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해온 개고기 장사, 나이 칠십에 다른 일 할 수 있을까"[리뷰1]

개고기·보신탕집 업주들 '한숨'…"업종 바꾸면 손님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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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 개고기 가게 사진.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狗肉(개고기)'

인파를 뚫고 대림중앙시장 골목 귀퉁이를 지나자 당당히 '개고기'라고 적힌 간판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여느 정육점처럼 새빨간 고기 덩어리가 냉동쇼케이스에 진열돼 있었다. 흔히 보던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동물 형체 그대로를 유지한 채 전시돼 있었다. 사지는 멀쩡한데 머리만 사라진 식용 개고기는 이렇게 하나의 먹거리로 사람들에게 팔리고 있었다.

개고기 판매는 그동안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 있었다. 축산물위생관리법, 식품위생법, 동물보호법 등에 따르면 식용 목적의 개 도살과 개고기 유통은 불법으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오랜 전통이라서, 어떤 법도 명확히 이를 불법이라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개고기 판매는 활발히 이뤄져왔다.

하지만 지난 9일 '개 식용 금지법'(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개의 식용 목적 사육, 도살, 유통, 판매 행위가 금지됐다. 다만 현존하는 식당, 농장들에게는 3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법 시행 3년 이후에는 이같은 행위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 한평생 개고기 팔았는데…무용지물 된 중탕기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전모씨(73)에게 개고기는 평생의 '업'이다. 동네가 변하면서 주요 고객층은 중국인으로 바뀌었지만 전씨는 30년간 자리를 지켰다. 서울로 상경해 장사를 시작한 전씨는 당시 '숨바꼭질' 같은 단속을 회상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개고기 단속이 시작됐다.

"간판을 못 달게 했으니까, 개고기 파는 집들은 빨간 배경에 하얀 글씨로 '보신탕'이라고 적힌 깃발을 걸어놨어요. 눈에 띄긴했지, 그래도 단속하는 차가 깃발만 쏙쏙 걷어가고 그랬죠, 그래서 그 빨간 깃발을 한번에 10개씩 사놨어, 빼가면 또 걸려고."

전씨가 기억하는 80년대는 전국이 국제 축제를 맞이할 준비로 들썩였다. 정부도 외국인 관광객들의 시선을 의식해 개 식용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반려동물 문화가 짙은 서양 사람들이 개를 먹는 것을 혐오한다는 이유에서다. 밖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는 시장 구석에서 개고기를 팔던 전씨는 한번도 '개고기'라는 메뉴를 글자 그대로를 간판에 걸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민속고기라고 써놓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그냥 찾아왔어요. 아니면 사철탕, 보신탕, 영양탕, 요즘엔 보신탕도 못 써요. 어떤 사람들한테는 평생을 먹던 고기지만, 이제 먹던 사람들도 다 돌아가시고 없고, 그 자제분들도 생각나면 가끔 들르는데 거의 안 먹죠."

지금도 개농장에서 고기를 배달해 주는 사람들이 혹시 모를 민원을 피하기 위해 조용한 새벽에 가게 앞에 물건을 놓고 간다고 전씨는 설명했다. 이렇게까지 눈치를 보며 살았지만, 개고기 판매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결국 할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어서"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전씨는 보신탕과 함께 '건강원 사업'도 함께해 왔다. 가게 한쪽엔 30여년 전 구비한 '무공해 중탕기' 8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다 '즙'으로 만들어주던 것들이었다. 바로 옆 벽면 선반 위 빛바랜 '추출가공사 자격증'은 먼지가 수북히 쌓은 액자 안에서 끼워져 놓여 있었다. 수요가 줄면서 자격증이나 중탕기는 어떠한 즙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무용한 것이 됐다.

"개고기 판매나 이런 사업 관련해서 정부 인정을 받으려고 수없이 노력을 했는데 안 되더구요. 건강원이 대한민국의 한 90%는 없어졌어요. 가게 자릿세는 내야 하니까 도움이 될까 해서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또 인터넷으로 싸게 팔고 하니까 장사가 안 돼서 중탕기도 팔려고 내놨는데 이제 고철 덩어리일 뿐이에요."

전씨가 80년대 구매한 중탕기 한 대당 가격은 그때 돈으로 80만원 정도다. 전씨는 지금은 오히려 돈을 주고 팔아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집집마다 개 한마리씩은 키웠던 그 시절, 복날이 되면 개를 한마리씩 끌고 기계를 갖춘 전씨의 건강원을 찾아오는 동네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처럼 애완견, 반려견, 식용견 등 구분이 없던 시대였다. 전씨에게도 손님에게도 한 마리 혹은 반 마리 단위로 주문이 가능했던 건강식품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전씨가 개고기를 팔면서 시작한 사업은 건강원 말고도 또 있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팔 수밖에 없던 전씨는 주변 상인 소개로 개고기와 민물생선을 같이 판매했다. 해본적 없던 생선 장사를 하다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입김이 나오는 겨울에 매일 물을 만져야 하다보니 손이 트기도 일쑤였다. 같이 가게 일을 하던 아내도 몇달 전부터 고관절 수술로 치료 재활을 시작하자 이제는 체력의 한계도 느꼈다.

이날도 전씨는 내놓은 지 3년 넘는 가게 문 앞을 서성이다 잠깐씩 손을 녹이려 전기 난로 앞에 앉았다. TV를 보다가도 누군가 냉동고 앞을 기웃거리면 다시 일어나 가격을 흥정하러 나섰다.

1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의 한 폐업한 보신탕 식당.

◇ '90년 넘은 보신탕 가게 터'…업종 바꾸면 손님 찾아올까

서올 동대문구 경동시장 굽이진 골목 전선에 간신히 매달린 낡은 간판 하나가 가게 방향을 가리켰다. 전날 내린 폭설로 빛이 들지 않은 시장 골목 바닥은 곳곳이 빙판길이었다. 그럼에도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흑염소 영양탕' 집으로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속속 도착했다. 모두 이 집을 최소 10년 이상 알아온 단골들이었다.

이곳은 90여년간 보신탕을 팔아온 집이다. 주인은 중간에 한번 바뀌었다. 이모씨(67)는 지인 소개로 65년 된 이 자리를 물려받고 아내와 함께 보신탕 가게를 운영한 지 28년째다.

"이제 좀 할 만하니까 또 이렇게 막는다고 하니 막막하죠. 똑같은 가축인데 흑염소처럼 인허가를 내가지고 공장을 만들어서 작업장을 검수하고 깨끗하게 만들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방법이지 아예 없애버린다는 게 사실 말도 안 되잖아요."

이씨는 처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신탕 집을 시작했다가 낭패를 봤다고 했다. 다른 소상공인들처럼 코로나19 이후로는 회복이 안되고 있을뿐더러 개고기에 대한 주변 인식이 변화한 것을 느끼기도 했다. 대부분 애완견을 키우는 지인들이 이젠 보신탕을 안먹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씨도 업종변경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미 메뉴 중 하나로 자리잡은 삼계탕만 팔까 고민했지만 전문점이 워낙 많아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보신탕 종류는 전통과 신뢰가 중요한데, 90여년간 같은 자리에 개고기를 먹으러 온 손님들이 다른 메뉴를 먹으러 오겠냐는 것이다.

서울시도 식품위생법 상 '원료로 인정되지 않는 식품'을 조리·판매하는 소상공인이 업종 전환 또는 폐업 시 경영 및 창업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조례안을 마련해두었지만 아직 얼마를 지원할 지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다. 더구나 지금 당장 이미 생계 유지가 어려워진 식당 사장들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는 것도 위험 부담이 크다.

"아르바이트생 안 쓰고 아내와 알뜰하게 운영했는데 코로나19 때 도저히 자릿세도 못내겠어서 대출 1억을 받았어요. 앞으로 5년은 더 갚아야 하는데 3년 뒤에 폐업하면 돈을 한꺼번에 줘야 하잖아요. 그 돈을 어떻게 내겠어요. 지금도 장사가 너무 안되서 영업 끝나고 한 건에 5000원씩 받는 배달 일도 시작했어요. 그나마 이렇게 하니까 버틴 거지 동대문구에 원래 보신탕집이 15곳인가 있었는데 이젠 저희 포함해서 한 다섯집밖에 안 남았어요."

한편 법이 공표되고 난 뒤 즉각적으로 신규 개농장, 개음식점 등의 설립이 금지된다. 현존하는 식당, 농장 등은 폐점, 폐쇄를 위해 이행계획서를 6개월 이내에 정부에 제출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