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줘라" 중소기업 대표, 평택호서 시신으로…아내의 내연남에 당했다

내연남, 친형 끌여들여 결행…전세버스까지 빌려 유기[사건속 오늘]
아내는 내연남을 남편 운전기사로 취업시켜…생명보험 들어놓기도

(MBC 갈무리)

◇출근한다던 중소기업 대표가 사라졌다…준비한 3억 행방은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2010년 2월 13일. 연 매출 70억원을 자랑하는 소방 설비 중소기업 대표 이 모(당시 46) 씨가 실종됐다. 이틀 전인 11일, 출근한다고 나선 이 씨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다. 이 씨의 차량만 회사 지하 주차장에 있었을 뿐이다.

이날 이 씨는 직원으로 일하는 조카에게 "현금 3억원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뒤, 안산 고잔역 인근에서 누군가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이후 이 씨의 휴대전화가 꺼지고 연락이 두절됐다.

이 씨의 돈을 전달받은 사람은 누구일까. 당시 이 씨가 아내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은 꺼림칙함을 느껴 수사에 착수, 주변인을 탐문했다.

아내의 태도는 이상했다. 남편이 없어졌음에도 걱정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아내는 "남편 출근할 때 다른 날이랑 똑같았는데요?" "워낙에 출장이 잦은 사람이라 하루 이틀은 안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등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특히 아내는 "남편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있는지 모른다. 미용실 운영하는 여편네한테 돈을 갖다줬는지 술집에서 만난 여자 치마 속에 넣어 줬는지"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형사님 저 아닌데요"…수상한 운전기사, 이 씨 아내와 불륜 中?

또 다른 참고인으로 2006년부터 1년간 이 씨의 운전기사로 일한 김모(당시 42) 씨가 조사를 받게 됐다. 김 씨는 이 씨 아내와의 염문설로 이 씨와 주먹다짐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

김 씨는 조사에서 "형사님, 저 범인 아닌데요? 저랑 그 사라진 사장이랑 사이 안 좋은 거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데 제가 그랬겠어요? 안 좋은 일 벌어지면 다 저를 의심할 텐데, 전 아니다"라며 능글맞은 태도로 임했다.

그러면서 "저도 이 사건 범인 좀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 이 씨가 죽었다니까 사람들이 다 나부터 지목하지 않냐"고 했다.

이때 경찰이 "이 씨가 죽었다고 얘기 안 했다"고 지적하자, 김 씨는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제가 언제 죽었다고 했습니까. 그냥 눈에 안 보인다는 말"이라고 해명했다. 김 씨에 대한 경찰의 의심은 커지기 시작했다.

이 씨의 아내와 김 씨의 불륜은 사실이었다. 아내의 지인은 "두 사람이 2005년 10월에 처음 만났다"면서 직접 이 씨에게 김 씨를 운전기사로 알선해 줬다고 증언했다. 당시 이 씨도 내연녀가 따로 있었다고.

김 씨는 이 씨의 지척에서 지내면서 이 씨의 아내와 내연 관계를 유지하다 이 씨랑 갈등이 생기면서 1년 만에 해고됐다.

(MBC 갈무리)

◇두 대의 대포폰 주인은…2월 26일 긴급 체포된 김 씨 형제

경찰은 이 씨뿐만 아니라 아내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확인했고, 이상한 연락처를 발견했다. 평소 연락하지 않는 낯선 번호의 정체는 사망한 어떤 할머니 명의의 것으로, 대포폰이었다.

할머니 가족관계를 살펴보니 김 씨가 등장했고, 휴대전화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결과 사라진 이 씨의 이동 경로와 정확히 일치했다.

김 씨는 이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자주 통화했다. 통화 상대 역시 낯선 할머니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했고, 할머니의 가족관계를 추적하자 이번엔 김 씨의 형이 나타났다. 김 씨 형제와 사라진 이 씨,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김 씨의 형이 고잔역에서 3억원을 받은 사람이었다. 이후 김 씨가 빚 300만원을 변제하고, 사용했던 휴대전화를 폐기한 뒤 새 휴대전화를 구입한 정황도 발견됐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2월 26일, 김 씨와 범행에 가담한 그의 형을 긴급 체포했다.

(MBC 갈무리)

◇"저놈 좀 죽여줘"…6명의 범인, 전세버스 빌려 이 씨 교살·유기

김 씨는 "이 씨가 아내와의 내연 관계를 알고 자신의 내연녀 오빠를 시켜 1억5000만원을 주고 저를 죽이려고 했다. 그 얘길 듣고 너무 화가 나서 제가 먼저 이 씨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다"며 범행 이유를 밝혔다. 동시에 "이 씨 아내가 '저놈 좀 죽여줘'라고 부탁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가담한 범인은 김 씨 형제를 포함해 전부 6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범만 4명이었다.

김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 A 씨한테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했고, 이에 A 씨가 지인 B 씨를 소개해 줘 합류하게 됐다. 이어 B 씨가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지인 C 씨를 끌어들였고, 또 C 씨는 알고 지내던 D 씨를 데리고 왔다.

김 씨의 지시에 따라 B 씨와 C 씨가 먼저 회사 지하 주차장에서 이 씨를 납치했다. 시흥으로 이동할 때는 D 씨가 합류했다. 이들은 검문망을 피하려고 미리 45인승 전세버스를 빌리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돈 줄 테니까 해코지하지 말라"며 김 씨와 언쟁했으나, 김 씨 형은 "말다툼하지 말고 빨리 끝내자"며 살해를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공범들이 이 씨를 못 움직이게 잡자, 김 씨 형이 그를 교살했다. 이때 형은 "나만 이러면 안 된다. 너희도 다 해야 한다"면서 공범들을 교살에 가담시켰다.

이들은 이 씨의 목, 팔이 연결된 끈과 발에 8㎏ 아령을 달아서 평택호로 시신을 던져 유기했다. 김 씨에게 유기 장소를 추궁한 끝에 이 씨의 시신은 3월 6일 인양됐다.

◇남편 명의로 12억 보험 가입한 아내는 '무죄' 항변

A 씨, B 씨, D 씨는 바로 붙잡혔고, C 씨는 도망갔다가 지명수배돼 3월 11일 검거됐다. 이들은 모두 잡히자마자 범죄 사실을 시인했다.

사람만 소개했던 A 씨는 살인 교사 혐의로, 나머지는 강도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이 씨에게 뜯어낸 3억은 김 씨 형제가 1억, 공범들이 2억을 나눠 가진 뒤 채무변제와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

이 씨 아내도 살인 교사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아내가 사건 발생 직전 이 씨 명의로 12억원대 보험에 가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아내는 공모한 적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으나 검찰에서 기소했고, 직접 교사 증거가 없어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아내는 변호사를 선임해 끝까지 무죄 항변을 했다고 전해졌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