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받은 순경 총기 난사, 62명 참사…'동거녀 실수' 탓 발단
1982년 경남 의령 우 순경 사건 마을 쑥대밭 [사건속 오늘]
전두환 정권 보도통제…장관 사퇴, 全 참사 현장 방문 무마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42년 전인 1982년 4월 26일, 경남 의령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은 전쟁· 태풍 같은 천재지변, 비행기 사고 등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참사였다.
그것도 한 사람에 의해 일어난 비극으로 SNS 등이 발달한 지금이었다면 대통령 자리가 왔다 갔다 했을 초대형 사건이었다.
◇ 사망 62명, 총상 33명 등 95명의 사상자를 낸 우 순경
그날 밤 9시 40분부터 다음 날 오전 5시 35분까지 경남 의령군 궁류 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 순경(당시 27세)이 지서 무기고에서 들고 나온 카빈 소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까대는 바람에 현장에서 5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치명상, 33명이 총상을 입었다.
치명상을 입은 6명은 사건 발생 얼마 뒤 숨져, 사망자는 무려 62명에 달했다.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 극우단체 회원이었던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총기 난사로 72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갈 때까지 단일 총기사건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으로 기록됐다.
◇ 참사, 아주 사소한 이유로 시작…동거녀, 禹 가슴에 앉은 파리 잡겠다며 찰싹
그날의 비극은 '파리'로부터 시작됐다.
해병대 특등사수라는 점 등을 인정받아 경찰관이 된 우 순경은 1980년 말 청와대 경비를 담당하는 101단에 뽑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갔지만 술만 마셨다 하면 이성이 마비돼 사고를 치는 바람에 1981년 말 부적격자로 찍혀 경남 의령 궁류 지서로 좌천당했다.
궁류 지서로 발령받은 후 마을 아가씨와 눈이 맞아 1982년 3월 동거에 들어간 우 순경은 사건 발생 당일(4월 26일) 낮 야간근무를 위해 집으로 와 점심을 먹은 뒤 잠을 청했다.
이때 파리 한 마리가 우 순경 얼굴과 가슴팍에 앉아 귀찮게 하자 동거녀가 이를 쫓아내려고 손을 휘젓다 그만 우 순경 가슴을 '탁'하고 치고 말았다.
잠이 달아난 우 순경은 불같이 화를 낸 뒤 집을 나가 술병을 들이켰다.
술에 취한 우 순경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와 동거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뜯어말리면서 우 순경을 나무랐다.
격분한 우 순경은 다시 지서로 가 무기고 근무를 서던 방위병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한 뒤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과 실탄을 꺼냈다.
◇ M1 카빈 2정, 실탄 180발, 수류탄 7개 들고 마을로…7시간 55분 동안 난동
우 순경은 방위병에게 무기고 열쇠를 달라고 명령, 이를 받은 뒤 문을 열고 들어가 M1 카빈 소총 2정, 실탄 180발과 수류탄 7개를 챙겨 들고 마을로 향했다.
4월 26일 밤 9시 40분,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잠시 마을을 들렸던 A 씨에게 카빈을 쏘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날 오전 5시35분까지 7시간 55분 동안 궁류 면 사무소 소재지와 토곡리, 압곡리, 운계리, 평촌리를 돌아다니며 소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 궁류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 평촌리 상갓집에 부의금 내고 술…주사 부리다 야단맞자 총기 난사, 상주 일가족 12명 등 23명 살해
우범곤 순경의 잔인함은 평촌리 상갓집에서 극에 달했다.
이미 20명을 살해한 우범곤은 26일 밤 10시 50분쯤 평촌리의 한 상갓집에 들러 부의금 3000원과 함께 천연덕스럽게 조문했다.
이어 조문객과 어울려 술을 마시던 우 순경은 특유의 주사를 부리다가 상주의 가족으로부터 '상갓집에서 왜 행패냐'며 야단맞았다.
격분한 우 순경은 카빈을 난사 상주 일가족 12명을 현장에서 사살한 뒤 뛰쳐나가 불이 켜진 집마다 총을 들이대 11명을 더 죽였다.
◇ 안면 있던 집에 들어가 수류탄 안전고리 빼, 일가족 4명과 함께 현장에서 즉사
우 순경은 27일 새벽 5시 35분쯤 다시 평촌리로 들어가 평소 알고 지내던 주민과 그 가족 5명을 깨운 뒤 '같이 죽자'며 수류탄 2발을 터뜨려 즉사했다.
이 일로 일가족 5명 중 4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 아기 울음소리 들리자 '어 안 죽었네' 돌아와 확인 사살…사이코패스 검사했다면 40점 만점
우 순경의 잔혹함은 평촌리 상갓집 난사 때 여실히 드러났다.
총을 난사해 상주 일가족과 친척을 살해했던 우 순경은 집을 빠져나오려던 순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다시 들어가 '어 안 죽은 게 있네'라며 갓난아기를 쏴 버렸다.
이는 앞선 총기 난사에 놀라 기절했던 상주의 친척이 우 순경이 되돌아왔을 때 어렴풋이 정신을 차렸다가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을 목격, 후에 수사당국에 진술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 장면과 함께 잠을 깨웠다면서 총을 집어 들었던 일, 술만 먹으면 악마가 되는 점 등을 볼 때 우 순경이 틀림없이 사이코패스였을 것이라고 한다.
2008년 도입된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를 우 순경에게 했다면 40점 만점에 40점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 총상 입은 채 전화 연결한 교환원, '불 끄라'며 마을 돌아다닌 의인 덕에 더 큰 희생 막아
우 순경 사건으로 궁류면 일대가 피바다가 됐지만 그 속에서 위험을 무릅쓴 의인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졌다.
26일 밤 9시 40분 첫 범행을 저지른 우 순경은 곧이어 궁류 우체국으로 가 야근 중이던 여성 교환원 2명과 집배원 1명을 사살했다.
이때 총상을 입은 여성 교환원 전모 씨(24)는 사경을 헤매면서도 마을 이장집 행정전화 코드를 연결, 마을 주민이 밤 10시 34분 사건을 신고토록 하는 데 도움을 준 뒤 숨을 거뒀다.
또 한 택시 기사는 '빨리 불을 끄라'며 집집마다 돌아다녀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이 택시 기사는 우범곤의 눈에 띄어 죽임을 당했다.
◇ 겁에 질린 경찰 지휘부…다리 밑에 숨고, 도망쳐
수많은 면민들이 죽어 나갈 동안 의령경찰서 지휘부는 막기는커녕 목숨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우범곤의 직속상관인 궁류 지서장은 그날 술 접대를 받느라 자리를 비웠고 밤 10시 50분쯤 보고를 받고도 현장에 없어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또 의령경찰서장은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는 대신 모처로 가버렸고 전투경찰을 이끌고 온 과장들도 마을로 진입하는 대신, 입구에서 진을 치고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의령 서장은 파면과 함께 직무 유기죄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에 의해 무죄와 함께 파면도 징계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소됐다.
◇ 경남 전역 비상령 경찰 기동대 출동, 군부대도 대기…우 순경 자폭으로 끝나
4월 27일 새벽, 엄청난 일임을 깨달은 경남 경찰청은 상부에 보고하는 한편 인근 마산, 진주에서 타격대를 편성하고 관내 경찰서에 비상령을 발동했다.
또 군부대에도 상황을 전파, 도움을 받으려 했다. 만약 우 순경이 27일 새벽 자폭으로 상황을 끝내지 않았다면 공수부대까지 동원될 가능성이 높았다.
◇ 철저한 언론통제, 석간에서 첫 보도…전두환 의령 방문, 내무부 장관 사퇴
우 순경 사건이 일어난 1982년 4월은 전두환이 민주정의당을 창당,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듬해로 언론 통제가 심한 시절이었다.
그런 까닭에 95명의 사상자를 낸 초대형 사건임에도 언론 보도는 27일 오후에서야 시작됐다.
당시 전두환 정권도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 서정화 내무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또 전두환이 직접 의령군을 찾아 지역발전을 약속하는 등 민심 수습에 골머리를 앓았다.
지금이었다면 최소한 내각 총사퇴, 국정조사, 대통령 대국민 사과는 물론이고 대통령 하야 요구가 빗발쳤을 것이다.
또 우 순경 사건 이후 경찰관 임용 조건이 강화됐다.
종전 중졸에서 고졸 이상으로 학력 제한이 높아지는 한편 인적성 검사, 전과 여부를 조회해 부적합자를 탈락시켰다.
◇ 참사 42년인 2024년 4월 26일 추모공원 조성, 위령비 세워
의령 우 순경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진척이 없다가 2022년 본격화됐다.
의령군은 유가족들과 함께 '의령 4·26추모공원'을 조성하고 위령탑을 세워 희생자 넋을 기리기로 했다.
이에 의령군은 행정안전부로부터 지원받은 7억 원의 특별교부세, 도비와 군비 등 총사업비 18억 원으로 추모 공원 조성과 위령탑을 만들어 참사 42년이 되는 2024년 4월 26일 제막식과 함께 추모제를 거행키로 했다.
위령탑에는 사건 배경과 결과, 위령탑 건립취지문을 새겨 넣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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