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 '뭐든 잘 안다고 착각' 의사들의 과잉 확신
김윤(서울대 의대 교수 · 의료관리학)
[장면1] 지난해 8월 메디컬인사이드의 ‘사법입원제로 '묻지마 칼부림' 해결될까?'라는 필자의 글에 현직 정신과 의사라고 밝히신 분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올린 적이 있다.
"(메디컬인사이드에 언급된) '매년 정신과 퇴원 환자 약 1700명이 입원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 외상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고, 그중 약 절반은 싸구려 입원 치료로 인한 심리적 외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통계는 처음 보는데 어디서 나온 자료인지 궁금하네요. (중략) 현장을 잘 모르시는 것을 떠나서 통계나 계산에 좀 약하신 듯. 정확한 근거에 기반해서 글 쓰셔야 합니다."
댓글이 비판한 내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통계를 기반으로 쓴 것이다. OECD 보건의료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신과 퇴원환자의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2배 가량 높다. 이를 근거로 계산하면 매년 정신과 퇴원 환자 약 1700명이 자살을 하고, 그중 약 절반은 우리나라 정신과 입원 치료의 질이 OECD 국가들에 비해 낮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정신과 의사는 정신과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전문가지만, 반드시 정신과 의료정책을 잘 아는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다. 환자를 진료하는 것과 의료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은 모두 의료 영역에서 속하지만, 다른 전문 분야다. 만약 위에 댓글을 쓴 정신과 의사가 의료정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정신과 의료정책에 대해 더 잘 알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저런 댓글을 달았을까?
[장면2] 전국 40개 의과대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적절한 의대 증원 규모가 350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국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족한 의사를 충원하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을 3000명 늘려 20년 동안 배출해야 한다.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의대 정원을 4500명 늘려서 30년 동안 배출해야 한다. 이 같은 연구 결과와 국제 통계가 버젓이 있는데도, 협회는 이를 반박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의대 증원 규모가 350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협회는 350명이어야 하는 이유로 "의학 교육 질 저하를 예방하고 교육 현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의과대학들이 강의실과 실습실을 더 늘리지 않아도 의대 정원을 2151명 더 교육할 수 있다고 한 것과 왜 6배 넘게 차이가 나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대학 본부에서 증원 규모 부풀렸다고 주장하지만 6배 넘는 증원 규모의 차이를 일부 대학의 부풀리기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성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 의과대학장들이 모인 협회에서 새로운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납득할 만한 설명도 준비하지 않은 채, 적정 의대 증원 규모의 10분 1, 불과 2개월 전 자신들이 정부에 제출한 증원 규모의 6분의 1에 불과한 숫자를 적절한 증원 규모라고 발표한 것이다. 존경받는 의대학장들이 모인 단체에서 내놓은 숫자이니 근거를 대지 않아도 국민들이 믿어줄 것으로 생각했을까?
[장면3]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서울대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당 대표 비서실장이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전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이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을 수 있는지 물었고, 응급의학과 교수는 부산대병원 담당 의사에게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서 수술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 같은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수술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부적절하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시 대량 출혈이 발생하거나 그 과정에서 생긴 핏덩어리가 기도가 눌려 환자를 질식시킬 수도 있다.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옮기는 행위 자체가 환자의 사망 위험을 크게 높인다. 어려운 수술일수록 수술을 많이 해본 병원이 수술을 더 잘한다. 부산대병원은 서울대병원에 비해 이재명 대표와 같은 환자 수술을 10배 더 많이 해왔다.
장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의사들의 자신들의 전문성을 과신한 것이다. 내과 의사가 외과 수술을 잘할 수 없는 것처럼 임상의사가 의료정책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의사들은 의료정책을 전문가들보다 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의사들의 자기 전문성에 대한 과신은 개인 차원을 넘어서 집단 수준에서도 재현된다. 의대학장들이 모여서 내놓은 숫자이니 근거가 없거나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믿어줄 것이라고 착각한다.
의사들이 이처럼 자기가 잘 아는 영역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전문가이지 외상환자 진료 전문가는 아니다. 사람들은 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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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 붕괴 위기에 처한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나쁜 의료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논쟁적 존재'가 되는 그가 '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를 통해 의료계 문제를 진단하며 해법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