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 여성 살해 후 여친과 술파티…유유히 출국한 범인 3년뒤 '현지 응징'
영문도 모른 채 부천 집 앞서 러시아인에 피살[사건 속 오늘]
3년 만에 전해진 무기징역 소식…유족 한 풀어준 법무부
- 김송이 기자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10년 전 오늘, 무고한 여성이 귀갓길 아파트까지 따라 들어온 괴한에게 살해당했다. 하지만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러시아인은 사건 다음 날 유유히 자국으로 출국해 버렸고, 경찰은 법무부와 외교부를 통해 러시아 당국에 인도를 요청했지만 수사에 진전은 없었다. 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범죄인 인도 촉구를 위한 온라인 서명을 모으기도 했으나 범인이 이미 해외로 도주한 상황에서 손쓸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었다.
이듬해 범인은 현지에서 검거됐으나 앞서 러시아 당국은 우리의 범죄인 인도 청구를 거절했던 상황이었으므로 우리 정부가 직접 처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건 발생 3년여 만에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현지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된 범인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 유족들의 상처는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었을까.
◇ "회사 후배들과 저녁만 먹고 들어오겠다고 했는데…"
경기 부천 원미경찰서에 따르면 2014년 2월 28일 오전 1시께 회사원 A(당시 29·여) 씨는 자택인 상동의 한 아파트로 귀가 중이었다. 이때 A 씨를 따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남성이 노끈으로 A 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가방을 훔쳐 달아났다.
A 씨의 아버지는 전날 회사 인근에서 회사 후배들과 저녁만 먹고 들어오겠다던 딸이 귀가하지 않자 오전 4시 30분께 신고를 했다. 경찰은 바로 A 씨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했고, 그 결과 오전 5시 50분께 A 씨의 오빠가 숨진 A 씨를 발견했다. A 씨는 자택인 13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쓰러져있었고, A 씨의 가방은 아파트 인근 의류 수거함에서 발견됐으며 지갑 안에는 현금이 없는 상태였다.
경찰은 아파트 CCTV에서 20~3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A 씨의 목을 조르는 장면을 확인했다. 남성은 짙은 색 점퍼를 입고 있었으며 옷에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 용의자는 근처 러시아인 전용 술집 단골…범행 직후 여친과 술 마시다 곧장 출국
경찰은 CCTV와 탐문수사로 남성을 추적해 용의자로 러시아인 B(당시 34) 씨를 지목했다. B 씨는 사건 발생 직전인 28일 오전 0시에서 1시 사이에 사건 현장과 불과 1㎞도 떨어지지 않은 한 유흥가 술집에 출입했다. 해당 가게는 러시아인 전용 주점으로 B 씨가 자주 출입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B 씨는 범행 직후 다시 해당 술집으로 돌아와 영업이 끝나는 오전 4시까지 태연하게 애인과 술을 마셨다. 경찰은 B 씨가 주점 주인에게 "내일(3월 1일) 출국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을 파악하고 인천국제공항에 형사들을 급파했으나, 3월 1일 오전 10시 30분 그는 이미 러시아로 출국한 상태였다.
해당 술집 인근 상인은 "돈이 없어서 바에서 (술을) 안 시켜 먹고 편의점에서 술을 사다가 바에서 먹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경찰이 입수한 CCTV 영상에는 B 씨가 또 다른 여성을 뒤쫓다가 범행에 실패한 듯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해 그의 범행 목적은 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러시아대사관 앞 '범죄인 인도 촉구' 시위…유족은 온라인 서명 운동
경찰은 곧바로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B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 절차에 착수했지만 수사에 진전이 없어 유족들의 속은 타들어 갔다. 범죄 발생 약 한 달 뒤인 3월 31일 외국인범죄척결연대 회원들은 서울 정동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B 씨의 송환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4월 6일 A 씨의 사촌 오빠는 지인을 통해 한 커뮤니티에 글을 게재, 온라인 서명을 촉구하며 원통함을 호소했다. 사촌 오빠는 "작은 집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던 막내 녀석이 하루아침에 없어져 밝고 즐거운 집안이 눈물과 공허함으로 살아가고 있어 가슴이 미어진다"며 "용의자인 러시아인이 범행 다음 날 바로 떠나버려 매일 인터넷을 검색하며 새로운 기사가 뜨는 것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그는 "3월 4일 기사 이후로는 아무런 보도도 없고 살인 사건이 묵살돼버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수사에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용의자가 판명됐으면 소환 조사를 해야 하는데 왜 범인을 송환해 달라고 러시아 대사관 앞에 가서 시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에서 억울하게 영문도 모른 채 외국인에게 살해를 당했다. 제발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게 도와달라"며 절절하게 호소했다.
◇ 포기하지 않은 법무부…수년에 걸쳐 러시아 사법당국과 협력
그렇게 사건은 묻히는 듯했으나 사건 발생 3년 뒤인 2017년 7월 12일 법무부로부터 뜻밖의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B 씨가 러시아 현지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는 것.
앞서 2014년 5월 법무부는 러시아 당국에 범죄인에 대한 인도를 청구했으나 러시아 대검은 러시아 자국법에 따라 인도를 거절했다. 이에 법무부는 러시아 당국에 증거 등을 제공해 러시아에서의 직접 수사를 요청했다.
이후 B 씨는 인터폴 적색수배 등을 거쳐 2015년 6월 러시아 현지에서 검거됐고, 러시아 당국은 2016년 10월 B 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러시아 하바롭스크 법원은 우리 측이 제공한 부검 결과와 CCTV 자료, 유족의 진술 등을 참작해 1심 재판에서 B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긴 시간 수사와 재판 절차 전 과정에서 러시아 사법당국과 긴밀하게 협력해 온 법무부가 이뤄낸 쾌거였다.
◇ 여주 버섯 농장주 살해한 우즈베키스탄인도 현지서 중형
A 씨의 사건은 범죄인인 자국민 인도를 거절하는 국가에 기소 요청을 해 중형을 끌어낸 두 번째 사례다.
앞서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검거돼 살인죄 등으로 재판을 받던 우즈베키스탄인 C(51) 씨와 D(25) 씨는 2017년 5월 징역 19년형을 선고받았다.
C 씨와 D 씨는 2015년 9월 자신들이 일하던 경기 여주의 버섯농장 농장주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암매장했다. 이후 농장주의 계좌에 있던 5900만 원 상당을 인출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도주했다.
syk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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