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정치 테러' 왜? '혐오·막말' 팬덤정치의 값비싼 청구서
[선거판의 불청객]②공격적 언어, 뉴미디어 타고 '정서적 양극화' 심화
30% 극성 지지층만 확보하면 이기는 정치 구조 바꿔야
- 서상혁 기자, 홍유진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홍유진 기자 = 4·10 총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습격당하면서 '정치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정치 테러를 두고 한국 사회의 '정서적 양극화'가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상대 당을 향한 증오의 언어가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타고 증폭됐고 극단적 폭력 행위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당분간 모방범죄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과거엔 정치적 계산…요즘엔 '감정' 기반 테러
'정치 테러'란 정치적인 이유로 정치인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그 대상이 공중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테러'는 아니다. 테러방지법에 따르면 테러란 공중이나 정부를 협박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범죄로서, 기차 등 공중이 이용하는 운송 수단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배상훈 우석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정치적 급진주의자에 의한 범죄 정도로 표현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두 차례 정치인 피습 사건이 있기 훨씬 전에도 정치인을 위협하는 행위는 꾸준히 있었다. 1949년 백범 김구가 안두희에 의해 저격당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승만 정부 때는 일부 정치인이 이정재·임화수 등 이른바 '정치깡패'를 동원해 난동을 부렸다. 김두한 한국독립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오물을 투척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정치 테러범'이란 단어보다 '정치 깡패'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였다.
정치 테러에 대한 본격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2006년 5월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커터칼 습격'을 당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5·31 지방선거에 출마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중 지모씨가 휘두른 커터칼에 턱밑 부위 11㎝ 길이의 자상을 입었다.
2022년 3월에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촌 거리에서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 지지를 당부하던 중 모 정치 유튜버로부터 둔기로 뒷머리를 가격당했다.
최근의 정치 테러는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과거에는 정치인이 주체였다면 요즘에는 특정 진영의 강성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방 직후의 정치 테러는 대체로 정치인들의 당내 권력 투쟁 과정에서 벌어졌는데, 지금은 상대 진영에 대해 일방적인 증오를 표출하다가 테러로 나타나는 양상"이라며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면서 테러가 쉽게,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상대 당 향해 부글부글 끓던 '증오'…폭력으로 분출
전문가들은 근래의 정치 테러를 '정서적 양극화'의 극단적 사례로 보고 있다.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증오가 폭력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정서적 양극화란 이념을 넘어 정당이나 인물의 선호도에 따라 양극단으로 멀어지는 현상으로, 상대 당과 정치인은 물론이고 당의 지지자까지도 적대시한다.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팬덤 정치'가 확산하면서 정서적 양극화도 본격화됐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서적 양극화 현상을 쉽게 말하면 상대 당 관련자를 아예 쳐다보기도, 말을 섞기도 싫다는 뜻"이라며 "정서적 양극화가 표출된 대표적 사례가 A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건 싫으니 B당 후보가 좋지 않더라도 그에게 표를 주는 '부정적 투표'"라고 설명했다.이어 "정치 테러의 경우 그 감정이 조절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서적 양극화가 '폭력'으로 표출된 사례로는 '2021년 미국 의사당 난입 사건'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선거에서 패배하자,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해 의회에 난입했다. 유혈 사태로 확대되면서 6명이 사망했다.
배상훈 교수는 "정치인들의 '타도하자'라는 워딩은 말 그대로 정치적 표현인데, 심리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현실에서 정말 타도돼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래서 외로운 늑대나 급진적 개인에 의해 정치적 테러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유튜브…불난 집에 부채질
특히 뉴미디어 환경이 정서적 양극화를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파적으로 편향된 콘텐츠가 유튜브나 엑스(X·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끊임없이 유통되면서 강성 지지층의 확증 편향을 심화시키는 모습이다.
장 교수가 2021년 6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정치·시사 유튜브 채널 중 구독자 상위 110개 채널의 동영상 270개에 달린 댓글 약 700만개를 20개 군집별로 분류한 결에 따르면, 긍정적 군집은 4개에 불과했다. 상대 당의 정치인이나 지지자를 증오하는 댓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도권 미디어에는 진보나 보수를 떠나 양쪽 의견을 보도하려는 윤리가 작동하지만, 뉴미디어는 더 관심있는 분야만 보게 해준다"며 "그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증오나 공격성이 커지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까지 뉴미디어에 올라타, 정서적 양극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 교수는 이를 '소선거구제'의 폐해로 설명한다. 그는 "전체 유권자 중 25~30%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해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될 수 있다"며 "독일은 다수당이 되려면 연정이 필수적인 만큼, 상대방을 배려해야 하지만 한국은 오히려 공격적인 말을 해야 인기가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총선 두달 남기고 벌어진 정치인 피습…경찰 요인 경호 개시
전문가들은 지금같이 감정이 '과잉'된 환경에서는 언제든 또다른 정치 테러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배 교수는 "집단 중 일부는 테러범을 두고 '악마를 제거해 줬다'며 열사처럼 간주할 수 있다"며 "몇 개월은 모방 범죄의 위험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은 공격적인 내용을 담은 콘텐츠를 그대로 흡수해 마치 정치 테러를 '세상의 정의'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며 "테러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동에 옮길 수 있는데 이를 '관찰 학습 이론'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원 선거를 두달여 남기고 거물급 정치인을 향한 테러가 발생하면서 경찰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본격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 정치인과 대중의 접점이 넓어지는 만큼 테러의 위험성도 높아진다.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경찰은 주요 정치권 인사에 대한 신변 보호를 강화했다. 현재 경찰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한해 '근접 신변보호팀'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도 정당 측과 협의를 거쳐 신변보호팀 조기 배치하기로 했다.
외부에 공개된 정당 행사에는 전국 36개 기동대를 '전담보호부대'로 지정하고, 관할 경찰서 형사 등으로 구성된 '자체 신변보호팀'을 배치해 근접 보호에 나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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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찰이 올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한 선거 범죄는 모두 2616건. 오는 4월10일 총선을 전후로 2600여명의 '불청객'이 선거판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올해 선거 범죄는 과거와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딥페이크'라는 첨단 기술을 등에 업은 허위 사실이나 정치인을 향한 테러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 총선을 앞두고 각종 선거 범죄의 위험성과 대응 현황을 짚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