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년]"한 사람이라도 기억한다면 바뀌지 않을까요?"
4·16 기억교실엔 눈물 짓던 추모객…유족 옆에 섰던 마을 주민들
지역 연례 행사가 된 화분 나눔…미래 꿈꾸는 단원고 학생들
- 박혜연 기자, 이기범 기자
(서울·안산=뉴스1) 박혜연 이기범 기자 = "세월호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다른 모든 부모들이 유가족분들과 거의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지난 12일 방문한 경기도 안산시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마련된 단원고 기억교실에는 많은 추모객 중 쉴 새 없이 눈물을 짓던 한 여성이 있었다.
안산에서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 모 씨(46)는 "그때 저 또한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었고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조금 더 안전한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 원형 그대로 보존된 아이들의 교실
기억교실은 참사로 돌아오지 못한 2학년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에게 가족·친지와 시민들이 단원고 교실에 남긴 선물과 메모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시설이다. 천진난만한 낙서가 적힌 책상을 비롯해 대학 입시준비 게시물 등이 모두 옮겨져 있어 한때나마 꿈을 꾸며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던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경찰관이 꿈이던 여학생의 자리에는 경찰 제복이 곱게 개어진 채 놓여 있었고, 유골로도 끝내 돌아오지 못한 한 남학생의 자리에는 추운 바닷속을 걱정하듯 따뜻한 목도리가 남아 있었다. 책상마다 예쁜 조화로 채워진 2학년 7반 교실은 33명 중 단 한 명만이 탈출해 생존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이 씨는 수년간 안산에서 살았지만 기억교실을 방문한 것은 이날 처음이라고 했다. 이 씨는 "가까이 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와볼 엄두가 안 났다"면서도 "그래도 마주해야 할 사건이고 제가 단단해야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여기 데려와서 설명을 해줄 수 있으니 용기를 냈다"고 했다.
희생자 중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학생을 봤다고 말하는 이 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 씨는 "둘째가 고등학생인데 아침저녁으로 '다녀올게' '다녀왔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끔 아이들이 어디 가서든 안전했으면 좋겠다"며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면 지금까지 10년을 노력한 유가족분들의 뜻이 이어지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 유족을 위해 나선 다섯 마을 주민들…10년의 세월과 기억
세월호 참사는 학교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동네에서 자주 얼굴을 마주치며 오고 가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단원고가 있는 고잔동을 비롯해 반월동·와동·사동·일동 등 다섯 마을에도 큰 상흔이 남았다. 주민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정신적으로 무너진 유족들을 도우려 나섰다.
유족들이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할까 봐 반월동 어머니들은 밥상 나눔을 시작했고, 일동 주민들은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금요일마다 촛불을 들었다. 사동에서는 마을 청소년들이 4·16을 주제로 공연을 올리거나 고래가 날아다니는 마을 지도를 그리며 연대감을 쌓아나갔다.
처음 임시 분향소가 생겼던 와동에서는 주민들이 이웃 대화 모임을 만들어 금기시됐던 4·16 세월호 이야기를 풀어내고 펑펑 울며 트라우마와 슬픔을 나눴다. 4·16을 추모하는 마을 문화제가 열리면 마을 가게마다 십시일반으로 소소한 물품들을 지원했다.
고잔동 주택가 한가운데에 마련된 4·16 기억전시관은 이런 다섯 마을의 지난 10년 세월을 보여주는 전시를 시작했다. 원래는 희생된 아이들이 자주 다녔던 PC방이었다는 이 장소는 2015년 유가족협의회와 활동가들의 사무실로 쓰이면서 개조됐다.
일반 시민으로 이번 10주기 전시 기획단에 참여했다는 윤은정 씨(56)는 "마을마다 공통점은 가족들이 혼자 있지 않게 하려는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여러 표현 방법을 계속 만든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그렇게 한 번 아이들을 잃었는데 또 잃지 않으려면 그 기억을 계속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나온 만큼 추모 역사가 깊은 고잔동 빌라촌은 현재 재개발을 앞두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윤 씨는 "이 동네는 스카이라인이 낮아서 마을 같은 느낌인데 재개발로 3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로 꽉 차버리면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안 날 것 같다"며 "이 전시관도 시민분들이 많이 찾아주는 공간이 돼야 나중에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라도 계속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자"…꽃기린 화분 나누며 세월호 기리는 주민들
기온이 30도까지 오르며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14일, 단원고 앞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화분 나눔 행사가 진행됐다.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이 자유롭게 참여해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며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메모로 남기고 화분을 받아 갔다.
"저 세월호 뭔지 알아요!" "2014년 4월 16일에 언니 오빠들이 탄 배에 빵꾸가 나서 많이 죽었어요!" 아이들의 큰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한 건 기자 혼자였을까.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며 희생자들을 위해 추모 메시지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나무에 직접 쓴 편지를 매달고 자랑스럽게 화분을 받아 즉석 사진까지 찍는 아이들 모습엔 구김살 하나 없었다.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들부터 교회 선생님의 독려에 못 이기는 척 나온 사춘기 청소년, 지팡이를 짚고 잠시 공원에 산책을 나온 노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천막 아래 옹기종기 모여 북적거렸다.
처음 이 행사는 세월호 1주기 당시 단원고 재학생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마을 꽃집을 열고 노란 꽃을 나눠주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연례 행사로 굳어지면서 안산시 곳곳에서 주민들이 함께하는 작은 축제가 됐다.
이날은 특별히 10주기를 추모해 '기다림'을 의미하는 노란 꽃 대신 빨간 꽃기린 화분 300개가 나왔다. 장유진 선부 종합사회복지관 팀장은 "꽃기린의 꽃말은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자'는 의미"라며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으로 쓰인 나무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단원고 옆 명성교회에서 청소년부 교사를 맡고 있는 김종철 씨(48)는 당시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 중 절반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됐다고 했다. 김 씨는 "저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까지 내려갔었지만 참사가 뭔가 규명되고 해결되는 느낌보다는 묻혀가는 것처럼 보여서 안타깝다"며 "자꾸 되새김하면서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고 개선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생존자 아버지 장동원 씨(55)는 "아픔을 기억해달라는 게 아니라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 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달라는 것이고 10.29 이태원 참사를 기억해달라는 것"이라며 "언제까지 아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해야 되는 나라가 돼야 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10년 동안 싸워온 거 같다"고 말했다.
2학년 6반 고(故) 이태민 학생의 어머니 문연옥 씨(52)는 "모든 사람들이 2014년 4월 16일 9시 몇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다 알고 있을 만큼 충격적이었다"며 "안전에 대해 더 많은 경각심을 느끼게 하고 그런 시대를 만들었던 것이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아픔 딛고 발돋움하는 단원고…미래를 말하는 학생들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4월의 단원고 교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운동장과 농구코트는 공을 갖고 뛰어다니는 남학생들로 금방 채워졌고 여학생들은 벚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며 깔깔 웃었다.
단원고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1학년 권현준 학생은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사건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만약 내가 그 상황에 부닥쳤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을 많이 해봤다"며 "그때 대처가 좀 더 빨랐더라면 다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 사회적으로 안전불감증이 심한 게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1학년 백진아 학생은 "어렸을 때 뉴스를 보고 알게 됐는데 열 살 위 언니가 딱 그 희생자분들과 비슷한 또래라 더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며 "더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해서 교사가 되고 싶은 학생들끼리 모여 동아리를 만들고 지금은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진아 학생은 "저는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모든 학생을 다 끌어안아 주는 포용력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희생자분들도 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뭔가 꿈을 꿨을 거고 사람들이 단원고를 볼 때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희망을 더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3학년 이용재 학생은 "단원고가 세월호 때문에 약간 침울하고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사실은 엄청 활기차고 학생들이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다"며 "이제 단원고 하면 희망차고 항상 변화하는 학교로 떠올려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16일 단원고에서 열리는 4·16 세월호 10주기 추모식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이 상영된다. 그림부터 연출, 편집, 녹음까지 모두 학생들 손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10년 전 트라우마를 딛고 더 단단해진 단원고 학생들은 미래를 향해 발돋움하고 있었다.
장래 경영학과에 진학해 전략 컨설턴트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용재 학생은 "세월호 때문에 단원고에서는 작년에 처음으로 수능이 치러졌다"며 "이런 걸 보면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단원고 언덕 위 세월호 추모 조형물 '노란 고래의 꿈'으로 가는 길 담장에는 마침 노란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고래 조형물 주변에는 손 글씨로 '아무도 외롭지 않게 하겠습니다'는 문구가 쓰인 노란 바람개비가 꿈을 꾸듯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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