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풍 술집 가면 페미 지지?…안산 발언 '이상한' 후폭풍[체크리스트]
"사상검증하러 식당 데려가겠다"…젠더 갈등 재점화
본질과 동떨어진 여성혐오…불필요한 남녀갈등 유발
- 홍유진 기자
(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최근 도쿄 올림픽 양궁 3관왕인 안산(23) 선수가 국내에 있는 한 일본풍 주점을 두고 ‘매국노’라는 표현을 써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안산의 사과문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는데요. 이제는 본질과 동떨어진 남녀 간의 대결 구도로 논란이 확장하는 모습입니다.
지난 16일 안 선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국제선 출발(일본행)'이라고 적힌 사진을 올리면서 "한국에 매국노 왜 이렇게 많냐"는 글을 썼습니다. 해당 전광판은 광주에 위치한 한 일본풍 술집 내부로, 주변 가게들도 대부분 실제 일본에 온 듯한 '일본 여행' 콘셉트로 운영되는 외식 체인점입니다.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된 상태지만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로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이후 해당 브랜드 대표는 "한순간에 친일파 후손이자 매국 브랜드가 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지난 19일 명예훼손 혐의로 안 선수를 고소했습니다. 결국 안 선수가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안 선수도 "공인으로서 본분을 잊은 채 무심코 올린 게시물"이라며 "생업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모든 분들이 받으셨을 피해와 마음의 상처는 제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고 사과했는데요. 발언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풍 술집에서 시작된 논란이 해묵은 페미니스트 논쟁 등 본질과 상관없는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남녀갈등이 심화하는 등 소모적인 논쟁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급기야 한 대학교 커뮤니티에는 해당 음식점에 여성들을 데려가 사상검증을 하겠다는 글이 게시되기도 했습니다. 엑스(X·구 트위터)에는 "사상검증 목록 추가", "여기 가자 했는데 싫다고 하면 어떤 사람인지 알겠지?"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해당 음식점 불매에 동참하는지 여부가 주변인의 페미니스트 여부를 감별하는 리트머스지가 된 겁니다.
본질과 무관한 여성 혐오가 다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과거 안산 선수의 쇼트커트 헤어스타일과 여대(광주여대)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을 두고 페미니스트 논쟁이 일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사실 이번 논란은 여성 문제와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사상 검증을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남성들이 마치 심판관의 위치에서 무엇이 허용되고 안 되는지를 판단하면서 낙인찍으려는 시도"라고 짚었습니다.
이처럼 남녀갈등을 부추기는 식의 주장이 대중의 피로감만 유발할 뿐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20대 직장인 임 모 씨는 "처음 논란이 됐을 때는 요즘 늘어나는 일본 간판 가게에 대해 고민해 볼 만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또 젠더 이슈로 번지니 그냥 외면해 버리고 싶어졌다"며 "평소에도 젠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입을 꾹 닫게 된다"고 토로했습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무분별한 사상 검증은 저출산 등 여성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무차별적인 혐오, 차별 표현에 대해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동시에 법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cym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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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거나 쟁점이 되는 예민한 현안을 점검하는 고정물입니다. 확인·점검 사항 목록인 '체크리스트'를 만들 듯,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