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50년 만에 포기했네요"…'김장 몸살' 해방됐지만 씁쓸
"묵은지로 버텨"…얇아진 지갑에 '김포족' 증가
재료비에 수고·시간 고려하면 "엄두 안 난다"
- 홍유진 기자
(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올해는 김장 안 하려고요. 제 나이가 쉰이니까 50년 만에 처음이네요."
서울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장모씨는 반백년 만에 처음으로 김장 포기를 선언했다. 명절보다 김장이 더 큰 연례 행사였다던 장씨는 "채소값, 양념값이 많이 올라 저부터도 올해 김장은 안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장씨는 "원래 김장철마다 재룟값이 오르긴했지만 이번에는 고춧값만 20% 넘게 올랐다"며 한숨지었다. 그러면서 "새우젓을 사가거나 마늘 빻아가는 김장 손님들이 확실히 뜸해졌다"며 "옆 가게 배추 빠지는 속도도 작년 같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배추부터 쪽파까지 김장 재료 대부분 올라
겨울 김장철이 다가왔지만 치솟는 물가로 인해 김장을 포기하는 '김포족'이 늘고 있다. 배추·대파·고춧가루 등 주요 재료 가격이 일제히 뛰어오른 탓이다. 그나마 김장을 하는 가구도 김치 포기 수를 줄이고 있다. 대신 시판 김치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주요 김장 재룟값 상승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11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KAMIS에 따르면 8일 기준 배추 한 포기의 소매 가격은 3099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가까이 올랐다. 최근 소폭 내렸지만 여전히 비싼 가격이다.
고춧가루 1㎏ 소매 가격은 3만3199원으로 전년 대비 10.3% 올랐으며, 대파 1㎏은 3903원으로 전년 대비 19.3% 급등했다. 같은 기간 쪽파 1㎏은 8546원으로 48.7%나 치솟았다. 그뿐만 아니라 △소금(24%) △생강(23.2%) △멸치액젓(9.4%) 등 부재료 값도 평년 대비 일제히 뛰었다.
주부 임모씨(48)는 "재룟값이 너무 오르다보니 김장하는 데 들어가는 수고와 시간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김치는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사서 먹을 생각"이라고 전했다.
◇"묵은지로 버텨"…얇아진 지갑에 김포족 증가
고물가가 장기화하면서 얇아진 지갑 사정도 '김포족' 증가에 한몫했다. 지난달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먹거리 물가가 약 6% 오르는 동안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3.1% 증가하는데 그쳤다. 외식이 더 부담스럽게 된 셈이다.
직장인 백모씨(27) 가족도 식비 부담에 매년 해오던 김장을 올해는 건너뛰기로 했다. 백씨는 "요즘 장보면 별거 담지도 않았는데 10만원은 훌쩍 넘는다"며 "김장 재료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에 올해 김치는 담그지 말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백씨는 "김치가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사 먹고, 나머지는 묵은지로 버티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김장 물가가 오르면서 매년 김장 나눔 행사를 운영해 오던 복지기관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정해진 후원금 내에서 담글 수 있는 김치 포기 수가 현저히 줄어서다.
전주의 한 노인복지관 관계자는 "매년 김장 행사 때마다 배추 1000포기 정도를 담갔는데 올해는 재룟값이 올라서 900포기밖에 못 담갔다"며 "작년에는 어르신 450분께 김치를 전달했었는데 이번에는 320분밖에 못 나눠드렸다"고 하소연했다.
cyma@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