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파티 유인, 암매장…시신 꺼내 손가락 도장 찍은 엽기녀
투자금 상환 요구하자 살해…계약서에 뒤늦게 지장 꾹 [사건속 오늘]
위조 번호판, 가발, 사전 땅 파기 치밀 준비…산화된 콜라 깡통에 덜미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징역 30년형,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났지만 지금도 '몸집이 크지 않은 40대 여성 혼자 과연'이라는 의문이 남는 사건이 있다.
2022년 4월 6일 부산 금정구에서 일어난 50대 의사 살해 암매장 사건이 그것이다.
◇ 주식 투자 원금 반환 요구받자 살해 결심…완전범죄 준비
40대 여성 A 씨는 2013년 온라인 주식 카페에서 만난 부산의 50대 의사 B 씨와 투자 정보를 주고받는 등 친하게 지냈다.
B 씨는 A 씨의 해박한 투자 이론에 반해 '내 돈을 불려 달라'며 수억 원을 맡겼다.
A 씨는 초기엔 매월 수백만 원씩 투자 이익금을 B 씨에게 안겨 줬지만 주식 시장 침체와 투자 종목 선별 실패, B 씨 돈에서 빼내 생활비로 유용하는 바람에 원금을 거의 다 날렸다.
이 사정을 눈치챈 B 씨가 2022년 3월 28일 '우선 1억원을 갚지 않을 경우 남편에게 빚을 대신 갚으라고 하겠다'고 통보했다.
위기를 느낀 A 씨는 죽음으로 B 씨 입을 다물게 하겠다며 완전범죄를 준비했다.
◇ 같은 차종 준비, 위조 번호판, 가발, 사전 땅 파기
A 씨는 4월 6일이 B 씨 생일인 것에 착안, 생일 케이크를 주겠다며 불러내 살해키로 마음먹고 완전범죄 준비에 들어갔다.
B 씨를 죽인 뒤 암매장키로 계획한 A 씨는 지인에게 '나무 몇그루 심겠으니 경남 양산시 원동면 밭을 조금 빌리자'고 부탁, 허락을 받았다.
A 씨는 3월 31일 포크레인을 동원해 깊이 1.3m, 폭 2.5m 크기의 구덩이를 팠다.
또 자신의 차량과 같은 차종, 색깔의 차를 지인 C 씨에게서 빌린 뒤 C 씨 차량 번호판을 A4 용지로 복사해 자신의 차량 번호판에 붙였다.
아울러 가발과 옷을 준비해 자신의 차량을 몰 때와 위조 번호판을 단 차량을 몰 때 모습이 다르도록 준비했다.
◇ 피해자 살해 후 어둠 틈타 양산에 암매장
A 씨는 B 씨에게 '생일 케이크도 주고 원금에 대해 할 이야기 있으니 4월 6일 밤 오후 8시쯤 만나자, 집 부근에 나와 있으면 차로 픽업하겠다'며 전화를 걸었다.
B 씨를 차에 태운 A 씨는 금정구 청룡동의 주차장으로 간 뒤 케이크를 주겠다며 차 뒷자리로 이동, 케이크가 아닌 줄을 손에 잡았다.
이 줄로 B 씨 목을 있는 힘껏 졸라맨 A 씨는 숨이 멎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서둘러 1시간 거리의 양산 밭으로 위조 번호판을 단 자신의 차를 몰았다.
◇ 피해자 부인 '내 남편 만났냐', '동업관계 끝난 사이'라며 계약서 내밀어…시신 꺼내 지장 찍는 엽기적 행각
B 씨 부인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4월 7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는 한편 A 씨에게 '내 남편과 만난 일이 있냐'고 물었다.
A 씨는 "지난해 6월 말로 동업 관계를 끝냈기에 만날 일 없다, 계약서도 있다"라는 말을 한 뒤 잽싸게 양산으로 달려가 매장한 B 씨 시신을 꺼낸 뒤 인주를 B 씨 왼손 엄지에 묻혀 계약서에 찍은 후 다시 파묻었다.
대담함을 넘어서 엽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 CCTV 속 차량 전수조사, '그 시간 차 몰지 않았다'는 말에 형사 특유의 육감이
B 씨 부인의 실종 신고를 접한 경찰은 정황상 단순 가출이 아니라고 판단, B 씨가 집을 나선 6일 오후 8시 이후 행적 파악에 나섰다.
인도 쪽으로 설치된 CCTV를 살핀 결과 B 씨 모습은 오후 8시 15분 이후 사라졌다. 경찰은 B 씨가 8시 15분 무렵 차를 타고 이동했을 것으로 보고 8시부터 8시 15분 사이 인근 도로를 지난 모든 차량을 추적했다.
그때 000의 0000번 차량 소유주 D 씨는 "그날 집에서 저녁을 먹고 줄곧 집에 있었다. 차를 몬 적 없다"며 왜 자신의 차 번호가 찍혔는지 의아해했다.
형사들은 육감적으로 '뭔가 있다'고 판단, 위조 번호판을 단 차량을 추적하는 한편 '얼마 전 차량을 A 씨에게 잠깐 빌려준 적 있다'는 D 씨 말, '남편이 A 씨와 주식 거래를 했다'는 B 씨 부인의 말에 따라 A 씨 행적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 양산 마을 CCTV 딱 한대, 그마저 전경만…밤 영상과 낮 영상 대조 끝에 실마리
A 씨 차 움직임을 따라가던 경찰은 A 씨가 탄 차량이 6일 밤 양산 원동면 한 마을에 도착한 것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시골 마을에 CCTV라고는 마을 전체를 비추는 딱 1대뿐으로, 그마저 밤 영상인 탓에 화질이 흐려 A 씨가 어디로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E 형사는 마을 전경을 비추는 CCTV속 불빛에 주목, 해당 화면을 갈무리한 뒤 4월 13일 낮에 찍힌 화면과 대조하면서 현장을 살폈다.
◇ 밭에 나뒹굴던 녹슨 콜라 깡통…땅속에 있다가 나온 증거, 최근 누가 땅 파기 한 적 있다
이때 E 형사 눈에 밭 주변에 뒹굴던 녹슨 콜라 깡통이 발견됐다. 유심히 살핀 E 형사는 깡통 녹슨 정도로 볼 때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최근 밖으로 나온 것으로 판단, 주민들을 대상으로 '최근 땅을 판 적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는 사람이 나무를 심겠다며 지난달 말 땅을 팠다가 나무 심기를 포기, 다시 메꾼 적 있다'는 주민이 등장했다.
누구였냐는 물음에 'A 씨'라는 말을 들은 E 형사는 '잡았다'며 쾌재를 부른 뒤 4월 16일 동료들과 함께 암매장 장소를 파헤쳤다.
B 씨 시신은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왼손 엄지에 묻힌 붉은 색 인주는 그대로 있었다.
◇ 콜라, 엄지 손도장, 가발에 발목 잡혀 1심 무기징역, 항소심 징역 30년형
경찰은 A 씨가 사건 당일 단발의 작업복 차림으로 제과점에 들어갔다가 긴 머리의 원피스 차림으로 케이크를 사 가지고 나오는 모습도 밝혀냈다.
이는 혹시나 경찰이 CCTV를 뒤질 것을 염려한 A 씨 나름의 속임수였지만 계획범죄 증거로 법정에 제출됐다.
또 포크레인으로 땅을 팔 때 나온 콜라 깡통, B 씨의 왼손 엄지에 묻은 인주도 A 씨의 완전범죄를 무너뜨린 증거물이 됐다.
검찰은 A 씨에게 징역 28년 형을 구형했지만 2022년 10월 14일 1심인 부산지법 형사5부는 "피고인은 범행 계획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며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 무기징역형을 내렸다.
이에 항소, 징역 30년형으로 감형받은 A 씨는 이것도 무겁다면 상고했으나 기각당했다.
◇ 여성 혼자서 남성을 죽이고 시신 옮겨 매장?…공범 없다 결론경찰은 A 씨 혼자서 남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옮기고 구덩이를 메우기가 힘들 것으로 보고 '공범 여부'를 추궁했으나 A 씨는 '나 혼자 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경찰은 여러 각도에서 공범 가능성을 살폈지만 뚜렷하게 잡히는 것이 없어 '단독 범행'으로 결론짓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뒤에서 갑자기 줄 등을 이용해 목을 조를 경우 건장한 남성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특히 머리 받침대가 있는 차량 좌석의 경우 일종의 지렛대 원리가 작용하기에 힘이 약한 여성도 남성을 상대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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