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발견율 4년전 수준으로…늘어나는 '재학대'"[학대 그 후]下

재학대율 3년간 꾸준히 증가…대책 마련 후에도 관심 가져야
신고는 '아동 보호' 위한 일…오히려 방치로 상황 악화될수도

편집자주 ...많은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정인이 사건'이 발생하고 3년이 흘렀다. 아동학대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지만, 지난해까지 아동학대 발견율은 여전히 4년 전 수준인 3.85퍼밀(‰, 천 명당 한 명 단위)에 머물러 있다. 아동의 보호자가 가해자면 자발적 신고는 쉽지 않다. 무엇이 더 바뀌어야 할까. 그동안 발표된 아동학대 정책들을 분석해 온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 매니저를 만났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2020년 10월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에서 16개월 된 아이가 사망했다. 어린이집과 병원 등에서 3차례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으나 경찰과 보호기관은 학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그렇게 정인양은 입양된 지 27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정인이 사건 이전에는 아무 대책이 없었을까. 10년 전인 2013년 울산광역시 울주에서 발생한 이서현양 사망 사고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의 중요성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제2의 이서현 사건'을 방지하고, 아동학대 사망 경위를 밝히기 위해 쓰인 첫 아동학대 진상보고서는 민간에 의해 조사돼 정부에 제출됐다.

이 밖에도 주요 사건으로 △2016년 평택 아동학대 사망 사건 △2016년 대구·포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 △2019년 인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 △2020년 원주 아동학대 사망 사건 △2020년 창녕 아동학대 중상해 사건 △2020년 천안 아동학대 사망 사건 △2021년 화성 아동학대 사망 사건 등 발생할 때마다 정부 대응책이 발표됐다.

2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아동학대 사각지대를 사전에 찾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까지 우리나라 전체 아동 인구(0~17세) 기준 피해 아동 발견율은 1000명당 3.85명(3.85‰)으로 4년 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2022년을 제외한 지난 4년간 아동학대 피해 사례 발견율은 2018년 2.98‰, 2019년 3.81‰, 2020년 4.02‰, 2021년 5.02‰로 꾸준히 늘었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다. 미국 8.1‰(2021년 기준), 호주 12.4‰(2019년 기준)로 한국의 2~4배다.

신고 접수된 아동학대 사례 중 재학대율도 3년 새 꾸준히 증가했다. 재학대 사례란 첫 신고 이후 5년 안에 다시 신고 접수돼 아동학대로 판단된 것을 말한다. 2020년 11.9%, 2021년 14.7%, 2022년 16%로 집계돼 해마다 2%p 이상 늘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분노가 식어가는 동안에도 대안으로 세워진 아동학대 예방 관련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동권리보장원 2022년 아동학대 주요 통계 캡처)

◇ 대응책 모니터링, 전문 인력 여전히 부족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본관에서 만난 박영의 아동권리정책팀 선임매니저는 "아동학대 관련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념을 초월해 아동 권리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구호개발 비정부 기구(NGO)다. 아동 관련 비정부기구 중 가장 오래된 역사와 최대 규모를 가지고 있다. 정인이 사건 이후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듬해 아동학대 사례집 '문 뒤의 아이들'을 발간하며 2013년부터 2021년까지 8년간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을 기록하고 그때마다 나온 정부 대책들을 분석했다.

박 매니저는 "아동학대 대응이 공공화되긴 했지만 이에 충분히 조사할 만큼의 인력은 아직 보완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아동학대 사건의 82.7%는 부모에 의해 발생하다 보니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현장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 인력 부족으로 사례 관리 등 모니터링에 있어서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현재 정부에서 제시한 인력 기준은 아동학대 신고 건수 50명당 공무원 1명이다. 하지만 현재 17개 시·도 중에 7곳은 아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현재 경기도 68건당 1명, 울산 64.5건당 1명 등으로 파악됐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통해 아동학대 조사업무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강화하고 조사와 사례 관리 업무 등을 분리했다. 현재는 각 지자체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신고 사례를 접수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가정에서 재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아동학대 사례 관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맡게 됐다.

박영의 권리옹호부 선임매니저가 15일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본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11.15/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아동학대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부터 찾아야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많은 내용을 담은 정책이 발표되는데 어디서 구멍이 생긴 건지 면밀한 조사가 선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나 중대 상해 사건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전체 진상조사는 아직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아울러 학대피해아동쉼터도 아직 정부 목표치에 많이 부족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8월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아동하개 대응 체계 보완 방안'에서 당시 105곳인 쉼터를 2022년 140곳, 2025년 240곳으로 늘리겠다고 했지만 올해 8월 기준 쉼터는 136곳으로 지난해 목표치에도 못 미친다.

◇"신고하면 무조건 처벌?…예방 위해 심층사례관리 중요"

신고 기준은 명확하다. 지난 2018년 설립된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 명시한 신고 기준은 △울음소리·비명·신음이 계속되는 경우 △상처에 대한 보호자의 설명이 모순되는 경우 △계절이 맞지 않거나 깨끗하지 않은 옷을 계속 입는 경우 △뚜렷한 이유 없이 지각이나 결석이 잦은 경우 △나이에 맞지 않는 성적 행동을 보이는 경우다.

다만 기준이 있더라도 주변에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그저 '남의 집안일'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면 또다시 아동학대를 사각지대로 내몰 수 있다. 아동학대는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방임으로 구분된다. 직관적인 피해가 아니더라도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해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한다면 아동학대에 해당될 수 있다.

(아동권리보장원 홈페이지 갈무리)

"'내가 신고해서 저 부모들이 잡혀가는 것이 아닌가', '바로 아이들이랑 분리되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을 많이 하는데, 심각한 경우 그런 조치가 필요하겠지만 보통의 경우 양육 방법을 모르고 어려움을 겪다가 상황이 악화하는 경우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아동학대 신고를 '부모의 처벌'로 보는 시각이 신고를 망설이게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박 매니저는 "신고를 형사 처벌의 목적이 아닌 아동 보호와 가정 회복 등의 차원에서 신고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차적으로 학대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 발견되지 않으면 위기 가정이 고립되고 아동도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물론 2년 전부터 실행된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정인이법)'으로 기존에 있던 아동학대치사죄 처벌이 강화되기도 했다. 아동학대살해죄가 신설돼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한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아동학대 예방에서 중요한 것은 심층 사례관리라고 입을 모은다. 아동학대 사건 중 천안시 아동 사망사건, 인천시 형제 사망사건, 양천구 입양 아동 사망 사건 등은 이미 아동학대 신고 후에 공적 개입 중이던 사례들이었지만 '아동 사망'이라는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박 매니저는 "학업 및 경제적·정서적·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조기에 발굴하는 학생맞춤형통합지원법이 발의되기도 하고 코로나19 이후로 나름 학생 정보 연계를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아동학대를 전부 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를 줄이는 방법은 계속해서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의 권리옹호부 선임매니저가 15일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본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11.15/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