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떨게 한 공포의 병,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요즘 질병청 뭐함?] 왜 자꾸 백신을 맞으라고 채근할까
천연두부터 로타바이러스까지…우리가 알아야 할 백신

편집자주 ...질병관리청의 태동은 아이러니 하게도 감염병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2003년 사스를 계기로 질병관리본부가 신설됐고, 2020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지금의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됐다. 코로나19 기간 신속한 방역 대응으로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기도 한 질병청의 존재감은 오히려 국내에서 평가절하 된 감이 적지 않다. 방역의 최전선에서 국민 보건 향상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질병청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 본다.

한 어린이가 홍역 백신을 맞고 있는 모습. /뉴스1 ⓒ News1 이찬우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그때 환자 엄청 많았죠. 수십 년 된 일인데 기억이 날 정도예요. 눈곱 끼고 온몸에 발진 생기고 열 펄펄 끓고…. 그리고 되게 오랫동안 아파요. 치료가 안 되잖아요."

2000년과 2001년, 홍역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동네 소아과 의원부터 큰 병원까지 홍역에 걸린 아기들과 부모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당시에도 아기들의 건강을 돌봤던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장은 23년 전 홍역으로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았을 때를 떠올리며 "그땐 정말 심각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최 회장은 "홍역은 고열, 염증은 물론 2차 합병증으로 요로감염, 전신성 패혈증 등 뭐라고 딱 얘기할 것 없이 많은 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지금도 그렇지만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이라 줄 약도 별로 없는데 아기 환자들이 줄지어 왔던 게 지금까지 기억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제2급 감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는 홍역은 홍역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질환으로 전염성이 아주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염은 보통 1~2세에서 발생하고 감염되면 고열과 전신에 특징적인 발진을 보인다.

하지만 최 회장의 말처럼 홍역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걸리는 질환으로 치료제는 없다. 다만 열이 나면 해열제를 쓰고, 기침을 하면 기침약을 쓰는 등 대증요법을 쓸 방법 밖에 없다.

다만 막을 방법은 있다. 바로 홍역 백신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홍역 환자는 최 회장이 떠올렸던 2000년과 2001년에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전엔 연간 100명 이하로 보고되다 2000~2001년만 무려 5만5707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에 보건당국은 곧바로 국가홍역퇴치 5개년 사업을 시행했다. 취학아동의 2차 홍역 예방접종 확인 사업으로, 학동기 아동 580만명이 홍역 백신을 맞았다.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2006년 정부는 홍역 퇴치를 선언했다.

국가예방접종으로 끔찍한 감염병을 종식한 사례는 이보다 더 오래전에도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주 공포스러운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호환마마(虎患媽媽)보다 더 무섭다'고 표현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호환마마의 '마마'가 바로 '천연두'다.

천연두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천연두는 기원 전 1만년경부터 인류를 괴롭혀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연두는 발열, 수포, 농포성의 피부 변화를 특징으로 나타나는데, 소위 '곰보'라고 하는 특유의 흉터를 남긴다. 이 외에도 실명, 관절염 및 골수염으로 인한 사지 변형도 유발한다.

사망률 또한 매우 높다. 18세기 이전까지 유럽지역에선 매년 40만명이 천연두로 사망했다. 또 시각장애인 중 3분의1은 천연두로 인해 시력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하고 악명 높은 감염병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벌벌 떨게 한 감염병도 1794년 두창바이러스를 이용한 백신이 나온 이후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의 시작도 바로 이 천연두였다. 1882년 지석영 선생이 종두법을 도입해 최초의 예방접종을 시행한 이후, 1954년 전염병예방법이 처음 제정돼 천연두를 비롯한 디프테리아 등 7종의 전염병에 대한 백신이 정기 예방접종으로 지정됐다.

이후 1977년 10월 26일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천연두 자연감염은 더 이상 보고되지 않고 있다. 아주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혀온 끔찍한 질병이 백신으로 종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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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리 보건당국은 감염병 관리를 위해 홍역, 폴리오 등 다양한 예방접종 도입에 박차를 가했다. 1997년엔 예방접종 대상 감염병을 13종으로 확대하고 표준예방지침을 보급해 국가예방접종 관리 체계가 마련됐다.

2014년엔 민간 의료기관 시행비를 전액 지원해 13종 어린이 예방접종이 무료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후 영유아 A형간염, 12세 이상 여학생 HPV, 어린이 및 임신부 인플루엔자, 로타바이러스 감염증 등에 대한 백신 접종이 국가예방접종으로 도입됐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예방접종 성적은 나쁘지 않다. 질병청이 2021년 국가별로 동일한 연령대에 접종받는 어린이 예방접종률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 어린이의 예방접종률은 97%로 미국(86.6%), 호주(94.8%), 영국(92.2%)에 비해 평균 약 2~10%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방접종률이 높으니 그에 따른 감염병 발생률도 낮았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 3만2647명까지 치솟았던 홍역 환자 수는 지난해 0명을 기록한 반면, 우리나라는 제외한 전 세계 국가에선 20만5153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백일해도 마찬가지다. 1961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환자(1만6887명)가 발생했지만 지난해에는 31명의 환자만 발생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국가에선 이때 6만2646명의 환자가 보고됐다.

질병청 관계자는 "국가예방접종을 위한 백신 도입 시 지속적으로 큰 재원이 소요되지만,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가장 비용 효과적이며 질병 부담을 낮출 수 있다"며 "효과성, 안전성, 비용 효과성 등의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도입 타당성 및 우선순위 평가를 거쳐 예방접종 전문위원회 검토를 거쳐 도입 백신을 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국가예방접종으로 백신을 도입할 때에는 △검토 대상 백신 선정 △기초 자료 조사 △예비평가 △추가 자료 조사 △근거 수준 평가 △신규 도입 우선순위 평가 △최종 의사결정 등 7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올해도 이 과정을 거쳐 로타바이러스감염증 백신이 도입됐다. 로타바이러스감염증은 영아들의 급성 설사와 고열을 일으켜 탈수증을 유발하는 감염병인데 예방접종에 20만~30만원 상당의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하지만 국가예방접종으로 도입되면서 생후 2~6개월 아기라면 이제 무료로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됐다.

질병청 관계자는 "코로나19, 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RSV) 백신의 개발과 같이 지금까지 없던 백신의 개발도 가속화할 것이고, 국가예방접종 도입에 대한 요구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질병청은 앞으로도 국내외 신규 개발 백신 및 기존 백신 개선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하고 도입 및 효과 평가해 비용 효과적이고 질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국가예방접종 사업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