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끼워진 첫 단추, 개 식용 종식 늦어져"…전진경 대표의 회한[리뷰1]

1987년부터 활동한 1세대 동물권 운동가 전진경 카라 대표 인터뷰
개고기 문화 비판, '우리 문화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돼 '거부감'

편집자주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해명과 반박이 거듭되면서 본질은 사라지고 왜곡된 파편만 남게 됩니다. [리뷰1]은 이슈의 핵심을 한눈에 파악하고 전체를 볼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도 함께 담겠습니다.

개 식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10일 서울 마포구 카라더불어숨센터 외벽에 관련 현수막이 붙어 있다. 2024.1.10/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도살장에 실려 가는 아이들을, 그 사람을 잡기 위해서 그 아이들을 두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어요…같이 갔던 활동가가 그냥 철장을 부수고 구해오자고 했는데 제가 '우리는 불법적으로 하지 말자'고 막았던 게 후회되고 속상해요. 그것 때문에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했어요."

동물권 운동 1세대인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는 10년 전인 2014년 1월 한 도살장에서 마주친 개들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마리가 들어가기도 좁은 철장에 얽혀서 넣어진 리트리버 두마리와 말라뮤트 한마리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경매장에서 도살장에 팔려 온 이 개들을 구하려 전 대표는 동행한 동불보호감독원을 불러 설득했지만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만 받았다. 자체적인 구조를 두고 고민하는 사이 3마리의 개는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도살돼 고기가 됐다.

일주일 뒤 더 이상의 잔인한 죽음을 막기 위해 다시 찾은 도살장에는 여전히 피냄새가 진동했다. 쇠파이프에 전기선을 연결한 조잡한 전기 도살봉에는 죽음의 순간 끝까지 저항했던 개들의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최근 개들이 고기가 되던 역사에 마침표가 찍혔다. 식용으로 개를 사육·도살·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개 식용 금지법'(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안)이 지난 9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3년의 유예기간이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개들은 더이상 고기가 되지 않는다.

(2014년 1월 도살된 개들의 모습. 전 대표는 이 개들의 영상을 아직도 휴대전화에 보관하고 있었다)

◇"큰 숙제 해결해…첫 단추 잘못 끼워 너무 큰 희생"

뉴스1은 법안의 국회 통과 이튿날인 10일 그동안 개 식용 반대 운동 전면에 섰던 전 대표를 서울 마포구 카라 더불어숨센터에서 만났다. 이날 센터 외벽에는 '마침내 개식용 종식'이라는 글씨가 적힌 커다란 노란색 현수막이 걸렸다. 인터뷰를 진행한 센터 3층 '생명공감 킁킁도서관'의 창문으로 현수막을 통과한 노란색 빛이 쏟아졌다.

전 대표는 법안 통과 소식에 상기된 표정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법안에 대해 "큰 숙제를 해결한 것"이라며 "제가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 돼주고 가족이 돼줬던 아이들에게 뭔가 해준 것 같아 기쁘다"라고 했다.

하지만 법 통과를 위해 싸워온 과정들, 특히 이를 위해 희생된 생명들을 이야기하면서 전 대표는 이내 얼굴을 구기고 눈물을 보였다. 오늘 이 순간이 오기까지 수많은 죽음이 있었다. 오죽하면 전 대표는 "제 삶을 관통하는 단어는 슬픔"이라고 했다.

수없이 많은 생명을 구하려 구출 현장을 다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도 많이 생명이 죽어가는 장면을 직접 봐야만 했다. 전 대표는 개 식용 문제가 오래전에 해결됐어야 할 과제였지만 많은 오해로 늦어졌고, 그로 인해 자신이 봐왔던 많은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괴로워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서 지금까지 너무 많은 고통, 너무 많은 세월, 너무 많은 자원이 낭비됐어요. 결국에는 없어질 산업인데 무방비하게 두어서 이렇게 방만하게 커지는 결과를 낳은 것 같아요."

전 대표는 개고기 문화에 대한 비판을 국민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면서 민족주의적 반감이 생긴 것이 개 식용 문제 해결을 지체시킨 원인이라고 짚었다. 그는 외부에서 개 식용에 대한 비판이 있었을 때 '이것이 정말 건강한 문화인지 우리가 보존해야 바람직한 문화인지' 논의가 있어야 했는데 이런 것들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했다.

전 대표는 개 식용이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고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회색지대에 수십년간 놓여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사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형 개 농장들이 탄생하고, 임의적이고 잔인한 도살이 벌어졌으며 개 식용 산업이 성행했다.

이어 그는 실제 동물단체들에 의해 끝없이 문제가 제기되면서 동물보호법 등 관련법이 제·개정돼 개를 식용목적으로 도살해 판매하는 것이 불법화됐음에도 국가가 손을 놓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가 10일 서울 마포구 카라더불어숨센터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12/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개 식용 업자들 반대는 '경제적' 이유

인터뷰 중 전 대표는 과거 개들을 도살하는 작업을 했던 이가 자신을 만나 다른 직종으로 전업을 하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그리고 당사자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내보였다.

"저는 사실 이 일이 정말 싫었어요" "지옥에서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비위생적이고 끔찍한 상황에서 개를 계속해서 죽이는 일을 해 온 것이 사실은 고통스러웠다는 고백이었다. 전 대표는 "그분들도 동물을 학대하고 싶어서 개 농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 벌려고 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 대표는 대한육견협회 등 개 식용 산업 업자들이 '음식 주권', '식문화 보존' 등을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명분일 뿐이며 '경제적 이익' 때문에 산업이 굴러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구출 활동을 위해 개 농장을 조사해 보니 개 농장은 상당히 저비용의 사업이었다. 개들에게는 음식물쓰레기와 축산부산물을 사료로 먹이고 평소에 이렇다 할 축사 관리라는 게 없다는 게 전 대표의 주장이다.

"개는 다산을 하고 질병에도 강인하고 사람을 잘 따라서 키우기가 어렵지가 않아요. 그리고 개 농장에서는 개들에게 물조차 안 줘요. 쓰레기를 먹여야 하는데 애들이 안 좋아하잖아. 안 죽으려고 먹는 건데. 그래서 그걸 먹이기 위해 물에 쓰레기를 타 줘요. 그럼 목이 마르니까 먹거든요."

전 대표가 육견협회 등이 전·폐업을 이유로 정부에 4조원가량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히려 그는 현재까지 불법에 가까운 방법으로 이득을 취해온 만큼 이제는 사업을 접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개 식용 종식이 '시기'의 문제였지 결말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개고기 수요가 줄면서 공급도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사양산업'이라는 것이다. 전 대표는 자신이 만난 개 식용 사업 종사자들도 '이 산업이 10~20년 내에 끝이 날 것'이라는 의견을 숨기지 않았다고 했다.

4월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추가된 민법 98조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2023.4.2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왜 개만?" 질문에…"현실적 대응이지만 개가 특별해 이유도"

마지막으로 전 대표에게 동물권 단체들이 받는 주된 비판을 질문으로 던졌다. "왜 개만 특별히 보호되야 하는가"이다. 이에 대해 전 대표는 먼저 '현실적' 이유를 들었다.

소와 돼지, 닭과 같은 동물 또한 귀중한 생명이지만 관련 산업이 너무 구조화돼 있고 이들을 구조해야 한다는 인식도 낮은 상태에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 대표는 사회적 운동에 있어 한정된 자원을 유용하게 쓰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사회적 공감이 형성된 개 식용 반대에 써온 것이라 설명했다. 개를 바탕으로 이런 운동이 확산되면 다른 동물에 대한 인식도 바껴갈 것이라는 것이 전 대표의 바람이다.

다만 그는 "개가 독보적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숨기지 않았다. 가장 오래전 가축화된 동물로 이제 인간과의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개는 정말 위대한 인류의 친구가 맞아요 개가 없었으면 인류가 지금처럼 될 수 없었기에 친구를 유대관계 속에서 보호 장치를 마련해 줘야 해요."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했던 전 대표는 1987년 국내 최초의 동물보호단체인 '한국동물보호협회'에 가입한 이후 꾸준히 동물보호 관련 자원활동를 해왔다. 카라의 전신인 '아름품'의 창립멤버가 됐고, 2014년부터 카라의 상임이사직을 맡으며 전임 활동가로 나서게 됐다. 2021년부터는 카라의 대표를 맡고 있다.

potgu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