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파업'카드 꺼내든 의사들…정부 상대 "사실상 9전 전승" 이번엔?
'의료 공백' 무기로 정책 변경 못해도 요구사항 관철[리뷰1]
- 박동해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계획에 반발해 의사들이 다시 '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총파업을 예고했고 전공의와 의대생들까지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이다. 다만 정부의 강한 압박과 싸늘한 여론에 실제 파업에 나설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1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해방 이후 70여년간 의사들의 단체행동은 크게 9차례에 걸쳐 실행에 옮겨졌다. 이때마다 정부 정책이 백지화하거나 후퇴해 사실상 '9전 전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의사들의 파업 등 단체 행동은 그 명분과 정당성을 떠나 항상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의사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면 당장 의료 공백 사태가 빚어졌고 의사들은 그 파급력을 이용해 투쟁 때마다 본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상당한 대가를 얻어냈다.
◇해방 직후 '한지의사' 논란으로 단체행동
의사들의 '단체행동'의 역사는 해방 직후부터 시작됐다. 먼저 1955년 '한지의사'에 대한 정규면허를 부여하려는 정치권에 대항해 의협이 앞장서 반대 의견을 냈다.
한지의사란 일정한 지역 내에서만 개업하도록 허가한 의사다. 일제강점기 때 의사가 없는 무의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 면허가 없더라도 경력과 기술이 인정되는 사람에게 지역과 기간을 한정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시작이다.
해방 이후 지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한지의사들에게 정규 의사면허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의협이 반발하면서 논란이 됐다. 결국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이 부결되면서 없던 일이 됐고 한지의사제는 1986년대에 폐지된다.
◇유사의료업자법, 보건소법 개정안 봉쇄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사단체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들을 본격화한다.
1965년 12월 국회 보건사회분과위원회가 유사의료업자에 대한 법률과 보건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유사의료업자법은 '접골사·침사·구사·안마사 등을 '유사의료'로 제도화하는 취지이고 보건소법 개정안은 의사가 아닌 공무원을 보건소장에 임용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의협은 1966년 긴급 임시총회를 소집해 해당 법안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입법을 저지하기 위한 '회원 총궐기'를 결의했다. 실제 그해 1월22일 서울시 동대문구 의사회가 휴진에 돌입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의과대학장들이 반대 건의문을 관계부처에 보내는 등 단체행동이 이어졌다. 의협은 회원 1명당 '악법 저지 활동'을 위한 특별회비도 모금했다.
당시 여당인 공화당이 법안 심의를 보류하기로 하고, 국회 보사위가 관련법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하면서 법안은 국회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 됐다.
◇'수련의 파동'…처우 개선안 마련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학병원과 국공립병원에서 일하는 인턴·레지던트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단체행동을 벌인 일명 '수련의 파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1차 수련의 파동'은 1971년 6월 국립의료원 인턴 32명이 봉급·수당 인상을 요구하며 집단사표를 제출한 것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국립대학병원의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집단사표 제출에 동조하며 사건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이들은 정부에 공무원에 준하는 처우·신분 보장, 의무직 수당 지급 등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미복귀 시 사표를 수리하겠다'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정부의 엄포에도 동조 단체행동이 늘어나고 사립대 병원의 인턴·레지던트들도 합류하면서 사태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결국 정부가 국립대 부속 병원 인턴들에게 공무원 신분을 보장하고 처우 개선을 약속하면서 1차 수련의 사태는 일단락된다.
하지만 정부가 적극적인 처우개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그해 9월 서울대 부속병원 인턴 39명이 집단 사표를 쓰고 병원을 떠나는 등 '2차 수련의 파동'이 일어났다. 레지던트들도 동조해 단체행동에 나서고 전국적으로 병원 기능이 마비됐다. 정부는 1972년부터 개선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마무리됐다.
◇의료보험 확대 앞두고…의료 수가 30% 인상 요구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제도 실시를 앞두고 의협은 의료보험수가가 비정상적으로 낮게 설정돼 있다며 개선책을 요구했다.
의협은 1988년 12월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어 의료보험 수가 조정 등 의료보험제도 개선을 정부에 촉구했다. 의협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요양기관 지정서를 반납하는 등 단체행동을 불사하겠다고 예고했다.
당시 의협 측은 한국생산성본부 용역 조사 결과를 근거로 의료보험 수가를 30.5% 이상 인상해야 한다는 조정안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의협은 1989년 2월24일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고 의료보험법 개정을 요구하는 성명서와 결의문을 채택했다.
의협의 투쟁 이후 여야 4당의 합의로 의료계가 요구한 △관리운영체계 일원화 △요양취급기관 강제지정제의 계약제 전환 △의료보험수가조정위원회 설치 △보험급여심사위원 독립기설 등이 대폭 수용됐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이 1989년 3월27일 통합의료보험법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단체행동의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다만 의협은 이후에도 전국민의료보험 시행과 관련해 의료보험수가 인상 등의 단체 입장을 지속해서 개진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의보수가에 대한 대토론회'를 연다며 그해 6월8일 3200개 의원의 문을 닫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그해 6월16일 의료보험수가 9% 인상을 확정 발표하면서 타협이 이뤄진다.
◇의약분업 못 막았지만…요구 사항 대부분 관철
'의약분업 반대 단체행동'은 의사들의 집단행동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진료와 처방, 의약품의 조제를 분리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1999년 12월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통과에 앞서 그해 11월30일 '올바른 의약분업 쟁취를 위한 범의료계 제1차 전국집회가 열렸다. 이후 의사단체는 이듬해까지 총 5차례에 걸친 단체행동에 돌입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의사들은 정부가 의약분업 추진이 의료비 증가, 보험재정 악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의약분업을 실시하기 위해 약사들의 임의조제 근절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의사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0년 7월을 기점으로 의약분업 실시를 결정했고 한달의 계도기간을 거쳐 전면 실시한다.
의약분업이 계획대로 실시됐지만 의사단체들은 2000년 10월 의·약·정 합의를 통해 의대 정원 10% 감축, 임의조제 근절 방안 마련, 수가 인상 등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도 했다. 의사단체는 제도 시행 이후에도 2002년 말까지 '실패한 의약분업을 철폐하라'는 내용의 전국 집회를 열었다.
◇34년 만에 추진된 의료법 개정안 폐기…'의사 고유 권한 침해'
2006년 노무현 정부는 변화한 의료 환경을 적용하고 행정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3년 이후 34년 만에 의료법 전면 개정을 추진한다.
의협은 개정안 중 의료인의 설명의무, 환자 유인 및 알선 부분적 허용, 비급여 진료비 고지의무, 당직 의료인 배치 의무 강화, 병원 내 의원 개설 허용, 유사의료행위 인정 등 10가지 항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했다.
이중 핵심 쟁점은 의료행위 규정에서 '투약'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간호사의 업무에 '간호 진단'이라는 용어를 삽입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의협은 '의사의 고유권한을 침해하고 국민 건강에 해를 입힐 수 있다'고 반발했다.
의협은 2007년 3월 4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등 집단행동을 강행했다. 개정안은 국회에 상정됐지만 정권 교체 후 계류되다가 국회 회기 종료로 결국 폐기됐다.
◇원격의료 반대 투쟁…관련법 폐기
2013년 10월 박근혜 정부는 국민편의 증대와 의료기술 발전 등을 이유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원격의료의 안정성과 유효성에 대한 입증 경과가 없다며 반대 입장을 냈다. 의협은 원격의료 도입에 맞서 총파업을 결의했으며 정부의 만류에도 실제 2014년 3월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이후 2차 파업도 예고했지만 의협과 정부가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유보된다.
이후 정부는 의협 측과 '시범사업 실시 후 결과를 입법에 반영한다'는 합의를 이룬 뒤 개정안의 입법을 다시 시도했지만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다.
이후에도 국내에서 비대면 원격의료를 제도화하기 위한 시도는 계속해서 의사단체의 반발이 부딪혔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게 됐다.
◇팬데믹 속 의료공백…의대정원 확대 유보시켜
2020년 8월 정부가 필수·지역 의료 현장의 의사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을 골자로 하는 의료정책을 추진하자 의사들은 전공의들을 중심으로 단체행동에 나섰다.
8월7일 전공의 집단휴진을 시작으로 14일 의협이 총파업에 나섰고 인턴, 레지던트들의 무기한 파업이 이어졌다. 이후 정부가 업무개시명령 발동과 고발 등의 강경대응에 나서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심화되고 의료공백 사태에 대한 부담이 무거워지자 정부와 의협 측이 9월4일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 보류'에 합의하면서 논란은 정리됐다.
정부가 고발을 취하하고 파업의 시발점이 됐던 전공의들도 9월8일을 기점으로 업무 복귀를 결정하면서 단체행동은 대부분 마무리됐다.
다만 파업에 동참해 동맹휴학에 돌입했던 대다수의 의대생들은 의정 합의에 응하지 않고 국가고시 실기시험 거부 등의 항의행동을 이어갔다. 이들이 실제 실기시험에 응시하지 않자 정부는 '재시험 기회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의사 공급 부족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의대생들도 9월 말을 기점으로 '시험에 응시하겠다'며 입장을 선회하자 정부도 이들을 구제하는 것으로 기조를 변경했다. 2021년 1월에 추가 시험이 진행되고 시험을 거부했던 의대생들 대부분이 원서를 냈다.
2020년 파업의 경우 의사들은 팬더믹 상황에서도 환자들의 치료권을 담보로 잡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도 끝까지 항의하던 의대생들에게 결국 추가 시험기회를 준 것을 두고 '불공정한 처사'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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