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 '뿌리 찾기' 희망…과제 '산적' 준비기간 2년도 짧다

입양특별법 25년 7월부터 시행…저장고 보관용량 이미 90.8%
"입양 기록물 25만건도 추정치일 뿐…아직 전수조사도 안해"

44년 전 실종돼 미국으로 입양된 가족을 찾은 이응순(어머니), 윤상희(언니), 윤상명(오빠)씨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찰청 실종자 가족 지원센터에서 윤상애(미국명 데니스 맥카티)씨와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2020.10.18/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죠."

1984년 13살의 나이로 프랑스에 입양됐던 김유리씨(50)는 지난해 1월부터 자신의 입양 기록을 찾기 위해 법무부, 보건복지부, 외교부 등을 직접 방문했다.

석연찮은 자신의 입양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입양을 주도했던 입양 기관에서는 김씨가 입양 당사자임에도 기록물 공개를 거부했다. 그동안 입양기록물은 법령상 기록보존이 명시되지 않거나 영구보존에 대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1년 가까운 시간을 여러 기관을 직접 발로 뛰며 입양 기록을 얻는 과정도 험난했다. 국내 거주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고 여러 기관에 기록들이 흩어져 있다보니 헛걸음을 하는 경우도 잦았다.

김씨는 "내 기록인데도 (기록물을 확인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며 "우리 같은 입양아들이 좀 더 쉽게 자신들의 입양과정과 뿌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바람대로 과거 해외 입양아들이 자신의 기록물들을 더욱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입양 절차 전반에 걸쳐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입양특별법)이 지난 6월30일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해당법에 따르면 오는 2025년 7월부터 과거 해외 입양기록물들은 아동권리보장원이 전담해서 관리한다. 자연스레 입양인의 입양 정보공개 청구도 보장원으로 일원화된다. 명목상으론 김씨처럼 여러 기관에 산재된 정보를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수많은 입양아들이 법 시행을 기다리는 이유다.

그러나 법 개정에 따른 효과를 입양아들이 누리기 위해서는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비록 법 시행까지 2년이란 시간이 남았지만 산적한 과제들을 생각하면 넉넉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우선 25만건으로 추정되는 입양기록물을 전수조사해야 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입양기관들과 협의도 끝내야 한다. 또 입양기록을 보관할 입양기록관도 새로 지어야 한다.

김성주 의원실이 2021년 국정감사 당시 공개한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4대 입양기관(홀트아동복지회·대한사회복지회·동방사회복지회·성가정입양원)이 2012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입양을 통해 얻은 수입은 약 189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입양 비용 등의 명목으로 입양 성사 건수에 따라 복지부 허가 입양 기관에 270만원, 시·도 허가 기관에 100만원을 지원한다. 이밖에 입양기관이 벌어들이는 모든 수입의 약 90%(홀트 89.6%·동방 87.2%·성가정 93.2%)를 수수료와 후원금이 차지한다. 2020년 기준 해외 입양 한건당 수수료는 약 2000만원 수준이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아동권리보장원 보관용량 90.8%…"기록물 25만건도 추정치일 뿐"

이번 법 개정으로 입양기관과 아동복지시설에서 보관 중인 기록물 25만여 건이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된다. 문제는 아동권리보장원의 기록물 보관용량이 이미 포화상태라는 점이다.

보장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입양기록물은 24만8000건으로 추정된다. 그중 아동권리보장원이 보유한 1만8000건을 제외한 23만건은 전국 각지의 입양기관이 가지고 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당장 기록물을 옮기기 위해선 별도의 공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아직 기록물에 대한 전수 조사도 완료되지 않아 법 시행 2년을 남겨둔 시점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 많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입양기록물들이 약 25만건으로 추정하는 근거도 해외 입양아들의 총수로 계산한 추정치일 뿐"이라며 "전수 조사를 시행하게 되면 기록물들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입양기록물들의 정확한 건수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2년도 채 남지 않은 기간동안 모든 기록물들을 아동권리보장원에 이전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 2023.5.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입양기록관 건립 추진도 아직 논의단계…여러 기관 협력해야"

방대한 입양기록물들을 보관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되는 가칭 '입양기록관' 건립도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방안으로만 거론될 뿐 건립 예산, 운영방안, 규모 등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정 원장도 "'입양기록관'은 입양기록물들을 일원화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방안"이라면서도 "우리의 노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 예로 국가 추진 사업이기때문에 예산문제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해야 한다. 또한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와도 정책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입양기록물들을 보유중인 전국 입양기관들과 기록물 이전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정 원장은 "개정된 법에 따르면 입양기록물들을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일원화된다고만 명시돼 있지 세부적인 사안은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이제 시작단계인 만큼 다양한 기관들과 협력해 가장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기록관 이외에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다양한 방안들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