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남편에 복수"…아들 서울법대 집착한 엄마, 패륜살인 비극 불렀다
10살 때부터 밥도 굶기며 하루 16시간 공부 강요 [사건속 오늘]
고3 아들, 안방에 시신 8개월 방치…친구 불러 라면 먹으며 게임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집 나간 남편을 대신해 혼자 아들을 키운 어머니가 아들 손에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아들은 어머니 시신을 안방에 8개월여 방치한 채 여자 친구와 나들이를 가고 친구를 불러 라면을 나눠 먹으며 게임을 했다.
여기까지 들었다면 '천하의 패륜아'라며 최소한 무기징역 감이라고 흥분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들에겐 징역 단기 3년 형, 장기 3년 6개월의 벌만 떨어졌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배심원, 재판부는 왜 그런 판단을 내렸을까.
◇ 엄마, 잠 안 재우고 골프채로 200대 때려…아들 "잠만 잤어도 죽이진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1년 3월 12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고 3년생 A 군은 "이대로 가면 엄마가 나를 죽일 것 같다"며 하지 말아야 할 결심을 하고 말았다.
집안에서 찾아낸 흉기로 엄마 B 씨(사망 당시 51세)를 찌른 뒤 "엄마 미안해"를 외쳤다.
훗날 경찰에서 A 군은 "제가 잠만 제대로 잤어도 이러진 않았을 것"이라며 범행 3일 전부터 엄마에게 너무 시달려 이런 선택을 하고 말았다고 했다.
당시 B 씨는 "그따위 정신상태로는 서울법대 못 간다. 밥이 아깝다"며 잠도 재우지 않고 밥도 굶겼다. 사건 전날 밤 11시쯤 아들이 책상에서 잠시 졸자 "정신력 문제다"며 엎드려뻗쳐를 시킨 뒤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골프채로 무려 200대나 때렸다.
A 군 엉덩이와 허벅지는 피투성이가 됐고 골프채에도 피가 묻을 정도였다.
◇ 아들 성공시켜 집 나간 남편에 복수하겠다는 엄마, 초3년 때부터 하루 16시간 공부시켜
A 군 엄마는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발끈하는 성격 탓에 남편 C 씨와 사이가 벌어졌다.
아내에게 정이 떨어진 C 씨는 B 씨를 피해 밖으로 밖으로 돌았고 그럴수록 B 씨는 남편에 대한 화풀이를 아들에게 해댔다.
남편 C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들이 7살 되던 해 여름에 긴팔 긴바지를 입고 있어 걷어보니 온몸에 퍼렇게 멍이 들었더라. 아내가 나에 대한 증오를 아들에게 푼 것 같았다"고 했다.
아들에게 화풀이하던 B 씨는 A 군이 초등학교 시절 전교권 성적을 보이자 보란 듯 아들을 서울법대에 보내 남편과 자신을 깔봤던 모든 사람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어머니에게 잡힌 A 군은 초교 3학년 때부터 하루 16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 아들, 초등 6년 때 토익 900점 중 1학년 때 전국 4500등 최상위권…서울법대, 전국 1등 강요
A 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토익(TOEIC) 900점을 넘겼으며 중학교 1학년 때 전국 석차가 4500등 안에 들 정도로 곧잘 공부했다.
이는 모두 회초리를 들고 공부 또 공부를 강요한 어머니가 끌어올린 성적이었다.
이러던 중 A 군은 아버지가 완전히 집을 나간 2006년,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어머니 B 씨에겐 이 사실을 숨겨왔다. 난리가 일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
B 씨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올라간 2009년부턴 아예 '서울법대 입학'이라는 목표치를 정한 채 '전국 1등만이 네가 살 길이다'며 아들을 볶아댔다.
B 씨에겐 서울 법대가 로스쿨 설치로 인해 법대 자체가 없어졌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골프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아들을 닦달할 뿐이었다.
매질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잠을 재우지 않고 밥도 주지 않았다.
◇ 엄마 기대치 충족하려 성적표 위조…100점 만점에 100점, 전국 60등
A 군 성적은 고 1학년 때부터 급락해 수리 7등급, 언어 4등급으로 인서울도 힘든 상태였다.
하지만 A 군은 엄마가 이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 벌어질 일이 두려워 매번 성적표를 고쳐 엄마에게 보여줬다.
전과목 100점 만점, 전국 60등이라는 아들의 성적표를 받아 든 엄마는 잠시 흐뭇했다가 "이럴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며 A 군을 몰아붙이고 틈만 나면 매를 들었다.
A 군이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왼쪽 볼기짝이 내려앉았고 왼쪽 귀는 고막 손상으로 난청 상태였다.
◇ "내가 살아야겠다"며 엄마 살해 후 시신 방치…친구 불러 게임, 여친과 지방 여행, 수능까지
엄마의 광적인 집착과 학대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A 군은 어머니를 살해한 뒤 시신을 안방에 방치한 채 부패 냄새가 집 밖으로 새어 나갈 것을 막으려 안방 문틈을 공업용 본드로 밀폐했다.
'엄마 어디 갔어'를 묻는 이웃과 친지들에게 '집을 나가셨다' '여행 갔다'고 둘러댔고 엄마가 있을 때 상상조차 못했던 영화 감상이나 온라인 게임에 빠져들었다.
친구들을 불러 라면을 먹으면서 함께 게임을 즐기는가 하면 여자 친구와 강릉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또 11월 10일엔 2012학년도 대학 입학 수능까지 봤다. 이는 A 군이 수험표를 안 받아갔다는 연락을 받은 아버지 C 씨가 아들을 윽박질렀기 때문이었다.
◇ 이혼소송 나선 아버지, 아내와 연락 닿지 않아 집을 찾았다가 끔찍한 사실을
A 군의 범행은 아버지 C 씨에 의해 들통이 났다.
매달 100만원씩 생활비를 보내던 C 씨는 2011년 6월 아들에게 엄마 행방을 물었다.
A 군이 "엄마 해외여행 가셨다"며 얼버무리자 "그래"라며 전화를 끊은 C 씨는 그해 11월 아내와 이혼을 결심하고 B 씨를 찾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B 씨 출입국 기록을 확인했다.
B 씨가 한국을 떠난 사실이 없음을 확인한 C 씨는 11월 22일 구의동 집을 찾았다가 안방 문이 밀폐돼 있고 뭔가 모를 냄새가 나는 데다 아들은 자기 방문을 잠근 채 나오지 않자 안방 문을 따 달라며 119에 도움을 청했다.
C 씨 앞에 펼쳐진 광경은 난장판이 된 안방과 죽은 지 8개월 10일이 지난 아내의 백골 시신이었다.
◇ 국민참여재판, 징역 단기 3년 장기 3년 6개월…정상참작 여지가
A 군은 존속 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존속살해의 경우 기본 형량이 징역 7년 이상으로 살인죄(기본 징역 4년 이상)보다 훨씬 엄하다.
A 군의 신청으로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살해 동기에 참작할 여지가 있다며 '형을 감경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 이를 받아들인 재판부는 징역 15년 형을 구형한 검찰 요구를 뿌리치고 '징역 단기 3년, 장기 3년 6개월'로 선처했다.
엄마 B 씨의 집착과 10년 가까이 시달린 A 군 상황이 배심원과 재판부 마음을 움직였다.
또 A 군이 체포될 당시 아버지에게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한 점, 재판정에서도 "엄마에게 미안하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한 점 등도 감안됐다.
◇ 엄마는 앞만 보고 가라며 꿈꿀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A 군이 감옥에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A 군은 "부모는 멀리 보라고 하지만 학부모는 앞만 보라고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고 하지만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A 군은 2014년 말 형기를 마치고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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