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로 끝난 '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 공판만 106회

2015년 9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서 시작…국정농단 사태로 수면 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2023.11.17/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법원이 5일 이재용(55)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삼성물산 부당 합병 의혹'에 대한 첫 판단을 내렸다. 2015년 삼성물산과·제일모직 합병으로부터 8년 5개월, 검찰이 이 회장 등을 기소한 지 3년 5개월 만이다.

'삼성물산 부당 합병 의혹'이란 이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주도 아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계획·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대주주인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의 회계부정·부정거래 등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이 회장과 미전실이 삼성물산에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합병을 결정하고 합병 과정에서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시세 조종, 거짓 공시 등을 주도했다고 보고 지난 2020년 9월 그와 전현직 삼성 임원 등 11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어 삼바 분식회계 의혹 관련자들도 기소돼 두 사건이 병합됐다.

의혹의 발단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2015년 9월에 이뤄졌다. 앞서 양사는 5월 각각 합병 결의 사실을 공시하고 제일모직이 기준주가에 따라 산출된 합병비율 '1대 0.35'로 삼성물산을 합병했다. 사명은 삼성물산으로 결정됐다.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의혹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수면 위에 드러났다.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이 있는 이 회장이 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당합병 가능성이 제기됐다. 삼성물산 주주들 사이에서 합병 찬반 입장이 팽팽할 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찬성표가 합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017년 초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공단의 문형표(67) 이사장과 홍완선(67) 본부장을 기소했다. 이어 경영권 승계가 삼성의 '청탁 대상'이 됐을 것으로 보고 뇌물 공여 등 혐의로 이 회장을 상대로 두 차례 구속영장 청구해 신병을 확보한 후 삼성 관계자들과 함께 재판에 넘겼다. 문 이사장과 홍 본부장은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이 회장도 '정유라 승마 지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관련한 뇌물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이 회장의 국정농단 1심 재판을 시작한 2017년 3월 금융감독원은 삼바에 대한 회계 특별감리에 나섰다. 시민단체 등이 만년 적자였던 삼바가 코스피 상장을 앞둔 2015년 고의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바에피스)를 관계사로 바꿔 기업가치를 장부가액(2905억원)에서 공정시가액(4조8806억원)으로 높이는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금감원은 2018년 5월부터 2달 동안 감리위원회 3회,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을 5회를 열어 삼바가 콜옵션을 고의로 공시하지 않았다고 보고 이를 검찰에 고발했다. 같은 해 10~11월 증선위는 재감리에서 삼바가 삼바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바꾼 것을 고의 회계처리기준 위반으로 판단,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를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2018년 11월부터 증선위의 삼바 분식회계 고발 건의 수사를 시작했다. 당시 수사를 총괄한 것은 '국정농단 특검'에서 활약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송경호 특수2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삼성 불법승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조사부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행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과 전·현직 삼성 임원 등 총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1년9개월 만이다. 2020.9.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초기 수사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관련 자료를 찾는 데 집중했다. 수사 5개월여 만인 2019년 4월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관련 자료 증거인멸 정황을 파악한 검찰은 인천 연수구에 있는 삼성바이오 공장을 압수수색 해 공장 바닥 아래 숨겨진 노트북과 서버, 저장장치 등을 무더기 확보했다. 이후 같은 해 6월까지 증거인멸 과정에 가담하거나 지시한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삼성바이오·삼바에피스 임원 등 8명을 줄줄이 구속기소했다.

삼바 분식회계 관련 자료와 증거인멸 혐의자들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2019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의 원인으로 지목된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특수4부(부장검사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는 2020년 1월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 김종중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 등 삼성그룹 주요 임원들을 연이어 소환조사하며 '윗선' 수사에 열을 올렸다. 4개월 후인 5월26일 처음으로 이재용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7시간 동안 조사하고 사흘 뒤에도 소환조사했다.

당시 이 회장은 '국정농단'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을 받아 석방된 상태였다. 다만 대법원에서 뇌물공여·승계 청탁 혐의 등을 인정받아 불구속 상태로 서울고등법원에서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었다.

이 회장을 향한 검찰 수사는 2020년 6월부터 난항을 맞았다. 이 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 사건에 대한 기소 여부를 심의해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소집을 요청했다. 이에 검찰은 이 회장 등 삼성그룹 임원 3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20만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제출했으나 끝내 신병확보에 실패했다. 이어 같은달 26일 검찰수사심의위는 이 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수심위의 불기소 권고와 이 회장의 신병확보 실패로 수세에 몰린 검찰은 2달여간 장고 끝에 2020년 9월1일 이 회장 등 삼성그룹 임원 11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수사 착수 후 1년 9개월간 삼성전자를 비롯해 10개 계열사를 37회 압수수색했고 임직원 300여명에 대해 800여차례가 넘는 소환조사를 벌였다. 재판부에 제출한 수사기록만 총 437권, 21만 4000여쪽에 이른다.

2020년 10월 시작한 이 회장 등의 1심 재판은 약 3년 5개월 동안 공판을 106회 열고 증인 80여명을 재판 증언대에 불러 세웠다. 이 회장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한 날을 빼면 총 95회 직접 재판에 출석했다.

재판이 오랜 시간을 거친 만큼 그 과정에 굴곡도 많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판이 두 차례 연기돼 첫 공판준비기일로부터 5개월 만에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당초 선고는 지난달 26일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일주일여 연기됐다. 이 기간 검찰과 변호인 간 서너 차례 서면 공방이 계속됐고 재판부 앞으로는 10건의 탄원서가 제출됐다.

1심 과정에서 이 회장은 신병에 여러 변화가 있었다. 삼성물산 합병 의혹으로 기소된 지 4개월 만인 2021년 1월 이 회장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됐다.

수감 중 충수염으로 수술을 받아 부당합병 의혹 첫 공판을 같은해 4월에나 열 수 있었다. 구속 7개월 만인 2021년 8월 이 회장은 광복절을 맞아 가석방됐고 이듬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취업제한이 해제됐다. 그는 이로부터 두 달 뒤 삼성전자 회장직에 취임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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