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술 안마셨으니 만원 빼줄게"…치솟는 물가에 '더치페이'도 진화
비음주자 술값·채식주의자 고깃값 제외 등 셈법도 복잡
직장 내 선배가 후배 밥 사주는 문화도 사라지는 추세
- 김민수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술 안 먹는데, 저 친구는 깎아주자."
직장인 A씨(28)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친구 3명과 술자리를 가졌다. 생선찜이 유명한 가게에서 술과 음식을 시켰다.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야근이 끝난 후 뒤늦게 합류했다. 이 친구는 다음 날에도 일찍 출근해야 했기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
계산을 해보니 약 15만원 정도가 나왔다. 소주 3병과 맥주 6병까지 술값만 4만5000원 정도가 나왔다. 결국 A씨를 포함한 3명은 약 4만원, 술을 마시지 않은 친구는 약 3만원을 지불했다. 좀더 엄밀하게 계산했다면 술을 마신 이들이 돈을 더 내야 했지만 친한 친구들인 탓에 더치페이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됐다.
12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더치페이(각자내기)' 문화도 진화하고 있다. 앞선 사례처럼 비음주자에겐 술값을 부담시키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채식주의자에겐 고기가 들어간 음식값을 빼주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더 꼼꼼해진 더치페이"
금융권에 재직 중인 50대 이모씨는 직장에서 선후배들과 회식할 경우 "기존 경비로 당연히 대부분 해결한다"며 "개인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직장 내에서는 더치페이가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특히 더치페이를 하면서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주류 가격이다. 최근 가격이 안 오른 것이 없지만 주당들에겐 소주와 맥주 가격 인상이 가장 피부에 와 닿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소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16.79로 전년 동월 대비 6.2% 상승했다. 맥주의 소비자물가지수 또한 112.38로 전년 동월 대비 5.0% 올랐다.
이렇다 보니 모임에서 술을 먹지 않는 경우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등 더치페이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직장인 권모씨(29)는 "소줏값이 올라서 비싼 곳 가면 6000원씩도 받는다"며 "내 주변에는 많으면 2~3병은 마신다. 그런데 계산을 비음주자와 똑같이 나눠서 내는 것은 미안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종로구의 직장인 박모씨(28) 또한 "술을 안 먹었거나 늦으면 그런 상황을 참작해서 금액 일부를 빼주기는 한다"며 "요즘 물가가 다 올라갔으니까, 조금이라도라도 아끼자는 마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따로 술을 들고 갈 수 있는 콜키지 프리 식당을 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 콜키지 프리란 코르크 차지(Cork Charge)를 줄인 말로 음식점에 술 반입을 무료로 허용하는 것을 뜻한다
직장인 이모씨(28)는 "소주와 맥주가 오르니 차라리 콜키지프리 식당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위스키를 싸게 구매했는데 지인들과 콜키지 프리 식당에서 소주·맥주 대신 양주를 마시는 게 차라리 깔끔하고 돈도 아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선배가 후배 밥을 사준다?…"상대방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야"
고물가에 직장 내에서 선배가 후배의 밥과 커피, 술 등을 사주는 문화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부산에서 대학 교직원으로 재직 중인 이모씨(31)는 "여전히 직장 선배가 후배들에게 (밥 또는 술을) 사주는 문화가 있다"면서도 "회사에서 식비가 나오기도 하고 선배가 가끔 사줄 순 있어도 매번 그럴 순 없으니 후배도 눈치껏 나눠서 낸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인 류모씨(34) 또한 "여전히 선배가 밥을 사주는 경우가 있지만 웬만하면 커피는 각자 사먹는다"고 말했다.
주류 업계에 재직 중인 엄모씨(31)는 "회사에서 선배가 왜 대신 사주나. 당연히 회식이면 회사 카드로 결제한다"면서 "그리고 옛날에는 커피까지도 선배가 사주는 경우가 있었으나 요즘에는 무조건 각자 내기가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kxmxs4104@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