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항거" "평화 위해"…궤변 늘어놓던 문화재 훼손범들 어떤 처벌?

숭례문 방화범 징역 10년…'박정희 생가' 방화범도 중형
저마다 범죄 합리화…"과잉금지 원칙 위배, 처벌 정당"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인근에 새겨진 낙서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2023.12.19/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경복궁 영추문에 특정 가수의 이름을 적는 등 낙서를 한 20대가 "짓궂은 장난이었다" "그저 예술을 한 것이다"라는 범행 이유를 밝히면서 연일 대중의 공분을 사고 있다.

경복궁 낙서 이전에도 개인이 문화재를 훼손한 사례는 꾸준히 나왔다. 그들은 "불의에 저항하기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등 나름의 이유를 밝혔지만 모두 실형은 피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공공의 재산을 훼손했다면 '과잉 금지의 원칙'에 따라 처벌이 정당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예술적 자유가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일보다 상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오전 경복궁 2차 낙서 피의자인 20대 설모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연다. 설씨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왼쪽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특정 가수의 이름과 앨범 제목 등을 쓴 혐의를 받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블로그에 "짓궂은 장난을 좀 치고 싶었다. 죄송하다. 아니 안 죄송하다. 그냥 예술을 한 것이다"라며 범행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경복궁 낙서 사건과 같이 문화재 훼손 사례는 있었다.

지난 2008년 2월 숭례문 방화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70대 남성 채모씨는 자신이 소유한 토지의 보상 절차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비관하며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이 화재로 숭례문은 석축(石築) 부분만 남기고 전소했다. 채씨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6년에는 시민 백모씨가 대구광역시 소재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불을 질렀다. 당시 국정농단 의혹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백씨는 재판에서 "불의에 항거한 행위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으로 형량이 줄었다.

2015년에는 시민 A씨가 경상남도 합천군 소재 해인사 대적광전 내 벽면에 검은색 펜으로 낙서를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재판에서 "악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낙서를 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저 예술을 한 것뿐"이라고 밝힌 설모씨를 비롯해 문화재를 훼손한 이들 모두 제각각의 이유를 대며 합리화했지만, 법적 처벌은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헌법에 '과잉금지의 원칙'이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37조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내심의 자유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을 할 수는 있으나 문화재라는 공공의 재산을 훼손한 만큼, 법적으로 처벌받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개인 소유 주택 담장, 예술품 등에 낙서를 하는 행위도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처벌은 정당하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화재에 낙서하는 행위를 이른바 '예술의 자유'라고 주장은 할 수 있어도, 그 행위가 정당한 행사의 범위에 있느냐는 건 별개의 문제"라며 "문화유산은 일종의 공공 재산으로서, 예술의 이름으로 훼손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건 공익을 위한 정당한 제한"이라고 설명했다.

반달리즘(vandalism·문화재나 자연 경관 등을 훼손하는 행위)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선, '엄벌'과 '신속한 검거'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자칫 모방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죄학 이론에 따르면 신속성, 확실성, 엄중성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작동됐을 때 범죄를 줄일 수 있다"라며 "경복궁 낙서 같은 행위는 '반드시 잡힌다'는 인식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hy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