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범죄 삼청교육대로 해결?…그곳은 지옥이었다[이기범의 리스펙트]

삼청교육대 피해자 안중근씨 "내 인생은 스물네살에 멈췄다"
4주에서 2년으로 늘어, 구타·폭행 일상…43년 만에 재심 청구

편집자주 ...혐오로 얼룩진, 존중이 사라진 시대.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존중'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제5공화국 시절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피해를 입은 안중근씨가 22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12.2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처음엔 4주였다. 교육만 잘 받으면 전과를 지워주겠다는 경찰의 말에 혹했다. 그리고 4주는 3개월로, 6개월로, 다시 2년으로 늘었다. 결국 집단 저항이 벌어졌다. 재판은 변호사도 없이 보름 만에 끝났다. 무기징역을 구형받았고, 15년형이 선고됐다. 삼청교육대 피해 생존자인 안중근씨(67)의 이야기다. 그렇게 안씨의 시간은 1980년, 스물네살에 멈췄다.

"내가 생활한 그곳이 지옥이었다. 정부, 국가는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 <뉴스1>과 만난 안씨는 삼청교육대를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목봉체조와 범죄자들. 흔히 삼청교육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목봉체조? 범죄인 교화?…실제 삼청교육대 모습은

"소위 깡패는 몇명 없었다. 늙은 노인네와 소년들도 있었다. 이미 잘못에 대한 벌을 받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새벽에 눈을 뜨면 연병장으로 끌려갔다. 잠자는 시간은 많아야 2~3시간이었다. 순화 교육이라는 이름의 가혹 행위가 이어졌다. 홍보 영상에서는 목봉체조에 그쳤지만, 실제로는 군인들이 목봉 위에 올라탔다. 이를 지탱하지 못하자 현역병이 목봉에서 떨어졌다. 나무로 만든 둔기나 군홧발 폭행이 이어졌다. 맞는 게 일과였다. 기관단총을 공중으로 쏘아대며 겁을 주기도 했다.

안씨는 "총에 맞아 죽을까 봐 4주를 버텼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주면 주는 대로 먹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다. 당시 수칙이었다.

그러나 4주 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추가로 3개월의 근로봉사를 해야 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관령 7908부대에서 노역을 했다. 계곡 구비구비마다 진지와 참호, 교통호를 팠다.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이었다. 안씨는 "순화 교육 때는 짬통을 뒤졌는데 대관령에서는 뱀, 땅강아지, 굼벵이를 먹으며 버텼다"고 말했다.

◇4주, 3개월, 6개월, 2년 그리고 15년

그사이 3개월은 6개월이 됐다. 원주 603포부대를 거쳐 홍천 11사단으로 옮겨졌다. 사단 휴양소를 짓는 작업을 했다. 중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안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행정반에 불려 갔다. 보호감호 2년이라는 서류가 주어졌다. 맞을까봐 도장을 찍었다. 안씨는 화천군 사창리 27사단 77연대 4대대로 보내졌다. 군홧발에 눈썹 주변이 찢어지고, 잇몸이 으스러졌다. 폭행을 자행하는 조교들에게선 술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그 일이 벌어졌다. 1981년 10월1일 국군의 날. 50대 감호생 한명이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이를 따져 묻기 위해 대대장을 만나 면담하는 사이 흥분한 감호생들의 집단 저항이 벌어졌다. 감호생 2명과 중사 1명이 숨졌다.

이후 체포된 20여명이 원주 1군사령부 헌병대로 끌려갔다. 3~4일간 고문이 이어졌다. 춘천 2군단 헌병대로 넘겨져 재판을 받았다. 10월5일에 시작된 재판은 같은 달 20일에 끝났다. 15년형을 선고받았다. 항소는 기각됐다. 변호사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다.

제5공화국 시절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피해를 입은 안중근씨가 22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12.2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43년 만의 재심…"이제는 내 인생 찾고 싶어"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안양교도소, 안동교도소를 거쳐 83년 3월17일 청송교도소로 옮겨졌다. 그리고 1988년 12월23일 안씨는 가석방됐다. 처음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지 약 9년 만에 사회로 나왔다.

"삼청교육대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여전하다. 굵직한 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엄벌주의의 상징처럼 등장한다. 이는 사회 개혁 및 정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삼청교육대를 추진한 전두환 정권의 논리와 같다.

이에 대해 안씨는 "젊은 사람들은 모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시대를 산 사람들도 홍보 영상을 보고 깡패들 소탕하는 줄 알고 잘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전두환 시대의 사회 정화 명분이 당시 매스컴을 통해 퍼지면서 삼청교육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다는 얘기다.

안씨는 지난해 11월 개봉된 영화 '서울의 봄'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12·12사태가 재조명됐듯 전두환 시절 삼청교육대에 대한 인식도 바뀔 거라는 기대감에서다.

안씨는 "삼청이란 말을 함부로 뱉으면 실제 다녀온 사람들은 가슴에 못이 박힌다"고 말했다.

현재 안씨는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이와 함께 국가배상소송도 진행 중이다.

안씨는 "국가 폭력을 인정해주고, 이에 대해 사과하고 넘어가야 다시는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안 일어날 거다"며 "숨긴다고 되는 일 아니다. 이제 비극적 일 일어나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공정하고 상식과 정의가 있는 사회에서 제대로 된 재판을 받고 싶다. 재심 요구를 해온 지 43년이 지났다. 억울해서 죽지 못하고 이 세월을 살았다. 그래도 마지막 결과는 보고 싶다. 이제는 내 인생을 찾고 싶다."

K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