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이식 기다리는 환자 5만명, 기증자 405명…우리의 현주소[21그램]⑥

장기조직기증희망등록률 4.5%, 미국 60%…기증자 美의 17% 불과
전문가 "장기기증 가능 시점, 법률적 기반 없어"

편집자주 ...흔히 영혼의 무게를 '21그램'이라고 합니다. 한없이 가볍지만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무게입니다. 영혼이 빠져나가면서 누군가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들이 있습니다. '장기기증 희망자'들입니다. 삶의 끝과 시작이 교차되는 순간을, 우리는 '기적'이라 부릅니다. 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우리 삶의 기적 같은 순간을 전해드립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4만9765명 vs 405명. 국내 뇌사장기기증자 장기이식의 현 주소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장기 이식 대기자는 5만명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뇌사장기기증자는 405명에 불과했다. 장기 이식 대기자는 매년 약 2000명씩 늘고 있는데 기증자는 해마다 줄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장기이식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기증자가 없이는 제대로 활용되기 어렵다.

장기이식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개선은 풀어야할 난제다. 인식의 척도로 볼 수 있는 장기조직기증희망등록률은 지난해 4.5%로, 미국은 한국의 15배인 60%에 달한다. 뇌사장기기증 제도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3일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한국의 장기이식대기자는 2019년 4만253명, 2020년 4만3182명, 2021년 4만5843명, 2022년 4만9765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반면 뇌사기증자 장기이식수는 2019년 450명, 2020년 478명, 2021년 442명, 2022년 405명이었다. 올해 9월 기준 뇌사 판정 장기기증자는 380여명으로 집계돼 연말까지 합산하면 지난해보다는 다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다. 하지만 이식자 대기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충분한 숫자는 아니다.

국제장기기증이식등록기구(IRODaT)에 따르면 한국 인구 100만명 당 장기기증자 수(pmp)는 △2020년 9.22명 △2021년 8.56명 △2022년 7.88명 등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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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달리 해외 뇌사 장기기증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뇌사 장기 기증자 pmp는 △2019년 36.88명 △2020년 38.03명 △2021년 41.6명 △2022년 44.5명으로 2~3명 꼴로 늘어나는 추세다. 2018년에 비하면 지난해 8명이 늘어났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스페인 인구 100만명 당 기증자 수는 46.03명으로 2년 전보다 9명 정도 늘었다. △2022년 46.03명 △2021년 40.8명 △2020년 37.97명으로 나타났다.

프랑스도 지난해 24.70명으로 2년 전(23.15명)보다 1명 늘었으며 영국은 지난해 21.08명으로 역시나 3명이 늘어난 수치였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해 기증자가 100만명당 7.88명으로 미국의 17%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2년 전(9.22명)에 비해 1.3명 감소했다.

◇ "남의 일 아닌 '나의 일'"…장기조직기증희망등록률 4.5%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의 척도는 장기조직기증희망등록률이다. 장기조직기증희망등록은 뇌사상태 또는 사망 이후에 장기 및 인체조직을 기증하겠다고 본인의 의사를 밝히는 행위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희망등록률은 4.5%로 기록됐다. 장기기증 선진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60%에 달하는 것과 대비되는 수치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장기기증에 대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는 인식 변화가 생겨야 한다"며 "희망 등록을 했다고 무조건 기증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적인 기술은 이미 높아져 있지만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더 개선되지 않아 등록률이 낮고, 사회적 논의가 정체된 상태"라며 "희망등록률이 저조해지면 법적 기준이나 제도도 마련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전문가 "법률적 기반 및 제도 부족 문제"

뿌리깊은 유교 사상에 의한 장기 기증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여러 이유 중에 하나지만, 전문가들은 까다로운 절차가 가장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 장기기증에 있어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는 옵트아웃(opt-out) 제도를 도입했다. 즉, 모든 사람이 잠재적인 장기기증 대상자로, 장기기증을 거부하는 경우 미리 신고를 해야 하는 제도를 통해 장기기증을 활성화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국민 정서와 의료시스템상 옵트아웃 제도를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반면 미국은 우리와 같이 동의 의사를 표현해야 기증할 수 있는 옵트인(opt-in)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스페인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기증률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내 50개 주에 60개가 넘는 장기구득기구가 있으며 장기구득기구와 의료기관 간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기기증 교육프로그램이 구축돼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법령에도 뇌사와 이를 넘어서는 사망 자체에 대한 법률적 정의가 없다. 미국과 유럽 모두 뇌사를 사망으로 명확히 명시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일이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심장이 멎으면 장기 기증을 시행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법률적 기반이 없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기증자 수가 턱없이 부족한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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