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서현역·둘레길…불안한 시민들 "대면 중고거래 끊었어요"

사람 만나기 무서워 "주거지 등 신변 노출 우려도 커"
'공공장소서 3인 이상 거래' 등 안전수칙 권장 "택배 이용할 것"

ⓒ News1 DB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1달전 부터 '당근' 끊었어요."

다음달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김모씨(31·여)는 4개월간 중고거래에 푹 빠져 지냈다. 지난 4월부터 예비신랑과 동거를 시작하면서 중고장터에서 신혼살림을 장만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 이번에 처음 독립한 김씨는 침실 조명부터 러그, 화장대까지 중고거래를 통해 구매했다. 만족도는 컸다.

그는 "새걸로 샀다면 돈이 아까워서 한번 더 고민했을 물건도 절반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데다 품질도 좋다"며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끼리 거래를 하는 것이고 대면으로 하다보니 사기를 당할 위험도 없어 부담감이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상동기범죄'가 이어지면서 대면 거래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김씨는 "신림동을 시작으로 연속해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하고부터는 사람들을 대면으로 만나기 두려워졌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남편도 처음에는 중고로 구매한 제품들로 집을 꾸미며 함께 즐거워했는데 사건 이후로는 걱정을 더 하더라"라며 "1달 전부터는 돈이 아깝더라도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고민한 후에 새 제품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고거래 플랫폼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직거래를 권장해 왔다. 이러한 특성은 플랫폼 출시 초반 거래 대상자와 대면 시간을 잡아야 한다는 번거러움 때문에 단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대면 거래가 사기 위험이 적고 실제 만나 흥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돼 이내 장점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흉기난동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살인 예고글까지 난무하면서 지금은 이같은 장점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당근마켓에서 혜화역 흉기난동 살인예고 피의자 왕모씨(31)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3.8.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동네에서 마주칠 사람들에게 신변 노출 우려 커"…당근에서 살인예고도

플랫폼이 지역기반이라는 점도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요소다. 동네에서 마주칠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거지 등 신변이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은 이용자들에게는 걱정거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손모씨(34·여)는 "집 앞에서 거래 약속을 잡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편리함 때문에 집 근처에서 약속을 잡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거래가 끝난 후 뒤를 밟힌다면 금방 집이 노출될 위험이 크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이어 "물론 모든 사람이 범죄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걱정을 안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혼자 사는 여성이다보니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이 남 일 같지는 않다"고 호소했다.

실제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현역에 거주하는 이모씨(28·여)도 "굳이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걱정거리를 늘리는 일"이라며 "스마트폰에서 중고거래 앱 자체를 최근에 삭제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흉기난동 사건 이후 온라인상 유행처럼 번진 '살인 예고글'이 올라와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지난달 4일 중국 국적 불법체류자 왕모씨(31)는 중고거래 플랫폼에 "5일 오후 3시부터 밤 12시 사이 혜화역에서 칼부림을 하겠다"는 글을 작성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구속 기소됐다.

◇'공공장소 이용' 등 안전 노력에도 "택배 이용할 것"

대면 거래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가 커지자 중고거래 업체들은 '3인 이상 함께 모이기', '공공장소 이용' 등의 수칙을 만들어 이용자들에게 알리는 등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면 거래를 피하려는 사람들의 유출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택배를 통해 중고거래를 했다는 최모씨(33)는 "생각보다 사기를 당할 위험이 적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아무래도 일면식이 없는 타인과의 만남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신뢰만 있다면 택배를 통한 중고거래도 크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앞으로도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플랫폼을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