수 없는 중증 발달장애인은 시설 거주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시설 조례에 대한 찬반은 엇갈리지만 '장애인 권리 보장'이라는 목적은 같다. 양측은 꼭 평행선을 달려야만 할까. 이 대표는 "국가가 방법을 못 찾고 대책을 안 세우면서 부모에게 떠넘기고 부모는 또 시설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어떤 경위로 시설에 들어갔나.
▶어렸을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얻었다. 지체장애 1급으로 부모님이나 할머니가 업고 다녔는데 자라면서는 학교도 갈 수 없었다. 41년 동안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어머니도 나이가 들고 활동지원사 제도도 없던 시대라 2001년에 스스로 선택해서 시설에 들어갔다.
-시설 생활은 어땠는지.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재래식 2층이라 내려올 수도 없었다. TV도 없었고 한 방에 네다섯 명이 생활하는데 누군가 감기에 걸리면 다 옮는다. 약을 사다 주지 않아 개인적으로 사서 먹어야 하는데 혼자 먹을 수도 없고. 그래서 감기에 걸렸다 나아도 다른 사람한테 옮아 또 걸리더라.
-병에 걸려도 제대로 보살핌이 안 되는 시스템인가.
▶시설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폐렴에 걸리고 천식이 왔다. 숨이 턱 막히니까 그때야 병원에 데려가더라. 봉사자가 와야 목욕할 수 있었고 머리도 일주일에 한 번이나 감을 수 있었나.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나.
▶개인 생활이 전혀 없었고 눈치가 많이 보였다. 식사도 열악하다. 라면이 후원 물품으로 많이 들어오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지 너무 오래돼 기름에 전 냄새가 났다. 도저히 먹을 수 없어 안 먹었더니 시설장 사모가 "밥 굶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 걸 안 먹으면 어떡하냐"고 잔소리했다.
-어떤 심정이었는지.
▶사소한 말이지만 계속 들으니까 자존감이 많이 깎이고 무력감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해도 이용자 의견은 들어주지 않고 오로지 운영진 편의에 맞춰 생활해야 한다. 나한테 들어오는 수급비도 시설에서 관리하고 내가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시설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만든다고 이용자가 자기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나. 나는 누구를 만나고 싶으니 오늘 몇 시까지 들어오겠다, 그렇게 할 수 있나. 자유가 없다. 누구든 그렇게 가둬놓으면 스트레스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긴 코로나 시기에 격리 1~2주만 해도 다들 답답해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걸 다른 사람한테 견디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나. 집안에만 있으면 사람이 무기력해진다. 감옥에 있는 것처럼 사회성도 떨어지고 자기주장도 못 하고 선택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국가가 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일 텐데.
▶발달장애인도 놀이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과 계속 소통해야 돌발 행동이 줄어든다. 돌발 행동은 욕구 표현을 못 하니까 거칠게 행동하는 건데 시설에서는 더 거칠게 그걸 제압한다. 하루 종일 안정제를 먹여 무기력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자립할 수 있었던 계기는.
▶2016년에 시설이 폐쇄하면서 자립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서울에 있는 단기 보호센터에 갔다. 센터를 전전하며 돈을 모으고 지인한테도 일부 빌려서 2019년에 작은 아파트 월세를 얻어 완전히 자립했다. 지금은 국민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탈시설에 반대하는 분 중에는 국가가 24시간 돌봄 사업을 외주로 주면 전장연이 받아서 하려고, 이권 때문에 탈시설을 주장하는 것 아니냐는 분도 있다.
▶전장연은 100% 모금으로 돌아간다. 정부 돈을 받는 건 없다. 그건 음모론에 불과하고 오히려 시설 쪽이 공무원이나 지역 유지와 연관된 곳이 많다. 지방 토착 뿌리가 깊다.
-가족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설에서 알아서 잘해주겠거니 믿고 보내는 건가.
▶봉사자가 오거나 부모님 오는 날은 깔끔하게 옷도 입히고 신경 쓴다. 잘 지내고 있냐고 물으면 잘 지낸다고 해야 한다. 나도 시설에서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말을 아예 안 했다. 시설은 장애인에게 혜택이 가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시설장에게 정부 보조금이 간다. 땅을 넓히고 시설이 커져도 장애인에겐 여전히 폐쇄적이다.
-자유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건가.
▶아무 죄 없이 평생을 시설에서 갇혀 살아야 하고 시설장 한마디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시설로 가야 한다. 말썽 피운다고 생각되면 더 안 좋은 시설로 보내려고 한다.
-중증 발달장애인처럼 자립이 불가능한 경우 오히려 부모님이 시설 유지에 찬성하는데.
▶시설 폐쇄법을 만든 해외에서는 중증장애인이 다 어디로 갔을까. 물론 부모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회피다. 국가가 방법을 못 찾고 대책을 안 세우면서 부모에게 떠넘기고 부모는 또 시설에 떠넘기는 것 아닌가.
-현실적으로 시설에서 나와 혼자 살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까.
▶시설을 없애자고 해도 금방 되는 게 아니다. 유럽 국가들도 시설 폐쇄까지 가는 데 20년 걸렸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장하는 이유는 그래도 이게 정책적으로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서다. 사회가 어느 정도 장애인이 살 만큼은 돼야 하지 않을까.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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