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인이 던지는 질문…"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았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연출한 조영규 더봄 대표
엄마를 고발한 시각장애 딸…장애아 낙태문제 다뤄
- 박동해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시각장애인인 저는 장애가 소중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엄마는 제게 삶이 아닌 고통을 물려줬습니다. 저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허락도 없이 장애를 물려준 엄마에게 소송을 걸려 합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딸은 엄마를 법정에 세웠다. 엄마 또한 시각장애인으로 국회의원 출마를 앞둔 변호사다. 딸은 장애가 유전될 것을 알았음에도 엄마가 자신을 낳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엄마는 말도 안 되는 소송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재판은 열리게 됐다.
연극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우리 사회가 직접적으로 다루기 불편해하는 '장애'와 '낙태' 두개의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법정극이다. 뉴스1은 지난 1일 작품 연출자인 조영규 예술단체 더봄 대표를 만나 도전적인 메시지를 선택한 이유를 들었다.
작품에서 엄마인 시각장애인 변호사 조예현(안선영 분)은 낙태죄가 완전 폐지되면 무분별한 장애아 낙태가 이뤄질 것을 우려해 이를 막기 위해 출마를 한다. 이에 딸 홍아영(박수정 분)은 본인은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며 엄마의 행보를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
법정에서는 장애를 극복해 낸 입지전적인 인물인 예현과 장애를 고통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아영의 입장이 엇갈리며 나열된다. 그리고 이 싸움은 결국 '장애아를 낙태해야 하는가'는 문제 의식으로 귀결된다.
조 대표는 낙태와 장애인 인권의 관계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 가다가 극의 개념을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그는 "저는 원래 여성주의적인 입장에서 낙태는 여성의 선택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죄로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후 장애학을 공부하면서 장애아에 대한 낙태는 장애에 대한 혐오라고 배우게 됐고 이런 딜레마를 작품으로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다듬던 와중에 영화 '마이시스터즈 키퍼'나 '가버나움' 같이 자녀가 부모를 고발하는 내용의 비슷한 구조의 창작물이 있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지만 조 대표는 '장애'라는 이야기의 특수성이 기존의 작품들과는 차별점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극의 내용에는 장애 당사자인 조 대표의 내적인 고민도 담겨 있다. 조 대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레버 시신경 병증'으로 인해 양쪽 눈의 시력을 대부분 잃었다. 현재는 약간의 주변시만 남아 있어 물체의 형상을 구분하거나 아주 가까이 있는 글과 사진만 인지할 수 있다.
극의 주인공인 딸 아영의 캐릭터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조 대표의 삶을 대변한다. 극 중 아영은 본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경력도 뭐도 없이 일하려면 80만원 주고 억지로 장애인 고용률 채우려고 3시간 일 시키는 일이 다야. 월세 50만원 나가고 활동지원 본인 부담금 나가면 20만원 남아. 일 하나 더하려고 하면 한 회사에서만 장애인 고용 인정된다고 겸업을 하면 안 된대"라고 말한다.
실제 조 대표는 장애를 갖게 된 뒤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다. 특히 먹고 살기 위한 취업부터가 힘들었다. 시각장애인을 채용하는 곳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 단기 아르바이트뿐이었다. 정규직으로 채용이 된 회사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근무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문제를 제기하니 부당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극의 내용은 관객들에게 여러 질문을 남긴다. '장애를 가지면 행복할 수 없는가?', '장애를 가졌다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은가?', '그렇다면 장애아는 낙태하는 것이 맞는가?', '궁극적으로 장애가 있지 않더라고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인데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인가?' 등등. 이에 대해 조 대표와 배우들은 "답은 관객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연은 21일부터 26일까지 대학로 드림씨어터 소극장에서 열린다. 딸 역을 맡은 배우 박수정은 "한번이라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 고민해 보지 않았다면 이 극을 보길 추천한다"라며 "장애아 낙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에 앞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극"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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