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결혼 꿈꾼 무기수 5일간 휴가, 청혼 거절하자 "헛되다" 유서
19년 만에 외출한 홍승만 야산서 숨진채 발견 [사건속 오늘]
'사랑에 구걸 말자' 메모…펜팔 애인 혼인 신고 거부에 충격
- 소봄이 기자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씨, 저 먼저 갑니다…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
19년간 모범수로 활동한 덕에 4박 5일 귀휴 혜택을 얻은 '무기수' 홍승만(당시 47)이 사라졌다. 경찰의 수사망을 유유히 빠져나간 그가 발견된 곳은 경남 창녕군의 한 야산이었다.
8일간 탈주극의 끝은 '극단 선택'이었다. 2015년 4월 29일, 변사체로 발견된 홍승만 옆에는 모든 걸 자포자기하는 심정의 이 같은 유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20년 전 40대 여성 잔혹 살해한 홍승만, 무기징역 선고받았다
앞서 홍승만은 27세였던 1995년 11월 29일 낮 12시쯤 경기 하남시의 김 모 씨(여·당시 44) 주택에서 김 씨를 살해했다. 범행 당시 홍승만은 1988년 강도 살인 미수죄로 7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지 4개월 만이었다.
홍승만의 범행 수법은 잔인했다. 김 씨의 손발을 결박한 뒤 숨을 거둘 때까지 넥타이로 목을 졸랐다. 이어 증거 인멸을 위해 사체를 이불로 덮고 불을 질렀다.
심지어 김 씨가 몸에 지니고 있던 금목걸이와 손가락에 끼고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 그리고 핸드백에 들어있던 예·적금통장 3개와 도장을 훔친 뒤 267만원을 인출해 유흥비로 탕진했다.
당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홍승만에 대해 살인, 절도, 사체손괴, 현주건조물방화미수,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사기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홍승만은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그는 이혼녀인 김 씨가 성관계와 무리한 동거를 요구하고, 이에 불응하면 동네에 소문내 장가를 못 가게 하겠다고 협박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검찰도 홍승만의 형이 죄에 비해 가볍다며 항소했다. 결국 두 항소 모두 기각됐고,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그랬던 홍승만이 교도소에서 180도 달라졌다. '모범수'로 변했다.
◇자격증에 학위 딴 '모범수'…4박 5일 '귀휴' 받았다
홍승만은 19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각종 자격증을 8개 정도 따고, 검정고시를 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방송통신대학을 진학해 중어중문학을 이수, 학사 학위까지 땄다.
그뿐만 아니라 홍승만은 수형 생활 중 징벌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모범적으로 생활했다고. 그러던 중 홍승만은 모친이 뇌출혈로 쓰러졌다며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영치금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홍승만에게 '귀휴' 혜택이 주어졌다. 귀휴는 복역 중인 재소자가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채우고 교정 성적이 우수한 모범수일 경우에 1년 중 20일 내에서 귀휴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징역 21년 이상을 선고받은 유기수 또는 무기수는 7년을 복역해야 한다.
교도소 내의 귀휴심사위원회가 이를 결정하는데, 홍승만의 경우 어머님의 병세 악화와 모범수라는 점이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홍승만은 2015년 4월 17일, 친형의 신원보증 각서로 교도관의 동행이나 감시 없이 나갈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어머니 병원비로 쓰겠다'는 이유로 교도소의 승낙을 받아 영치금 전액인 250만원을 갖고 나갔다.
하지만 '4박 5일 귀휴'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귀휴 첫날인 17일, 그는 서울 송파구의 큰형 집으로 향했다. 이튿날, 경기도 안양에서 지인을 만나고 그날 저녁엔 가평으로 가 가족을 만났다.
셋째 날엔 어머니가 사는 하남으로 이동했고, 복귀 전날 다시 큰형 집으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홍승만은 하루 4통의 전화로 교도소에 동선을 꼬박꼬박 보고했다.
교도소 측은 모범수 홍승만을 믿었다. 어머니 병문안을 간다는 그가 설마 도주하랴 싶었다. 하지만 홍승만은 복귀 당일인 21일 오전 7시쯤 '복귀하겠다'는 마지막 전화를 남기고 돌연 자취를 감췄다.
◇'펜팔 애인' 만나 "혼인신고 하자" 청혼…거절당하자 '잠적'
알고 보니 홍승만은 어머니에게 10원 한 장 주지 않았다. 어머니를 위한 귀휴가 아니었다.
특이점은 홍승만이 만난 경기도 안양 '지인'이었다. 이 지인은 홍승만이 교도소에서 6~7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인 사이로 발전한 여성 A 씨였다.
홍승만은 큰형과 함께 20일 오후 A 씨의 자택을 찾아간 것이었다. 교도소에서 A 씨에게 한 차례 청혼했던 홍승만은 이때도 "혼인신고를 하자"며 재차 청혼했다. 하지만 A 씨는 이를 거절했다.
홍승만이 혼인신고에 매달린 이유 중 하나는 '가석방'이었다. 재소자가 혼인신고를 했을 경우 보호 관계가 성립돼 가석방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는데, 홍승만은 이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홍승만은 심리적인 충격을 받은 것일까. CCTV 속 그는 21일 오전 7시30분쯤 송파사거리에서 다급하게 택시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이동, 기차를 타고 강원도 동해로 향했다. 이후 동해에서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갔다.
부산에서는 범어사역 인근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기도 했는데, 그의 방에선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흔적을 지운 것이다.
결국 교정 당국은 홍승만 잠적 이틀 만인 23일 '170㎝ 키에 70㎏ 체격, 안경을 착용 중'이라는 수배 전단을 전국에 배포하고 1000만원의 현상금을 걸어 공개 수배했다.
홍승만은 24일 부산시 금정구 남산동 일대 거리를 배회했고, 울산시 울주군 언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이 난항을 겪고 있던 그때, 경남 창녕군의 한 사찰에서 '남성이 실종됐다'는 70대 여성의 신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그 누구를 원망하지도 말자"…8일간 귀휴 끝, 극단 선택
이에 따르면 홍승만은 25일 경남 양산시 장마면에 위치한 통도사 입구에서 B 씨(여·당시 78)를 만났다. 그는 넘어지려는 B 씨를 돕다가 B 씨가 경남 창녕군의 한 사찰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거주할 곳이 없었던 홍승만은 B 씨에게 "사찰에서 며칠만 머물러도 되겠냐"고 물었고, 허락을 받아 TV와 이불만 있는 작은 손님방에서 머물게 됐다.
이틀 뒤인 27일 오전 10시쯤, 홍승만은 B 씨에게 "등산 가도 되겠다"며 사찰 뒤편으로 올라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B 씨는 자기 사위를 통해 인근 경찰에서 홍승만을 실종 신고했다.
경찰은 법무부와 공조, 500여명을 동원해 경남 창녕군 장마면 산지리에 위치한 성지산 일대를 수색했다. 그 결과, 29일 오후 4시20분쯤 성지산 중턱에서 노끈으로 목을 매 극단 선택한 홍승만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홍승만의 시신을 발견한 마을 주민 김 모 씨는 산지마을 길가에서 오후 3시50분쯤 산으로 가는 길을 묻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겨 200여m 따라가다가 '억'하는 소리를 듣고 현장을 확인,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승만이 머문 방안에 파란색 티셔츠와 모자, 현금 80만원이 보관된 가방 등 소지품과 함께 메모지 3장이 남아 있었다.
메모지에서 홍승만은 "어머니, 형님, 누님, 막냇동생 등 모두에게 죄송합니다. ○○씨(A 씨) 먼저 갑니다"라고 적었다. 다른 메모지에는 "그 누구를 원망하지도 말자. 조용히 가자. 세상에, 사랑에, 아등바등 구걸하지 말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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