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 달고 뛴 '피의자 황의조'…'FIFA 2위' 프랑스였다면?[체크리스트]
월드컵 아시아 예전 싱가포르전·중국전 출전한 황의조 논란
전문가들 "피의자 신분으로 국대 경기, 적절치 않다" 비판
- 홍유진 기자
(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지난 21일 중국 선전에 있는 유니버시아드 스포츠센터 축구 경기장이었습니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전 상대인 중국을 만났습니다. 경기 후반 27분이었습니다. 왼쪽 어깨에 태극마크를 단 축구선수가 가볍게 뛰며 그라운드에 들어왔습니다. 등번호는 16이었습니다.
이 선수의 교체 출전으로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는 순식간에 들끓었습니다. "국대(국가대표) 경기에 출전해도 되는 건가"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경기에 내보냈나"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다. 경기 나가는 건 문제없다" 등 갑론을박이 치열했습니다.
예상했겠지만 등번호 '16'의 선수는 황의조(31)입니다. 그는 현재 불법 촬영 혐의를 받는 피의자입니다. 경찰에 입건된 황씨는 네 차례나 배포한 입장문에서 "상대의 동의를 받고 영상을 촬영했다"는 취지로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으나 피해자는 "황씨가 동의 없이 성적 사생활 영상을 찍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축구 강국 프랑스·브라질·잉글랜드였다면 어땠을까중국전 이후 닷새가 지났으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보다 '개방적'이라는 해외였다면 어땠을까요? 축구 강국 프랑스·브라질·잉글랜드에서도 성범죄와 폭력 의혹에 휘말린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곧바로 '손절'했습니다. 카림 벤제마(36)는 '성관계 동영상' 파문이 일면서 무려 6년 동안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뛰지 못했죠. 프랑스축구협회는 2015년 벤제마가 성관계 동영상을 빌미로 팀 동료를 협박한 혐의를 받자 "국가대표 선수라면 타인의 모범이 돼야 한다"며 그를 대표팀에서 제명했습니다.
벤제마는 2022년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발롱도르를 수상할 정도로 기량이 매우 뛰어난 선수입니다. 그는 2021년이 돼서야 대표팀 선수로 다시 발탁됐으나 부상으로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뛰지 못했습니다. 프랑스는 벤제마 없이도 결승전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지요. 프랑스는 올해 10월 기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입니다.
최근 사례로는 가정 폭력 논란에 휘말렸던 브라질 선수 안토니(23)가 있습니다. 지난 9월4일 안토니의 전 여자친구는 같은 해 1월 그에게 폭행당했다고 주장했는데요. 안토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결백을 주장했지만 바로 다음 날 국가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됐습니다. 폭행 논란이 불거진 지 불과 하루 만입니다.
잉글랜드 선수인 메이슨 그린우드(22)도 성폭력 의혹 직후 소속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쫓겨났습니다. 지난해 1월 그린우드의 애인은 SNS에 영상과 사진을 올려 그에게 강간 미수와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했는데요. 맨유는 즉시 그린우드를 선수 명단에서 제외했고, 잉글랜드 대표팀도 그를 소집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대표팀 운영규정엔 '성실의무 및 품위유지' 조항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6조에는 '성실의무 및 품위유지' 조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에서는 "대표팀원은 국가를 대표하는 신분으로서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삼가고 사회적 책임감과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 선 황의조를 지켜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입니다.
황씨가 지난 21일 중국전에 교체 투입됐던 당시 그는 이미 불법 촬영 혐의로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였습니다. 황씨는 앞서 16일 '2026 월드컵 예선' 첫 경기인 싱가포르전에도 교체 출전했지요. 이틀 뒤인 18일에는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황씨는 대표팀과 축구협회에 경찰 조사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6일 싱가포르전을 관전했다는 직장인 이모씨(26)는 "황의조가 페널티킥 골을 넣었을 때 일부러 환호하지 않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며 "관중석 곳곳에도 저처럼 침묵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피의자로 전환되고 난 뒤 열린 중국전에서 투입된 것은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반면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직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고 경찰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국 대표팀 감독인 위르겐 클린스만(59)은 "지난 40년 동안 축구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며 "모든 사건마다 과도한 추측이 있었다. 명확한 혐의가 나오기 전까지 황의조는 대표팀 선수"라고 말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경찰 조사 진행 중이라 지켜보고 있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국대 선수에게 원하는 것 골만이 아냐"
전문가들은 피의자 신분으로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라면 최소한의 도덕적 품격은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한때 '몰카'라고 불리며 가벼이 여겨지기도 했던 불법촬영은 지난 2020년 '박사방' 'n번방' 사태를 거치면서 심각한 디지털 성범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특성상 불법 촬영물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불법촬영물을 보기만 해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정도입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국민들이 국가대표 선수에게 원하는 건 단순히 골을 넣는 게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며 "소속 구단이라면 죄가 확정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대표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허민숙 국회입법처 조사관은 "황의조 선수가 당당히 출전하는 건 '떳떳하니까 저러겠지'와 같은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며 "성폭력 피해자를 위축시키고 압박하는 전형적인 수단"이라고 비판했습니다.
cym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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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거나 쟁점이 되는 예민한 현안을 점검하는 고정물입니다. 확인·점검 사항 목록인 '체크리스트'를 만들 듯,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