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받아 1.5억 준 동료 살해…쓰레기봉투에 담아 소각처리한 환경미화원

11개월간 감쪽같이 덮고 피해자 카드로 흥청망청 [사건속 오늘]
피해자 90대 노부 "아들 안보인다" 경찰 신고…룸살롱 출입기록 들통

동료를 살해한 환경미화원 A 씨가 2018년 3월 21일 전북 전주시 본인이 거주하던 원룸에서 사체를 본인 차량에 싣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2018.3.21/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인간이 탐욕에 물들면 얼마만큼 잔인해지고 뻔뻔해지는지 증명한 사건이 있다.

6년 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환경미화원의 동료 미화원 살인 사건이 그것이다.

◇ 왜 죽였냐 묻자 "그렇게 됐습니다" 남의 일처럼 무덤덤

2018년 3월 2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전주 완산경찰서로 돌아온 A 씨(50)는 기자들이 "왜 죽였냐"고 묻자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며 무덤덤하게 답했다.

아무 말 안 하거나,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다른 강력범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2017년 4월4일 오후 7시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의 한 원룸에서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끼던 직장동료 B 씨(58)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고 1년여 완전범죄를 꿈꾸며 살아왔던 A 씨는 이날 오후 구속됐다.

◇ 빚 독촉 동료 죽인 뒤 쓰레기봉투에 담아 자신의 쓰레기 수거 노선에 버려…소각처리

사건 당일 B 씨는 대출까지 받아 가며 1억 5000만 원가량 빌려줬지만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A 씨와 담판을 짓겠다며 집을 나섰다.

'조금이라고 갚아야 하지 않는가'라는 B 씨의 독촉에 A 씨는 '그만 좀 하라'며 B 씨를 밀치고 목을 졸랐다.

B 씨가 축 늘어지자 A 씨는 B 씨 몸을 뒤져 카드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긴 뒤 시신 처리를 궁리했다.

밖으로 나가 대형 쓰레기봉투를 구입한 A 씨는 시신을 이불과 쓰레기봉투 15장으로 겹겹이 동여맨 후 B 씨 시신이 든 쓰레기봉투를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자신의 쓰레기 수거 노선까지 들고 가 버렸다.

다음 날 새벽 쓰레기차에 오른 A 씨는 새벽 6시 10분 잽싸게 B 씨 시신이 든 쓰레기를 쓰레기 차량 적재함으로 던져버렸다.

B 씨 시신은 다른 쓰레기와 뒤섞여 쓰레기 소각장으로 들어가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다.

이 부분과 관련해 A 씨가 시신을 훼손하지 않고는 쓰레기봉투 안에 다 집어넣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체포 뒤 A 씨는 완강히 부인했다.

동료를 살해한 환경미화원 이모씨(50)가 21일 전북 전주시 중인동에서 사체를 버리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2018.3.21/뉴스1 ⓒ News1 DB

◇ 살해 후 배고프다며 피해자 카드로 햄버거, 이튿날에 족발 뜯고 새 옷, 금목걸이 구입

살해 뒤 A 씨는 인간이 아닌 냉혈한(冷血漢) 그 자체가 돼 버렸다.

B 씨 시신이 든 쓰레기봉투를 힘들게 버리고 온 A 씨는 배가 고프다며 4월 4일 오후 11시 46분쯤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B 씨 카드로 햄버거를 사 먹었다.

B 씨를 죽인 지 5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또 다음날에는 역시 B 씨 카드로 현금서비스 300만 원을 찾은 데 이어 44만 원짜리 새 옷을 샀다. 그다음 날(4월 6일)엔 금목걸이 등 귀금속 684만 원어치를 사고, 족발까지 뜯었다. 4월 7일엔 B 씨 카드로 호텔에 묵는 호사를 누렸다.

◇ 완전범죄 꿈꾸며 피해자 이름으로 휴직계, 딸들과 문자, 틈틈이 생활비

B 씨 시신을 소각 처리한 A 씨는 B 씨 행방을 묻는 이가 있자 혹시나 한 마음에 경기도의 한 병원의 도장이 찍힌 '허리 디스크' 진단서를 위조, 2017년 5월 29일 B 씨 이름으로 1년간 병가 휴직계까지 냈다.

또 B 씨 딸들에겐 B 씨 휴대전화를 이용해 '아빠 잘 있다'며 문자를 주고받는 한편 분기마다 60만 원씩 보내고 대학교 등록금도 때에 맞춰 입금했다.

◇ 피해자 카드로 흥청망청, 룸살롱까지

A 씨는 B 씨 카드로 3900만 원을 결제하고 B 씨 통장의 돈 4700만 원을 인출하는가 하면 현금서비스 1500만 원, 간편대출 5300만 원을 받는 등 범행이 발각될 때까지 11개월가량 생활비와 유흥비로 1억60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써버렸다.

A 씨는 룸살롱에서 가서 '내가 사장이다'며 한껏 우쭐대기도 했다.

◇ 피해자의 90대 아버지 "아들 보고 싶다" 경찰 찾아…룸살롱 출입에 발목 잡혀

B 씨에 대해 경찰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7년 11월 29일 B 씨의 90대 아버지가 전주 완산경찰서 평화파출소를 찾아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들이 보고 싶다"며 도움을 청하면서부터.

가출자 명단에 B 씨를 올려놓은 경찰은 2018년 2월 아버지가 사는 곳을 찾은 B 씨 딸들이 "아빠는 술을 즐기지 않는데 룸살롱 카드 명세서가 있다"며 경찰에 알아봐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강력사건으로 전환한 경찰은 룸살롱 CCTV를 확인한 결과 카드를 사용한 이가 B 씨가 아닌 A 씨임을 찾아냈다.

경찰로부터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은 A 씨는 처음엔 응했지만 왜 B 씨 카드를 사용했는지 설명하라는 경찰 요구에 압박을 느껴 3월 7일 행적을 감췄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 등을 통해 3월 17일 인천의 한 PC방에서 A 씨를 붙잡아 20일 구속영장을 신청, 받아냈다.

동료를 살해한 환경미화원 A 씨가 2018년 3월 21일 전북 전주시 본인이 거주하던 원룸에서 열린 현장검증에서 동료를 살해 후 시신을 검정비닐로 싸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2018.3.21/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 "내 가발 벗겨 욱하는 마음에 그만" 우발범죄 주장했지만

구속된 A 씨는 살해 동기에 대해 "B 씨가 내 가발을 잡아당겨 홧김에 목을 졸랐다"며 우발적 살인을 주장했다.

수사당국은 A 씨가 살인죄(징역 5년 이상)보다 형량이 훨씬 무거운 강도살인죄(무기징역 또는 사형)를 피하기 위해 '우발적 범행'을 우기고 있다고 판단, A 씨 경제적 상태를 확인했다.

그 결과 A 씨가 엄청난 채무를 지고 있음에도 이를 숨기고 B 씨에게 또 거액을 빌린 사실이 드러났다.

◇ 4억 6500만원 채무 상태 속이고 피해자에게 1억 5000만원 빌려…착한 피해자 대출까지 내

A 씨 월급에는 4억 6500만 원 상당의 압류·추심 채권이 잡혀 있었다.

빚에 쪼들리던 A 씨는 월급이 차압당한 상태임을 B 씨에게 알리지 않은 채 2015년 5월 대부업체 채무 4000만 원 연대보증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2015년 11월 5000만 원, 2016년 5월 4000만 원, 10월 220만 원을 B 씨에게 빌리는 등 보증까지 포함 1억 5000만 원이 넘는 빚을 졌다. 그때마다 B 씨는 은행 대출을 받아 동생 같은 A 씨에게 전하곤 했다.

◇ 범인, 무기징역형에 반발 항소 또 상고…法 "뉘우침이 전혀 없다" 기각

강도살인 사기 사체은닉 등의 혐의로 기소된 A 씨는 재판 내내 "금품을 노린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죽였다"며 강도살인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강도살인이 맞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2018년 8월 17일 전주지법 제1형사합의부(재판장 박정제 부장판사)는 "피해자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은 범행을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모습을 피고인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A 씨는 '억울하다', 검찰은 '사형을 내려달라'며 나란히 항소했지만 2019년 1월 22일 항소심인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판사 황진구)도 무기징역형을 유지했다.

A 씨는 끝까지 불복, 상고했으나 2019년 5월 15일 대법원 3부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기각,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