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에겐 집도 사주고 우린 뭐냐" 아들이 아버지 토막 살해

집에서 홀로 범행, 가족들은 모른 채 매년 제사까지 지내[사건속 오늘]
공사장에 버린 사체 못찾아…공소시효 11개월 앞 기소, 시신 없는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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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08년 3월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안양 초등생 납치 토막 살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흉악범들을 우리 곁에 둘 수 없다'며 분노 여론이 들끓었고 각종 범죄, 실종 사건에 대한 제보가 경찰에 쏟아졌다.

오늘 소개하는 사건도 그에 따른 결과물이다.

◇ 아버지 토막 살해한 아들…공소시효 11개월 남기고 재판에

2008년 5월 7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조은석 부장검사)는 존속살해 혐의로 A 씨(1966년생)를 구속 기소했다.

A 씨는 1994년 4월 초 서울 동작구 자기 아파트에서 아버지 B 씨(당시 64세)와 말다툼하다가 격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이 아슬아슬했던 건 살인 공소시효 만료 11개월을 남긴 상태에서 기소됐기 때문이다.

◇ 이 사건 공소시효는 2009년 4월…사체유기 혐의는 공소시효 완성으로 기소 못해

살인 공소시효는 2007년 12월 21일 이전에는 15년이었다가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공소시효가 2007년 12월 21일부로 25년으로 늘어났다. 이때 '이법 시행 이전의 범죄는 종전 규정 적용'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이에 따라 A 씨가 1994년 4월 초 범행을 저질렀기에 공소시효는 2009년 4월 초까지로 11개월 뒤 붙잡혔다며 재판에 넘길 수 없었다.

살인 등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2015년 7월 31일부터 시행된 이른바 태완이법에 따라 공소시효가 없어졌다.

A 씨는 존속살해 혐의로는 기소됐지만 또 다른 범죄는 사체유기 혐의는 공소시효(7년)가 완성돼 기소를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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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외도 일삼고 툭하면 아내에게 폭력…가족간 불신의 벽

B 씨는 젊은 시절부터 외도를 일삼고 툭하면 아내를 때리는 등 가족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광폭함을 보고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고 자란 A 씨와 여동생 C 씨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가슴 한켠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다.

A 씨는 20살이 넘자 아버지에게 대들기 시작했고 C 씨는 아버지가 보기 싫다며 집을 나가 독립했다.

◇ 내연녀에게 빌딩 사준 아버지, 아내에게 이혼까지 요구하다가 아들 손에

1990년 초 A 씨는 아버지가 건물 임대료와 보증금으로 내연녀에게 빌딩을 사준 사실을 알았다.

'이젠 자식이고 뭐고 없이 내연녀에게 재산을 넘기려 한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은 A 씨는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뒤 급기야 폭력을 행사하고 말았다.

다 자란 아들의 힘을 당할 수 없었던 B 씨는 공포감에 휩싸여 방 밖 출입을 삼갈 정도였다.

그러던 중 1994년 4월 초 A 씨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이렇게는 못 산다. 이혼하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부부싸움에 A 씨가 끼어들자 가족들은 부자만 남겨놓고 C 씨 집으로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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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살해 후 토막 낸 뒤 아파트 재개발공사 현장에 몰래 버려

A 씨는 힘으로 아버지를 윽박지르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흉기를 꺼내 아버지를 살해. 시신을 토막낸 뒤 비닐로 감싸 자기 방 붙박이장에 넣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피 냄새와 핏자국 등을 발견했지만 '아버지는 어디 가셨나'를 차마 묻지 못했다.

얼마 뒤 A 씨 붙박이장에서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까지 봤지만 애써 외면했다.

A 씨는 아버지 B 씨 시신을 더 이상 집에 두기 힘들게 되자 밤을 틈타 집주변 아파트 재개발 공사 현장에 몰래 버렸다.

◇ 가족들 실종신고…살해 다음 해부터 제사 지내

A 씨 가족들은 B 씨가 살해당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누구도 묻지 않았고 얼마 뒤 경찰에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며 실종신고를 했다.

이어 1995년 봄부터 가족끼리 B 씨 제사를 지내는 선에서 침묵의 타협을 봤다.

하지만 B 씨의 내연녀, 지인들은 '갑자기 없어질 사람이 아닌데'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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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소시효 만료 1년 앞두고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경찰에 신고

경찰은 B 씨를 실종자 명단에 올려놓고 행방을 찾았지만 뚜렷한 단서가 없자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겨 놓았다.

그러던 중 안양 초등생 토막 살해 사건 뒤 경찰에 실종 사건 제보가 폭주했고 B 씨 사건도 그중 하나였다.

B 씨의 지인은 "아버지가 14년 전 실종돼 행방이 묘연하고 아들도 일정한 직업 없이 술과 도박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장기 미제 사건, 실종사건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A 씨와 가족을 불러 B 씨 행방을 추궁했다.

가족들은 △ 아버지가 실종된 날 집 벽지에 묻은 핏자국을 봤다 △ A 씨 붙박이장에서 썩는 냄새가 났다고 진술했다.

이에 A 씨는 "내가 그랬다. 그동안 괴로워 몇몇 친구들에게 대충 털어놓기도 했다"며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A 씨 친구도 '시신 유기를 도와 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 시신 없는 살인, 자백만으로 기소…1,2심 모두 징역 12년형

검찰은 B 씨 시신을 찾기 위해 A 씨가 지목한 재개발 아파트 현장을 찾았으나 이미 아파트가 빽빽하기 들어서 유골 한 점이라고 수습할 길이 없었다.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이지만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A 씨, 가족들, A 씨 지인 진술 등을 토대로 공소유지를 자신했다.

A 씨는 1심에서 징역 12년 형을 선고받아 항소했지만 2008년 11월 14일 항소심인 서울고법 형사11부(재판장 이기택 부장판사)는 "수사를 받을 때부터 1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범행을 시인했고 가족과 지인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범죄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유죄로 본 1심 판단이 맞다고 했다.

항소심은 "A 씨가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고 범행 후 14년간 죄책감에 시달린 점을 고려하더라도 아버지를 살해한 죄는 무거워 1심 형량이 결코 부당하지 않다"며 역시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A 씨는 2020년 5월 7일 만기 출소했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