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죽이려 했는데 동생을…다시 돌아와 13차례 난도질 후 "잘가라"
울산 자매 살해 김홍일 '연인 사이' 망상에 스토킹[사건속 오늘]
범행 후 55일간 산속 도피, 무기징역 선고…"나가면 여자 사귈 것"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매의 부모와 친구들은 "김홍일을 '1심과 같이 사형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작성, 2만 7000여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은 뒤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고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부장판사 이승련)에 냈다.
2012년 5월 15일 항소심 재판부는 "국민들의 법 감정과 범죄 억제 기능 등을 고려하면 원심과 같이 사형에 처할 사정이 있다"면서도 "다른 유사 사건의 일반적 양형과의 균형 등에 비춰보면 이 세상에서 피고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며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그러자 방청석에 있던 유족들과 친구들은 "이럴 순 없다, 어떤 죄를 지어야 사형을 선고하느냐"고 울부짖었다.
◇ "날 사랑하고 있다, 우린 사귄 거야…이루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망상이 빚은 참극
김홍일(1986년생)은 2012년 7월 20일 울산 중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자매 A 씨(1986년생)와 B 씨(1989년생)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 후 9월 13일 체포될 때까지 55일간 도피 생활을 이어갔던 김홍일은 경찰에서 "2008년 7월 A 씨 부모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부터 A가 나를 좋아했다, 우린 3년여 동안 사랑했다. 그런데 나를 배신했다"며 살해 동기를 밝혔다.
하지만 이후 경찰조사 결과 김홍일이 A 씨를 일방적으로 좋아했을 뿐 두 사람이 사귄 적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과 경찰은 망상에 빠진 김홍일이 '나를 찼다, 용서할 수 없다'는 결론을 스스로 만들어 낸 뒤 분노 속에 2012년 7월 19일 저녁 흉기를 구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 새벽 시간 가게 일로 부모 집 비운다, 그때…가스 배관 타고 침입
2008년 4월 병역의무(전경)를 마친 김홍일은 그해 7월 울산 중구에 있는 A 씨 부모의 주점에서 5개월가량 아르바이트하면서 본 A 씨에게 푹 빠졌다.
이따금 A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던 것에 대한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던 김홍일은 2012년 7월 17일 동생 B 씨의 SNS에 '앞으로 볼 일 없을 것'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A, B 씨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늘 하던 스토킹이구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망상에 젖은 김홍일은 'A가 눈앞에 사라지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고 작정, 7월 19일 저녁 구입한 흉기를 품고 20일 새벽 A 씨의 집(다세대 주택 2층)으로 향했다.
새벽길에 나선 건 A 씨 부모가 주점을 운영하는 관계로 집을 비운다는 점을 노린 것.
7월 20일 새벽 3시쯤 집 외벽에 설치된 가스 배관을 타고 들어간 김홍일은 거실 소파에서 누워 자고 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 동생을 언니로 착각 무자비하게 살해…동생 비명에 놀라 뛰쳐나온 언니
새벽 3시 17분쯤 김홍일은 소파에서 자고 있던 동생 B 씨를 A 씨로 착각, 흉기를 꺼내 무자비하게 휘두른 뒤 서둘러 집을 빠져나갔다.
자기 방에서 자고 있다가 동생의 비명에 놀라 밖으로 뛰어나온 A 씨는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던 B 씨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A 씨는 새벽 3시 18분 무렵 119에 전화를 걸어 "동생이 죽어가고 있다, 피를 많이 흘린다, 빨리 와달라"고 하소연했다.
◇ 언니 119 신고 소리에 되돌아온 김홍일, 13차례나 흉기 휘두른 뒤 '잘 가라' 한마디
A 씨의 비명은 집 밖으로 나가던 김홍일의 발길을 되돌리게 했다.
다시 빌라로 돌아온 김홍일은 자신이 살해한 이가 언니가 아니라 동생임을 알고 A 씨를 향해 무려 13차례나 흉기를 휘둘렀다. 그때가 새벽 3시 20분을 막 넘기던 순간이었다.
김홍일은 경찰 조사에서 "A 씨가 숨을 거둘 때 그래도 '잘 가라'는 말은 해줬다"고 해 형사들을 놀라게 했다.
A 씨 신고를 받은 119는 경찰에 공조요청 없이 앰뷸런스만 보내 김홍일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했다.
◇ CCTV 통해 김홍일 확인…원주, 경북 칠곡, 부산 기장 등으로 도망
119 대원의 '살인 사건 발생'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주변 CCTV에서 동네를 빠져나가는 김홍일의 모습을 찾아냈다.
이를 갖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신원 확인을 하는 한편 A 씨 부모에게도 CCTV 장면을 보여줬다.
A 씨의 아버지 C 씨는 '우리 가게에서 일했던 사람이다'며 단번에 알아봤지만 정확한 이름은 기억해 내지 못했다.
경찰이 김홍일이라고 특정하게 된 건 7월 23일 오전으로 CCTV를 본 자매의 친구, 네티즌들이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경찰은 7월 23일 오전 9시 김홍일을 전국에 지명수배하는 한편 김홍일의 동선 추적에 나섰다.
그 결과 김홍일이 7월 21일 강원도 원주-경북 칠곡을 거쳐 7월 22일 부산 기장으로 돌아온 사실을 알아냈다.
◇ 함박산 부근에 차량 버리고 도주…헬리콥터, 수색견 동원했지만 행방 묘연
경찰은 7월 24일 오후 부산 기장의 폴리텍대학 기숙사 주차장에서 김홍일의 차를 발견, 주변 함박산(457.8m)과 천마산(418.4m) 일대를 수색했다.
헬리콥터, 대규모 경찰력, 수색견까지 동원했지만 김홍일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 자매 가족과 친구들 수배 전단 나눠주고 붙이고
A, B 씨 자매 부모와 친척들은 휴가를 내고 함박산 일대를 돌면서 김홍일을 찾아 나섰다.
친구들도 수배 전단을 들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한편 부산, 기장, 울산은 물론 포항까지 가 요소요소에 수배 전단을 붙였다.
자매 부모와 친척, 친구들은 2012년 9월 6일 울산 중구 백양사에서 '극락왕생'을 비는 49재를 올렸다.
그 정성 덕분인지 김홍일은 49대를 지낸 1주일 만에 붙잡혔다.
◇ 함박산에서 중턱에서 노숙하던 김홍일, 70대 버섯 채취꾼이 발견
김홍일을 발견한 이는 70대 버섯 채취꾼으로 2012년 9월 13일, 함박산 중턱에서 자는 그를 보고 '누구냐'고 물었다.
김홍일이 "노숙자"라고 둘러댔으나 노숙자치곤 너무 젊은 점을 수상히 여긴 약초꾼은 서둘러 산을 내려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형사대와 기동타격대를 총출동시켜 함박산 중턱을 수색, 김홍일을 검거하는 한편 그가 먹고 버린 캔커피 36통, 생수 31통, 빵봉지, 사이다 2캔 등을 수거했다.
김홍일은 함박산 송전탑 공사에 나선 인력들의 음식물을 훔쳐 먹으며 연명했다고 털어놓았다.
◇ 현장검증…울부짖음, 계란과 소금 투척 아수라장
2012년 9월 15일 A 씨 자매의 빌라에서 진행된 현장검증엔 유족, 친지, 친구, 주민들이 '저놈 죽여라'며 몰려 들었다.
김홍일을 태운 경찰 차량이 들어오자 A 씨 친구들은 경찰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 창문을 두들기며 분노를 나타냈고 유족들은 김홍일을 향해 계란과 소금을 투척하는 등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다.
유족들의 울부짖음에도 김홍일은 별다른 감정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대법원 "검찰은 무기징역이 가볍다는 이유로 상고할 수 없다"
김홍일은 2013년 1월 25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이에 불복 항소했다.
2심인 부산고법은 그해 5월 15일 △ 초범인 점 △ 범행동기에 참작할 여지가 있는 점 △ 범행을 시인한 점 △ 나이 등을 볼 때 교화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들어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에 검찰이 상고했으나 2013년 7월 25일 대법원은 "검사는 사형, 무기징역, 징역 10년형 이상이 선고된 경우 형이 가볍다는 이유로 상고하면 안 된다"며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 정신 못 차린 김홍일 "20년만 살면 가석방 가능, 나가서 여자 만나야지"
현재 옥살이 중인 김홍일에 대해 감방 동료들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증언을 했다.
김홍일에 감방에서 "20년쯤 살면 가석방된다" '20년 뒤면 나간다" "출소하면 여자도 사귈 거야"라는 등 반성은커녕 후일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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