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아버지 돌보러 온 효자' 그의 손에 처자식·부모가 차례로 희생됐다

채무 시달리던 40대, 아내·아들 죽인후 부모집으로 운반 [사건속 오늘]
부모 흉기 살해, 본인도 불질러 목숨 끊어…'기도내 그을음'이 스모킹건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아픈 노부부를 보살피기 위해 고향에 방문했던 아들의 안타까운 죽음.

한 달여간 보기 드문 효자 이야기로 '포장'돼 마을 주민 모두를 슬픔에 빠뜨렸던 '화재 사고'의 결말은 예상치 못한 '반전 사건'으로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2012년 1월 26일 3대 5명이 숨진 채 발견된 충남 당진시 합덕읍 농가 주택 일가족 화재 사건은 2월 29일 결국 숨진 40대 아들의 '존속 비속 살인과 방화'라는 비정상적이고 참담한 결말로 일단락됐다.

14년전 발생한 당진 일가족 살인 사건 / KBS 뉴스 갈무리

◇ 안타까운 단순 화재→부모 포함 일가족 살해 아들 소행 드러나

2012년 1월 26일 오전 1시 50분쯤 당진시 합덕의 한 주택에서 '평' 소리와 함께 치솟은 불길로 잠자던 일가족 5명이 모두 사망했다.

이 불로 백내장 수술을 한 A 씨(당시 74세)와 부인(71세)은 물론이고 아버지 A 씨 간병을 위해 고향 집을 찾은 아들 B(42) 씨와 며느리(43), 손자(9)까지 숨졌다.

경찰은 화재 발생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합동으로 화재감식을 하고 일가족 5명에 대한 부검을 실시했다.

14년전 발생한 당진 일가족 살인 사건 / KBS 뉴스 갈무리

◇ 사체가 있던 안방서 발견된 다량의 휘발성 물질

또 경찰과 소방당국은 A 씨 안방에서 다량의 휘발유 성분을 확인, 실화가 아닌 방화로 판단했다.

부검 결과 A 씨 부부가 흉기에 찔린 점, 며느리는 목을 졸려 질식사한 점, 손자도 목에 전선으로 목을 조인 흔적이 있는 점, 화재로 인한 사망 때 발견되는 기도 내 그을음이 B 씨를 제외한 나머지 4명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점, B 씨만 몸부림친 흔적 등을 토대로 화재 당시 B 씨만 혼자 살아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에 경찰은 B 씨가 일가족을 살해한 뒤 불을 질렀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14년전 발생한 당진 일가족 살인 사건 / KBS 뉴스 갈무리

◇ 아파트 CCTV 화면에 포착된 수상한 아들의 행적

수사를 이어오던 경찰은 김 씨가 살고 있던 천안의 한 아파트 CCTV에서 수상한 장면을 포착했다.

축 늘어진 자녀와 부인을 각각 외투와 목도리로 감싸 안은 채 계단을 내려와 승용차로 옮기는 김 씨의 모습이 확인된 것.

당시 B 씨는 여동생에게 '아버지를 내일 병원에 모시고 갈 테니까 집에 있어라' '어디 가지 말라'고 거짓말까지 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B 씨는 죽은 아내와 아들을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4시간여를 달려 당진시 합덕읍 노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 집으로 가 평소 금전 관계로 마찰이 잦았던 아버지와 감정싸움을 벌이다 흉기로 살해한 뒤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14년전 발생한 당진 일가족 살인 사건 / KBS 뉴스 갈무리

◇ 채무 시달리던 김 씨 처자식과 부모까지 살인

경찰 수사 결과 B 씨는 13개의 금융사와 대부업체 등으로부터 2억 77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B 씨는 사업실패 등으로 수익금이 전혀 없던 상태였으며, 그동안 가족 생활비는 숨진 김 씨의 부인이 상담사 일을 통해 벌어오는 120만 원가량으로 충당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사업 실패 등으로 수억 원의 빚을 지고 궁지에 몰린 B 씨는 금전 문제로 아내와 다툼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됐으며, 이를 목격한 어린 아들도 전깃줄로 감아 살해했다.

그 직후 B 씨는 2만 6000여㎡(시가 6억 7000만 원) 상당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아버지 집으로 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다며 흉기를 휘둘렀다.

14년전 발생한 당진 일가족 살인 사건 / KBS 뉴스 갈무리

◇ 범행 현장에 있던 전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무사, 풀리지 않는 의혹

아내의 일기장에는 2004년 재가하며 데리고 온 아들(사건 당시 9세)을 B 씨 호적에 올리는 문제로 부부 싸움을 종종 했다는 구절이 있어 금전 문제외에도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흔적이 드러났다.

B 씨가 아내와 아들을 살해했을 당시 아파트엔 이혼한 아내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 C (당시 나이 17세)군이 있었다.

C 군은 경찰 조사 때 '잠을 자고 있어 몰랐다'고 말했지만 사람을 죽이고 죽을 만큼 소란스러운 상황을 진짜 인지하지 못했는가, B 씨는 왜 C 군을 살해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C 군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숨졌기에 이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겨지게 됐다.

khj8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