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만원 떼인 이주노동자…그는 체불 임금 왜 못 받았나
[이주노동자의 눈물]②"농업 분야 근로·휴게시간 규정 대상서 제외"
"체류권 박탈 감수하고 진정·소송…임시 비자는 취업 안 돼 막막"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일한지 6개월 정도 지나고서야 알았어요. 평택 병아리 축산 농장에서 한달에 이틀 쉬고 하루에 10시간씩 280시간을 일했는데, 사장님은 근로계약서상 통상임금을 줬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고 했어요."
말은 통하지 않아도 손가락 마디마다 박인 굳은살이 써농(가명·31)의 고된 한국살이를 단번에 설명해주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인 그가 일한 사업장의 고용주는 늘 임금체불을 합리화를 시켰지만 지난 6년간 하루 거의 10시간씩 일한 손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지난 19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지구인의 정류장'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더 나은 노동 환경과 수입을 기대하며 한국에 왔지만 이제 바라는 건 떼인 돈이라도 받고 고향에 돌아가는 것 뿐"이라고 했다. 1400만원이 넘는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해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냈지만 돈을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써농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단체가 인근에 마련한 임시 숙소에서 기약없는 '소송전'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결국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만은 피하기 위해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타국에서 진정·소송 절차를 밟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업주와 법정 싸움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체류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비전문취업(E-9) 비자 기간이 만료되는 이주노동자들이 임시비자(G-1)로 체류기간을 연장해도 그 기간에는 취업할 자격이 사라져 생활비를 벌 수 없다. 새해가 바뀌기 전 무임금을 감내하며 끝까지 고향에 가지 않고 막연한 소송을 이어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의 겨울은 유난히 짧고 버거워 보였다.
◇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농업분야 이주노동자
"한달에 이틀 쉬고 거의 280시간을 일하면 360만원은 받아야 하는데 240시간 일한 걸로 적혀 있었어요. 그래서 일한 대로 돈을 안 주면 고용노동청에 가서 진정을 낸다고 하니까 오히려 근무 태만이나 사업지 이탈로 신고를 한다고 협박을 당하기도 했는데 결국 330만원을 받고 없던 일이 됐어요."
써농은 6년간 추가 수당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1년6개월간 병아리 축산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지옥 같은 근무 시간에서 벗어나고자 어렵게 사업장을 변경해 돼지 시체를 치우는 작업장으로 옮겨갔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일한 시간만큼 대가를 받진 못했다.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한 농장주들은 그럴 만한 명분도 있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일반 사업장은 한 주에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불법이지만 농업 노동자는 예외다.
하루에 10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두번을 쉬면 한주는 필연적으로 60시간 혹은 70시간을 일하게 되는데 농촌, 어업 산업 등에서 일하는 사람은 단속적 노동자에 속하기 때문에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문제는 농장주가 원래 계약서에 정해진 시간대로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임의로 노동 시간을 늘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일했다는 것을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농촌의 출퇴근 관리는 전자기기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정 다툼에서 객관적 증거 확보가 어렵다.
"근로계약서에는 오전 8시까지 출근해 낮 12시에 점심식사 하고 1시에 복귀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하게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아침 6시부터 출근하고 낮 12시에 점심을 먹으면 12시40분부터 다시 일을 시작해서 만약에 사장님이 정해준 양 만큼 일을 못 하면 오후 6시에서 8시까지 매일 일을 해야 했어요."
주말 수당이나 10시 이후로 생기는 야간 수당도 당연히 적용되지 않는다. 놉포바(가명)는 '지구인의 정류장' 도움으로 소송을 통해 지난 2017년 6월 법원의 이행권고결정문을 받아냈지만 아직까지도 사업주로부터 떼인 돈을 받지 못했다.
이날도 놉포바씨의 근무는 다음날 오전 1시30분에 끝난다는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정해진 근무 시간대에 해야 할 일이 없으면 고용주가 일을 안 시켜야 하지만 시간대를 이동시켜서라도 그게 낮이든 새벽이든 어떻게든 시간을 억지로 채우게 하는게 문제"라며 "오후 10시가 넘어가면 야근수당으로 시급이 다르게 책정되는데 농업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아서 임금 체불문제가 일상에서 손쉽게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 체류권 박탈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피해 구제 신청
써농은 이미 G-1 비자를 두번 연장한 상태다. 올해 4월 이미 E-9비자 기간이 끝났지만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진행하는 기간에 신청인이 한국에 머물러야 하는 조건 때문에 임시 비자인 G-1을 발급 받아 버티고 았다.
하지만 비자 연장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하면서 평균 8개월에서 2년까지도 진행될 수 있는 근로감독관 조사 기간에 취업도 허가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다.
"가능하면 미리 고향에 돌아가서 E-9비자를 받을 수 있는 시험을 다시 본 다음 마음 졸이지 않고 오래 들어와 있고 싶은데, 한번 가면 체불된 임금들을 잘 못 받는다고 들어서 쉽게 결정할 수 없어요."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진행한 민사소송 사례 22건 대부분은 임금체불 신고일로부터 민·형사 재판 판결문을 받는데 30개월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E-9비자 노동자의 최장 체류기간은 4년10개월이다.
아울러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근로감독관이 '체불액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안할 때, 그리고 그 체불액이 노동부가 정한 기준에 미달할 때' 이주노동자의 체류권은 오히려 완전히 박탈 당할 수도 있다. 그만큼 이주노동자들이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해 법적으로 다투기 위해선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한편 E-9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들은 가정이 있어도 자신이 속한 사업장을 이탈할 수 없어 생이별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지난 11월 출산을 한 써농의 아내는 몸도 다 회복되기 전에 2주 뒤 한국 땅을 다시 밟았지만 정작 남편을 만날 수는 없었다. 내년 3월 비자 만료 시기가 오기 전 써농은 다시 한번 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언젠간 캄보디아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싶지 않고 돌아가기 전에 받을 수 있는 돈은 받아서 고향에 돼지 농장을 차리는게 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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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새해가 되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활짝 웃는 사진이 언론에 실립니다. 그들은 '다문화'의 상징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임금을 받지 못한 이주 노동자들은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2023년 기준 한국 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액 추정치는 1300억원에 달합니다. 은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 실태와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추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