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00시간 근무? 더는 못 버텨"…의료공백 55일째 의사도 환자도 '비명'

교수들 "의료자문 등 외부업무 못해" "밤샘 당직 두달째" 토로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 652건…환자단체, WHO 개입 요청 예정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1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 2024.4.1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의료현장을 이탈한 지 50일이 넘었지만, 의정대화는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전공의의 빈자리를 채워온 의대교수들이 진료를 축소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의료공백이 연일 심화되고 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날은 지난 2월19일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55일째가 되는 날이다. 대학병원과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 1만여 명이 이탈한 지 두 달이 되어가자 의료공백에 따른 피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료현장에 남아있는 교수들은 정신적, 체력적 한계를 호소하며 사직서를 제출하고, 일부 병원들은 진료를 축소하는 상황이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과도한 업무 부담을 호소하며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청하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삼성창원병원 및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기초의학교실의 교수들로 구성된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소속 교수들을 대상으로 근무시간 및 업무 강도와 신체적, 정신적 상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228명의 응답자 중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교수는 86.4%에 달했으며, 그 미만으로 근무한 교수는 13.6%에 불과했다. 주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교수도 7.9%에 달했다.

지난 1개월간 신체적, 정신적 상태를 1점(지극히 정상)부터 7점(매우 불안정)으로 나타내는 질문에서는 60% 이상이 '중등도 이상의 문제'가 있는 4점(신체적 상태 60.4%, 정신적 상태 65.2%)이라고 응답했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대위는 "전공의 사직으로 발생한 대학병원의 진료공백을 의대 교수들이 완전히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일방적인 의료정책을 중단하고 지혜를 발휘해 대화와 협상으로 의료공백을 수습하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하루는 밤새 당직을 서고, 하루는 정상 근무를 하는 생활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정형외과) 교수들 대부분이 사표를 내고도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 달 후면 대부분의 교수들이 버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신규 환자 예약을 받지 않고, 받더라도 일자를 최소 6개월 후로 조정하고 있지만 업무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인력이 부족해 의료자문 등 외부 업무는 아예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운영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는 지난 11일 기준 652건(누적)의 피해신고가 접수됐다. 수술 지연이 426건으로 가장 많고 진료 차질 119건, 진료 거절 79건, 입원 지연 28건 등이 있다. 의료 이용 불편 상담은 1359건, 법률 상담 지원은 253건이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50대 A 씨에게 응급처치를 시행한 후 수용할 병원을 찾았으나 부산 지역 10여 곳으로부터 거부당했다,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수술이 필요한 '대동맥박리'를 진단받았다. 하지만 부산의 병원에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았고, 이후 울산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지만 숨졌다.

A 씨 유족은 병원 수용 거부 등을 이유로 치료가 늦어진 점을 고려해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피해 사례를 접수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관계기관과 함께 현장점검을 마무리한 상황이다.

지난달 6일 기장군의 한 90대 노인이 심근경색 진단을 받은 뒤 긴급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다 울산의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 중 숨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환자들은 국제기구에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성명서를 통해 "환자들은 병원에서 집으로 방치돼 의료 난민으로 전락했고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며 "WHO(세계보건기구)가 대한민국 의료대란과 관련해 국제기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다뤄달라고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다음달 4일까지 의료진의 조속한 복귀를 위해 국회가 중재하고, 국회가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을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도 진행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진료보조(PA) 간호사 2700명을 투입해 의료공백을 메우겠다고 밝혔다. 상급병원 47곳과 종합병원 328곳을 조사한 결과 지난달 말 활동하는 PA간호사는 8982명이다. 정부는 향후 2715명을 증원해 PA간호사를 1만 1000명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세 차례에 걸쳐 공중보건의, 군의관 413명을 파견했고, 다음달 전역 예정인 군의관도 병원에 미리 보냈다. 정부는 군의관을 권역외상센터에 일정 기간 파견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