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팔아 모은 전재산 다 날리고 빚만 6억"…모녀사기단 피해자들의 눈물
"믿을 수밖에 없었어"…돌려막기로 이자 지급하며 신뢰 쌓아
지난 9월 이후 잠적…법률대리인 고용하며 대응 나서
- 원태성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난 수백억원대 자산가야. 널 부자로 만들어줄게."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동네 식당 사장의 사탕발림 소리에 사람들은 하나둘 넘어갔다. 누군가는 집까지 팔아 16년간 모은 전재산을, 누군가는 식당 보조금을 빼고 카드 대출까지 받아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60억원을 믿고 맡겼다.
그들은 돈을 몇배로 불려준다는 말만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부자를 만들어주겠다는 이웃은 공수표만 날린 채 지난 9월 잠적했다.
피해자들이 현실로 돌아온 건 이때부터였다. 부자가 될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니 남은 건 빚뿐이었다.
피해자 A씨는 "가진 걸 전부 끌어다 줘서 매일 카드사에서 빚독촉 전화를 받는다"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전날 <뉴스1>이 단독 보도한 '이웃 돈 250억 먹튀한 마포 고깃집 모녀' 사건 피해자들은 고통속에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 사건 피해자만 20여명, 피해액은 약 250억원으로 추정된다.
◇"믿을 수밖에 없었어"…피해자들은 왜 모녀사기단에 속았을까
사건의 시작은 2010년부터였다. 서울 마포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피의자 B씨(70대)는 자신이 수백억원대 자산가인 양 이웃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신뢰를 쌓기 위해 고급 패물을 항상 착용했고 피해자들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을 고급식당에 데려가 대접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기를 치는 피해자에게 "너에게만 혜택을 주겠다"며 은밀하게 접근했다. 그렇게 접근한 피해자들에게 부동산 투자나 건물을 사는데 돈이 부족하다며 원금을 몇배로 불려주고 그 기간에 이자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B씨는 실제 이자를 지급하며 신뢰도를 높였다. 그러나 이는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똑같이 접근해 받아낸 돈으로 지급한 것이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이웃들간 불화를 조성해 서로가 B씨에게 돈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피해자 중 한명인 C씨(50대)의 증언이다. 속옷 영업을 하는 그는 2021년 처음 B씨를 소개 받을 당시를 회상하며 "B씨가 39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속옷을 여러 차례 구매하다 보니 정말 부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속옷만 산것이 아니었다. B씨는 만날 때마다 고가의 선물을 주면서 "내 도움을 받아 부자가 된 사람이 많다"며 C씨를 회유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자신이 부자로 만들어준 사람까지 소개해주며 신뢰도를 높였다. 결국 C씨가 관심을 가지자 B씨는 자신이 투자하는데 돈이 조금 부족하다는 등의 방식으로 총 29회에 걸쳐 딸의 계좌에 약 28억원을 송금하게 했다.
이따금 불안해하는 C씨에게 B씨는 "올해 연말 100억을 받을 게 있다"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B씨가 철저히 입단속을 시킨 탓에 C씨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B씨가 잠적을 한 뒤에야 그는 자신이 여러 피해자들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C씨는 "신랑에게 거짓말까지 하며 16년동안 악착같이 벌어온 전재산을 날렸다"며 "지금 빚만 6억원인데 자식들이 아직 어려 갚을 수도 없다"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9월 이후 접고 잠적…무대응으로 일관하며 법률대리인까지 고용
B씨가 잠적한 이후 피해자들은 B씨와 그의 딸을 마포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은 모녀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는 한편 피해자들의 돈을 받은 딸의 계좌를 임의제출받아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돈을 입금했다는 딸의 계좌를 제출받았다"며 "범죄 혐의점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뉴스1>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들 모녀에게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법률대리인을 고용하는 등 이번 사건과 관련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 측 변호인은 "최근 피고소인들이 법률대리인을 고용한 것을 확인했다"며 "도주 가능성은 없지만 왜 법적으로 대응하려는 것인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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