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겸상→망명→ KBS PD→기쁨조 폭로…아파트서 北공작원에 피살

리일남, 김영철서 이한영으로 개명…김정일이 이모부 [사건속 오늘]
한국서 사업 어려워지자 책 출간, 신분 노출…범인은 유유히 북으로

김정일의 처조카 故 이한영.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갈무리)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김정일이 하사한 고급 대저택에 살고, 모스크바와 제네바에서 유학하는 등 김씨 일가의 로열패밀리로서 모든 것을 누리고 살다가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총격을 당해 숨진 비운의 인물 故 이한영.

김정일의 처조카이자 김정남의 유일한 사촌형이었던 이한영은 김일성이 기거하던 주석궁의 내부 구조와 기쁨조의 존재 등에 대해 최초로 폭로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그 대가는 처참했다. 그는 신변 노출 1년 만에 북한 최고지도자의 기밀을 누설한 죄로 공개처형과도 같은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 이모 성혜림이 김정일 눈에 들며 로열패밀리로 입성

이한영은 여배우 성혜림이 김정일의 눈에 들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이한영은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의 아들로, 김정일은 이한영의 이모부였다. 김정일은 장남이었던 김정남을 무척이나 예뻐했고, 김정남의 유일한 사촌형이었던 이한영은 자연스럽게 김정일을 최측근에서 지켜보며 자랐다. 이한영의 가족은 김정일 관저 근처의 천고 6m, 300평 집에 살았으며, 이한영은 최소 주 2회 이상 겸상을 할 정도로 김정일과 가까운 사이였다.

앞줄은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그의 장남인 김정남. 뒷줄은 왼쪽부터 김정일의 부인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 성혜랑의 딸 리남옥, 아들 리일남(이한영).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갈무리)

◇ 자유 빼고 다 가진 이한영, '미국 여행'을 꿈꾸며 망명

이한영은 1976년부터 모스크바 외국어대에서 어문학부를 전공하고, 제네바에서 프랑스어 연수를 하는 등 초호화 유학 생활을 지냈다. 남부러울 것 없던 이한영이 한국으로 오게 된 계기는 뭘까. 그는 1982년 9월28일 제네바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김영철'이라는 북한 외교관으로 소개하며 미국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당시 스위스 대사관은 안기부와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었고, 북한에 대한 중요한 정보원이 될 수 있는 이한영을 설득해 단 사흘 만에 그를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이한영의 망명 계기는 많은 걸 가지고서도 이동의 자유를 갈망했던 청년의 우발적 결정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한의 엘리트 기자 출신 탈북인인 김길선은 이한영이 처음부터 탈북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을 것이라며 미국 여행은 핑계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갈무리)

◇ KBS PD 특채 입사 → 사업가…자본주의 사회의 쓴맛을 보다

정부는 이한영의 신변보호를 위해 망명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이한영'은 안기부가 지어준 그의 세 번째 이름이다. 북한에서 사용한 본명 리일남, 해외에서 외교관으로 위장해 사용하던 이름 김영철을 거쳐 '한국에서 영원히 살라'는 뜻의 이한영이라는 이름을 받은 그는 신분 세탁을 위해 성형으로 페이스오프까지 했다. 한국에서 그의 첫 직업은 KBS PD였다. 안기부의 도움으로 특채 입사한 그는 우리나라의 일을 러시아어로 전 세계에 방송하는 국제국 러시아어 방송 PD를 맡았고, 6년 동안 한국에 잘 정착해 모델 출신의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딸도 낳았다. 이후 사업을 결심한 이한영은 1990년 4월 KBS를 퇴사한 후 주택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횡령 혐의로 10개월간 옥살이를 하며 점점 궁핍해졌다. 이한영은 재기를 노리며 다양한 사업을 모색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이한영의 성형 전과 성형 후 모습.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갈무리)

◇ 13년 만에 母 '성혜랑'과 통화…北 김씨 일가 폭로한 책은 베스트셀러로

안기부의 지원까지 종료되자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언론사를 찾았다. 기자에게 "성혜림의 모스크바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고 있다"고 폭로한 이한영은 이를 계기로 망명 13년 만에 모친 성혜랑과 통화하게 된다. 성혜랑의 제3국 망명 성공 후 이한영은 1996년 6월 북한의 비밀을 담은 책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을 펴냈다. 이한영의 존재가 세상에 공개된 지 4개월 만이었다. 김씨 일가와 고위 간부들의 적나라하고 은밀한 사생활까지 여지없이 까발린 책의 소제목은 '생일선물비 100만 달러의 궁전', '모스크바의 밤과 로열패밀리', '25세가 정년, 김정일 '기쁨조'의 모든 것' 등으로 이뤄졌다. 이한영의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한영은 '추적 60분', '이주일의 투나잇쇼' 등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김정일의 사생활에 대한 폭로를 이어갔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갈무리)

◇ 망명 15년 만에 北 공작원에게 피살…향년 36세

이한영의 증언은 결국 비극의 결과를 맞게 된다. 신분이 노출된 이한영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껴 활동을 접고, 전화번호와 안경을 바꿨다. 경상도 사투리도 배웠다. 1997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이한영은 경기 성남 분당의 한 대학 선배 집에서 잠시 얹혀살고 있었다. 초콜릿 사업을 하던 그가 밸런타인데이 특수로 한참 바쁘던 그해 2월15일, 임시 거처인 선배의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이는 자신을 모 잡지사의 기자라고 소개하며 이한영과의 인터뷰를 이유로 그의 귀가 시간을 물었다. 전화를 받은 대학 선배의 아내는 기자라는 말에 별다른 생각 없이 이한영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이날 암살조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기시켰고, 2명의 공작원이 아파트에 올라가 이한영의 퇴근을 기다렸다. 밤 9시45분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이한영은 집 현관문 바로 앞에서 간첩들을 맞닥뜨리고 강렬히 저항했지만 총알은 이한영의 이마를 관통했다. 인터폰 화면으로 이를 지켜본 옆집 이웃은 곧바로 신고했고, 이한영은 119에 실려갔으나 뇌사상태였다. 이후 이한영은 열흘 뒤인 2월25일 향년 36세로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 News1 DB

◇ 사촌형과의 평행이론…김정남, 20년 후 말레이시아서 비슷한 최후 맞다

이한영을 암살하고 도주한 간첩들은 지하주차장으로 빠져나가 고속도로를 타고 남해안으로 달렸고, 북한 잠수함을 타고 북한으로 복귀했다. 이후 전향한 북한 간첩들이 이한영 암살조의 신분을 확인해 주며 그들의 정체가 명확히 밝혀졌다. 이한영 암살조는 북한에 돌아가 영웅 칭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북한의 고위급 인사 암살 사건은 이한영이 유일하다. 국외에서 암살당한 유일한 인물은 바로 이한영의 사촌동생 김정남이다. 김정남은 이한영 사망 20년 후인 2017년 2월13일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2명의 여성에게 독극물 테러를 당해 숨졌다.

syk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