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한번 못 써 보고 백기 들 판”…의협 '내우외환'

집행부 사퇴, 비대위 구성부터 난항…정부 압박에 속수무책
총대 멜 리더십의 부재…파업으로는 필패 우려도

14일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2.14/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의대 정원을 확대하려는 정부에 맞서 대척점에 선 의료계가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모두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총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지만 비대위 구성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무엇보다 의대증원에 대한 국민 여론이 의사들보다는 정부 편에 기울어져 있다는 점도 의사단체들의 활동반경을 옥죄는 양상이다.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의대정원을 2000명 늘린 5058명 선발하겠다는 정부 발표 이후 이필수 의협 회장은 6일, 박단 대전협 회장은 15일 각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회장은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는 이유를, 박 회장은 재직 중인 병원을 사직하기로 해 전공의 신분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의협은 지도부 공백을 수습하려 설 연휴 중 의대증원 저지 비대위 설치를 의결하고 비대위원장으로 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을 선출했다. 14일 출범 기자회견에서 17일 제1차 비대위 전체회의를 열어 향후 투쟁방안과 로드맵 등을 논의해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의협 비대위는 14일까지 비대위원 인선을 마무리짓고 같은 날 출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선뜻 비대위에 합류하겠다는 인사가 없어 각각의 의사 직역에 비대위원 추천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첫 단추부터 힘들게 끼우고 있는 양상이다.

의협 비대위는 비대위원장과 상임비대위, 각 분과위원회로 구성돼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박인숙 전 국회의원·주수호 전 의협 회장이 분과위원장을 맡았다. 모두 3월 차기 회장 선거의 예비후보들이다. 또 다른 후보인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도 비대위원으로 합류했다.

이들은 그동안 의대증원 등 정부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후보 등록을 마친 직후 선거 운동이 가능해져 비대위 활동과 병행할 수 있다. 이에 의사들 사이에서는 비대위를 선거운동에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의협 내에서 '회장 선거를 미루고 집단행동에 뭉칠 때'라는 여론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없이 정관에 따른 절차대로 선거를 치르기로 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의협 관계자는 "(의대증원이) 1000명대만 됐어도 이필수 회장도 사퇴 안 하고 최전선에 섰을 텐데 정부와 협상을 하면서도 2000명으로 당했다. 철저히 실패했다"면서 "이번 의협 비대위의 경우, 의협 회장이 되고 싶다면 당연히 참여하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세번째)이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인숙 비대위 대외협력위원장, 박명하 비대위 조직위원장, 김 비대위원장, 주수호 비대위 홍보위원장. 2024.2.14/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이같은 비판적인 시각을 의식한 듯 김택우 비대위원장은 "개인적인, 사사로운 선거운동을 위해 비대위를 할 인물들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 비대위 활동에 임하기로 했고 선거보다 중요한 게 의사 수 증원 저지"라고 강조했다.

복지부가 의협을 상대로 '집단행동 금지명령'에 이어 업무개시명령과 면허취소까지 언급하는 등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차단하기 위해 강하게 압박하는 데 반해 의협의 대응은 무기력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의대증원이나 필수 의료정책 패키지는 앞으로 의사로서 활동할 시간이 많은 젊은 의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만큼 미래 세대를 위해 기존 개원의 중심인 의협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어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 의료계 인사는 "사직서를 내거나 수련 재계약을 하지 않고 병원을 떠나려는 전공의들, 동맹휴학을 하려는 의대생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도 못한 채 넋 놓고 있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박단 대전협 회장도 전공의 수련 포기를 선언하면서 전공의들 역시 구심점을 잃게 됐다.

특히 박 회장이 "부디 집단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자 일부 전공의들은 '항복소식'이나 다름없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박 회장은 대전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으로서의 직 유지는 자신이 병원을 그만두는 3월 중순까지 유지된다고 했다. 이에 전공의들은 그때쯤이면 교육부가 전국 의대에 2025학년도 입학 정원 배정을 거의 마무리하는 단계여서 투쟁 명분도 이유도 사라진다는 이유를 든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를 지적한다. 지방의 한 개원의는 "이런 상황이라면 속된 말로 감옥에 갈 각오로 총대를 메려고 하는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데, 가진 게 많고 그걸 지켜야 할 의사 중에 누가 선뜻 나서겠냐"고 반문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전공의들이 따로 또는 같이 그만두는 일이 조만간 폭증하리란 우려가 잇따른다. 증원은 증원대로 이뤄지고 지역 필수의료 붕괴 위기가 심해질 거란 경고도 나온다. 그러나 총파업 같은 강대강 충돌을 벌이기에 현실적인 법적 부담을 인정해야 한다는 관측도 있다.

한 의사단체 대표는 "젊은 친구들이 좌절감을 겪는 게 좋지 않은데 걱정이 크다. 증원에 대한 반발은 거센데 법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파업에 나서면 못 이긴다. 증원의 부정적 효과를 여론에 알리고 정부와 병원에 타격을 주는 방안을 생각해 봤으면 싶다"고 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