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이렇게] ①전공의 이탈로 의료공백 걱정…이것부터 바꿔야
주요 병원 전공의에게 과의존…의료계·정부, 개편 필요성 공감
주 80시간 노동·낮은 처우부터 개선해야…현장 "문제는 돈"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여 명이 병원을 이탈하면서 의료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적인 비상 의료체계를 가동해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라고 질타할 정도다.
전공의는 의과대학 졸업 후 국가고시로 의사면허를 취득한 뒤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의료인이다. 여러 진료과를 돌며 배우는 인턴 1년, 특정 과를 정한 채 레지던트로 4년(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가정의학과 3년) 배운다. 현재 전공의를 둔 수련병원은 221개가 있다.
전공의는 24시간 관리가 필요한 입원·수술 환자 관리 등을 도맡고 병동 내 응급상황에 대응하거나 야간 당직을 선다. 수술 동의서를 받거나 수술도 보조한다.
문제는 병원마다 전공의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지난 2021년 정부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 상급종합병원 전체 의사의 37.8%가 전공의, 57.9%가 전문의다. 서울대병원은 전공의가 전체 의사의 46%에 달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지난해 1월 '2022년 전공의 실태조사'를 보면 평균 근무시간은 77.7시간, 응답자의 절반 이상(52%)이 4주 연속 주 80시간 넘게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시간 이상 근무 후 10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받았느냐'는 데에는 33.9%가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의료진들은 전공의가 '노동자보다는 피교육생(수련의) 성격이 강해야 하는 직종'이라며 안타까워한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을 지낸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공의를 교육 대상보다는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하며 높은 강도로 일하게 해 병원 업무 상당 부분을 맡겨왔다"면서 "병원의 진료 유지는 기관장 임무이지, 수련생의 탓을 할 수 없다. 전공의는 지도전문의 지도아래 수련을 받지, 독자적 진료행위의 주체도 아니다"라고 적었다.
전공의 연봉은 평균 70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만약 80시간 일한다면, 주휴 시간을 포함해 시급 1만 5200원 정도 받는 셈이다. 올해 최저 임금인 시간당 9860원보다 5300원 많은 정도며 주 80시간 초과도 비일비재하니 전공의 사이에서 자조가 나온다. 대한민국 의료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자부만 하기에는 어두운 민낯이다.
전공의 비중을 줄이려면 전문의 채용을 늘려야 하는데 이마저 마땅치 않은 모습이다. 우선 전공의 근무 시간부터 줄여야 그만큼 전문의를 채용하는 게 현실적이다. 지난 2월 전공의 근무 시간을 '주 80시간'에서 '주 80시간 이내'로 줄이는 전공의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동안 주 80시간도 지켜지지 않았던 만큼 더욱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기도 대학병원의 한 필수진료과 교수는 "정부는 수가를 굉장히 낮게 주고, 병원은 수입·지출에 딱 필요한 만큼 투자해 벌어진 사태"라고 말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내놓으며 일일 입원환자 20명당 전공의는 0.5명 배치하라는 의사인력 확보 기준을 제시했다. 전문의를 더 채용하는 병원에 지원을 강화하겠다면서도 아직 어떻게 지원할지 밝히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전공의 수련비용을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공의는 국민 건강을 돌볼 전문의를 양성하는 과정의 일환이라는 취지에서다. 해외 각국은 수련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 지난 8일 복지부 주최 '전공의 수련제도 개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이선우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졸업후교육위원장(충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문제는 돈"이라고 말했다.
토론자였던 양은배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수석부원장(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은 2019년 기준 전공의 수련에 들어간 비용이 연간 8200만원이었고 전체 전공의들의 수련을 위해서는 1조 9000억 원이 필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필수의료 지원에 10조원 플러스알파를 투자한다고 했는데 이 알파는 전공의 수련에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당장 복귀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전공의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임시방편으로 경증 비응급환자는 동네 병의원이나 지역 병원을 이용해달라는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나섰다. 이로 인해 역설적이지만 상급종합병원은 최중증·응급 환자 대응에 집중하는 등 각 병원이 제 역할을 하게 됐다는 의견도 있다.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를 택한 것만으로도 개원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채 필수의료라는 사명감을 가졌던 이들이다. 이들 이탈이 병원에 위기를 주는 점은 큰 문제"라며 "우리 의료가 필수의료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처우를 개선해 주겠다'는 말도 좋지만, 필수의료를 구조적으로 살릴 문제 먼저 고민해야 장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정부는 복귀 의향이 있는데 유·무형 불이익을 우려해 복귀하지 못하거나 근무 중인 상황에서 수련 및 근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공의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공의 보호·신고센터'를 12일부터 운영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가 할 수 있는 전공의 대책은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잘못됐던 관행 등도 바꾸고 전공의에게 도움을 줄 정책을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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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정부와 의료계 갈등의 본질은 비단 의사 수를 몇 명 늘리느냐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간 의료 현장의 부조리들을 개혁하려는 몇 차례의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특정 집단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해야 했습니다. 지금이 의료 개혁의 적기라고 말합니다. 지금 또 물러서면 소모적인 갈등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료개혁 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 지를 짚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