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징계'에 의대 교수들 침묵 깬다…사직·집단행동 움직임

"숨어서 반대, 부끄럽다"…사직의사 교수들 잇따라
"의사들 싸잡아 악마화…필수의료, 불가역적으로 끝났다"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 확인을 위해 전국의 수련병원에 현장점검을 실시하는 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어린이 환자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3.4/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천선휴 기자 =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 7000여명에 대해 면허정지 등 무더기 징계에 나선 가운데, 그동안 전공의가 떠난 자리를 채우던 전임의 마저 떠날 움직임을 보이자 의료 현장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당장 제자들의 불이익을 지켜봐야 하는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 항의와 집단행동이 감지된다.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히거나 의대 학장·병원장 등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내분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 4일에 이어 5일 수련병원 현장 점검을 통해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위반 여부를 확인 중이다. 이한경 중대본 제2총괄조정관(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어제(4일) 7000여명에 대한 미복귀 증거를 확보했고 추후 의료법에 따른 행정처분을 이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 '빅5' 대형 병원에서는 여전히 전공의 복귀 움직임이 뚜렷하지 않다. 더욱이 전임의마저 계약을 포기하고 있다. 이들 병원에서 전임의의 절반 가량이 재계약이나 신규 계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전임의는 전문의를 취득한 뒤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연구, 진료하는 의사들이다. 통상 1년 계약을 하고, 계약이 만료되면 재계약을 하거나 본인 진로로 간다. 이들의 이탈은 본인 자유·의사인지라 정부가 별도로 행정명령을 내릴 수 없다. 다만 의료공백은 더 커지게 된다.

의대생들도 휴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일까지 요건을 모두 갖춘 휴학 신청은 총 5387명으로, 전체 의대생의 약 29% 수준이다. 실제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은 더 많다. 교육부는 휴학을 신청했지만, 요건을 갖추지 못한 휴학계는 집계에서 제외하고 있다.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 징계에 나서고 의대생들도 배움을 포기하자 교수들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서울아산병원·강릉아산병원·울산대 의대 교수들은 지난 3일 성명을 내 "정부의 사법처리가 현실화되면 스승으로서 제자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경희대 의대 교수협의회·연세대 의대 교수평의회 등도 유사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의대 교수들은 학교 강의와 진료를 함께 맡고 있는데, 일부 병원에서는 교수들이 강의만 하는 방식으로 겸직 해제를 신청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4일 오전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2024.3.4/뉴스1 ⓒ News1 박지현 기자

교육부가 전날까지 의대를 둔 대학들에 증원신청을 받으면서 대학 총장과 의대 교수 간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3일 열린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긴급 간담회에서는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김정은 학장이 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교수를 그만두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경우도 있다. 윤우성 경북대 의대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전날 "외과 전공의들이 낙담하고 포기하고 있고, 우는 아이한테 뺨 때리는 격으로 정부는 협박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윤 교수는 "뒤에 숨어서 '반대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어떻게든 잘 해결되길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모습이 부끄럽다. 외과 교수직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배대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도 5일 SNS에 "다른 길을 찾도록 하겠다. 면허를 정지한다는 보건복지부 발표와 현 정원의 5.1배를 적어낸 모교 총장 의견을 듣자니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밖에도 지역의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정부 등이) 필수과 의사들을 싸잡아 악마화한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라거나 "필수의료는 불가역적으로 끝났다"고 호소하며 현장 이탈 의향을 드러내고 있다.

지역의 대학병원 필수의료과 교수는 뉴스1에 "이득을 볼 사람들은 상당히 다양한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어이없게도 필수과 전공의들, 박봉에 고난도 질환자를 진료하던 각과 의사들 뿐"이라며 "의사들을 싸잡아 악마화하고, 그들은 이미 상처 많이 받았다.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또 다른 외과 전문의도 "이제 아무도 필수의료에 지원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관두는데 업무개시명령을 받고, 그러고도 돈만 안다고 욕먹는 필수의료에 지원하겠나"라며 "정부가 이 정책을 거둬들여도, 전공의가 돌아와도 이미 필수의료는 불가역적으로 끝났다"고 강조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