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정부 강경 기조 속 총파업 투표 돌입…의대증원 갈등 '분수령'

의협 전 회원 대상 7일간 투표…정부, 재난위기 '관심' 단계 발령
'소아과 오픈런 브런치' 논란에 여론 악화…내우외환에 빠진 의협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6일 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등에 반대하며 철야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3.12.6/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김기성 기자 = 정부의 의대생 증원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대응이 더욱 거칠어지는 양상이다. 여론은 싸늘하다. 의대증원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큰 데다 정부와 여당 모두 의협의 극단적 태도를 지적하는 등 의협이 수세에 몰리고 있는 양상이다.

의협은 의대증원 저지를 목표로 오는 11~17일 모든 회원 대상 총파업 찬반 투표에 나서고 이와 별개로 17일 총궐기 대회를 진행한다. 이미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의협은 대통령실 인근에서 철야 시위도 벌였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지난 6일 시위 현장에서 "의료계는 정부의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정책 추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 전국 14만 회원과 2만 의대생들을 하나로 결집해 정부 의대증원 추진을 적극 저지해 나갈 것"이라는 엄포를 놨다.

의협은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의대증원 저지 총파업을 이끈 최대집 전 회장을 전면에 내세워 투쟁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11~17일 이뤄질 회원 대상 총파업 찬반 투표 결과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의협은 향후 대응도 정부 의대증원 추진 과정을 지켜보며 정하기로 했다. 의협 범대위 관계자는 "투표는 진행하되 투표 결과에 즉각 행동하지 않기로 했다"면서도 "의대증원에 대한 여러 의견을 듣기 위해 지방을 찾아 젊은 의료인도 만나볼 예정"이라고 했다.

최대집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리를 위한 범의료계 대책 특별위원장이 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앞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등이 불합리한 정책추진이라고 주장하며 철야 시위 및 릴레이 1인 시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2023.12.6/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2020년 파업을 주도하다, 결국 정부와 합의한 최대집 전 회장이 이번 연대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것 자체에 문제 제기 역시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의사회·경기도의사회·대구시의사회 등 지역 의사단체는 최근 각자 성명을 내 "최 전 회장의 합류를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최 전 회장이 의료계 현안과 무관하게 현 정권에 반대하는 언행을 제기하고 있어 범대위 투쟁위원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당시 최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합의가 파업에 적극적이었던 젊은 의사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줬다는 이유도 들고 있다.

의협 내부에서 잔 분열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필화사건까지 겹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논란은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이 "소아과 오픈런은 일부 젊은 엄마들이 브런치 타임을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쓴 글이 발단이 됐다.

우 연구원장은 지난 4일 연구원 계간지 '의료정책포럼'에 "더러 젊은 엄마들이 일찍 진료를 마치고 아이들을 영유아원에 보낸 후 친구들과 브런치 타임을 즐기기 위해 소아과 오픈 시간에 몰려드는 경우도 있다. 소아과 오픈 때만 '런'이지 낮에는 '스톱'"이라고 밝혔다.

의대증원 필요성의 본질을 흐리려 한 처사라는 전문가들의 비판과 애가 아파 애타는 마음으로 달려가는 부모를 모욕한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여기에 여당 지도부도 힘을 보태, 의협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윤희석 선임대변인 논평으로 "의협은 무조건 반대를 외치며, 국민 건강권과 생명권을 볼모로 실력행사를 해서라도 일방적 주장을 관철하겠다는 극단적 자세"라면서 "연구원장의 글도 폄훼성 주장으로 왜곡된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지역 의사회의 한 임원은 "연구원장의 글이 회원들의 투표율 저하에 영향을 줄 것 같다"면서 "17일 총궐기대회 전 대의원총회를 열어 개인 정치색이 강한 최대집 전 회장의 범대위 하차를 요구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전했다.

정부는 "의료계와의 대화를 충실하게 이어가되,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오후 장관 주재로 자체위기평가회의를 개최하고 보건의료 재난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보건의료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2023.4.3/뉴스1

복지부는 앞으로 보건의료 재난 위기단계 표준매뉴얼에 따라 상황 관리와 진료대책 점검에 나선다. 비상대응반을 꾸려 그 아래 전담팀을 두고 비상진료대책을 세우고 체계를 점검하는 등 현장 혼란과 국민 불편이 없도록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의협이 강경투쟁 카드를 들고 나온 데는 복지부에도 실책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의대증원은 국민 건강에 직결된 사회 문제로서, 의협이 아닌 각계와 협의할 사항임을 추진 초기부터 밝혔어야 했는데 협의체 등을 통해 끌려다니는 모습만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사면허에 독점적 권한이 있긴 해도, 이 문제는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논의하고 국민 입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특정 단체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정책을 결정할 수 없고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의협도 파업으로 맞설 게 아니라 정부, 의료계, 환자·소비자 단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TV 생방송 공개토론회 등을 진행하고 국민 여론을 통해 정책을 결정하자는 방법을 신중히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