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집에서 아이가 죽었어요"…서로 범인 지목한 부부 둘다 무죄, 왜?
신림동 쌍둥이 동생 사망 사건, 진실 못밝혀 수사 종결[사건 속 오늘]
친아빠, 12년형→무죄 판결…의혹 많은 아내도 증거 없어 무혐의 처분
- 김학진 기자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말도 못 하는 아이는 마음속으로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수천 번 외쳤을 것이다.
매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아동학대 신고, 하지만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는 단 1%에 불과하다. 100명 중 99명이 아무런 처벌도 없이 빠져나가는 것.
학대로 사망한 아동 10명 중 7명(68.5%)은 5살 이하다. 아동들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관련 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나이들이다.
사건은 대게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목격자도 존재하기 어렵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형제자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이런 사고로 위장할 수 있는 여지가 큰 것이다.
◇ 멍투성이, 장까지 파열된 채 차디차게 식어 있는 아이
"아기가 숨을 안 쉬는데요 지금 빨리 좀 와주세요"
2011년 3월6일 오전 11시쯤 119 상황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기가 몸이 차가워서 만지질 못하겠어요"라는 다급한 여자의 전화였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주택가에서 발견된 세 살 아기는 구급대가 발견 당시 이미 동공이 풀린 채 호흡도 맥박도 없던 상태였다.
남편이 출근한 뒤 부인은 쌍둥이 동생이 죽은 것을 발견했다.
구조요청을 받고 출동한 119대원들은 호흡도 맥박도 없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후경직까지 일어나 있는 상태로 이미 사망한 시점은 한참 지난 후였다.
사체를 검안한 법의학자는 등 쪽에 있는 갈비뼈와 팔꿈치의 골절을 확인했다. 또한 장까지 파열된 아이의 몸은 성한 곳이 없는 상태였다. 아이의 사망 원인은 외상성 복부 손상이었다.
결국 심한 폭행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새벽 2시쯤. 출동 현장엔 아빠, 엄마와 쌍둥이 형과 죽은 쌍둥이 동생만 있었고, 어떠한 외부의 침입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범인은 부인과 남편, 둘 중 한 명으로 좁혀졌다.
◇ 범인으로 지목된 친아빠, 석 달 만에 급반전…12년형→무죄
아이 사망 6일 뒤 범인으로 지목된 친아빠가 경찰에 붙잡혔다.
줄곧 아동학대를 부인하던 아이의 아빠는 부인이 "남편이 사건 당일 새벽에 아이를 밟아 죽였다"는 결정적 진술에도 끝까지 범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부인의 학대로 아이가 죽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진술을 토대로 수사는 일사천리로 이어졌고, 1심 재판에서 남편은 상해치사 혐의가 인정돼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들을 밟아 죽인 비정한 아빠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채 석 달이 되지 않아 사건은 또다시 급반전됐다.
법원은 1심 재판의 결정적 증거가 됐던 부인의 진술이 곳곳에서 큰 허점을 발견했다. 사건 당시 기억이 분명하지 않고, 재판이 진행될수록 엄마의 수상한 행적들이 속속 드러났다. 결국 남편의 상해치사 혐의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로 바뀌었다. 남편은, 부인에 대한 폭행 사실만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후 이뤄진 대법원판결에서도 남편의 무죄는 그대로 유지됐다.
◇ 아이 위급 상황에 '119' 보다 친엄마에 9차례 전화만 엄마…왜?
당시 이웃 주민들은 하나같이 엄마의 주장이 말이 안 된다고 얘길 했다. 그렇게 엄마에게 의심의 눈길이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3월6일 오전 11시 30분,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사망한 다음 날 아침이 지나서야 119에 전화를 해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그 시점은 사건 발생 다음 날 남편이 출근한 뒤 다정하게 남편을 배웅한 뒤였고, 이웃에게 아이들이 자고 있다고 말한 직후였다.
특히 만약 남편이 아이를 때리고 밟아 아이가 사망 직전 상태에 빠뜨렸다는 가정하에 엄마는 구조요청을 바로 하지 않았던 것이고, 특히 엄마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에는 친엄마와 15분간 9차례 전화 통화를 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갑작스럽게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당황해서 부모님이 생각났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는 가정을 내릴 수 있겠지만, 아이 엄마는 평소 이상하리만큼 119를 자주 불렀다. 실제로 119 대원들이 "이 집만 신고가 몇 번 들어오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자가용처럼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평소 부부싸움을 하면 아내가 남편을 때리고 남편 회사로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는 주변인들의 증언도 있었다.
◇ 재수사 촉구에도 "특별한 단서 없다"며 사건 종결한 검찰
이후 재수사에 대한 촉구와 미심쩍은 부분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수사는 더 진행되지 않았다.
당시 대검찰청은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에 "피해자 모친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검찰 및 1심 법원과 항소심 법원 간에 견해 차이가 있다"며 "항소심 판결에 의하더라도 특별히 재수사할 만한 단서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별도의 재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쌍둥이 아이의 사망 사건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부부 둘 중 한 명이 범인이 틀림없지만 검찰은 결국 이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으며 수사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khj8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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