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외마디 112 신고했지만 숨진 채 발견…'위치 추적' 고도화 숙제
현재 기술력으론 대응 미흡…경찰 수사력 뒷받침돼야
전문가 "긴급 상황에 위치 정확도 높이는 노력해야"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왜"
지난달 28일 오전 3시39분 서울 강북경찰서 112상황실에 신고 전화가 들어왔다. 여성 A씨의 '왜'라는 외마디가 들렸지만 휴대전화 전원은 곧바로 꺼졌고 경찰은 '긴급 출동'해야 하는 코드1을 발령했다.
아무런 단서 제공 없이 휴대전화 전원이 꺼진 상황이었다. 경찰은 신고자 전화번호의 기지국 송수신 위치를 특정하며 수사에 나섰으나 반경 2㎞ 범위를 다 수색할 수 없었다.
경찰은 이후 '통신수사'로 수색을 이어갔지만, 통신사와 주민등록에 기재된 정보대로 찾아간 장소들은 모두 A씨의 실거주지가 아니었다. 새벽 시간에 사건이 발생해 수색에 제한이 생긴 것도 문제였다. 경찰은 별다른 성과 없이 17시간을 흘려보냈고 A씨는 신고 당일 저녁 숨진 채로 발견됐다.
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위치 추적에 활용되는 정보기술(IT)은 A씨의 위치 파악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현재의 기술력만으로는 여전히 돌발 변수에 대응할 수 없고, 경찰의 수사력이 뒷받침돼야 빠른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 '위치 추적' 한계 많아…신고자 찾기 쉽지 않아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할 가장 빠른 방법은 정확한 신고자의 위치(사건현장)를 파악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위치추적의 핵심인 위성항법시스템(GPS), 와이파이(Wi-Fi) 연결, 기지국 셀(Cell) 값 등의 정보를 제공받으면 경찰은 이를 종합해 수사망을 좁혀간다.
하지만 GPS나 와이파이가 꺼져 있거나 휴대전화가 강제로 꺼진 경우, 위치추적이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지 못할 때, 과연 신고자를 찾는 것이 가능한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경찰의 미흡한 초동조치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해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21년 2월 0시49분쯤 한 40대 여성은 "B씨가 나를 흉기로 찌르려고 한다"는 취지로 112에 신고를 했다. 발생 지역이 '광명'이라는 내용도 전달을 했다. 경찰은 즉각 코드제로(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 대응 체제로 들어갔고, 통신사에 요청해 신고자 인적사항을 요청하는 한편, 휴대전화 위치정보조회를 통해 신고자 위치 파악에 나섰다.
하지만 앞선 사건처럼 신고자 휴대전화 전원은 꺼져 있었다. 인공위성을 통해 휴대전화에 설치된 GPS위치를 측정하는 오차 범위는 수m에 불과했지만 사용할 수 없었다.
신고 전화가 접속한 기지국 위치를 기반으로 추적하는 셀 방식도 무용지물이었다. 수백m에서 수㎞ 범주 내에서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신고자 휴대전화 와이파이가 연결된 무선 인터넷 공유기를 통한 위치추적도 진행했지만 이 방법도 수십m 오차 범위가 나온다.
결국 경찰은 통신수사를 통해 수색을 벌였으나 신고자 위치가 파악되지 않자 다시 최초 신고 접수된 내용을 살펴봤고, 그 과정에서 신고자가 중요한 단서로 제공한 가해자 이름을 빠뜨린 사실을 인지했다. 신고자 가족에게 확인 과정을 거쳐 가해자 주소지를 받아 현장을 B씨를 검거했지만 신고자는 이미 살해된 뒤였다.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얻은 단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거주지가 아닌 곳에서 가족들을 만났을 때 "A씨가 시장 부근 원룸에 산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제로 탐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새벽 시간이라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수색할 수 없어서 순찰차로 순찰을 했다고 해명했다.
아예 통신사의 협조를 받을 수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구조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1일 오후 11시10분쯤 울산경찰청 112상황실 수화기 넘어로 남녀가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성의 비명과 함께 전화는 끊겼고 경찰은 신고자로부터 이름과 주소 등 내용을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즉시 신고자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에 나섰지만 신고자의 전화는 회신 설비를 갖추지 않은 '별정 통신사'에 가입된 번호였고 정확한 위치를 추적할 수 없었다. 결국 경찰은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가까운 기지국 중심으로만 주변 수색을 했지만 허탕을 쳤다.
신고 전화 접수 약 2시간 후인 오전 1시쯤 범인이 파출소로 찾아가 자수를 하면서 신병을 확보하게 됐다. 경찰은 그제야 범행 장소에 찾아갔지만 피해자 여성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 시스템 고도화 시급…'민감한' 개인정보활용 사회적 합의 필요
전문가들은 수사력과 별개로 긴급 상황에서 신고자 추적 시스템이 좀 더 고도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 환경과 휴대전화 형태, 기지국의 설치량에 따라 위치 정보의 오차범위가 일률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경진 가천대 로스쿨 교수(개인정보전문가협회장)는 "긴급한 경우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활용은 법으로도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이제 문제가 되는 건 '어떻게 위치 파악의 정확도를 높일까'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예컨대 피해자의 휴대전화가 범죄자로 인해 꺼지면 원격으로 제어할 권한을 경찰에게 주는 방법이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112상황실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경찰서에 위치를 추적하는 기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통신사에서 주는 정보로 수사를 하기 때문에 신고자의 상황에 따라 GPS, 와이파이 정보나 기지국은 셀값이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제품의 휴대전화는 개인정보에 민감해서 신고자가 꺼놓으면 GPS를 못 잡게 설정돼 있고, 중계기가 촘촘히 있는 도심이 아닌 농촌에 거주하는 경우 기지국이 듬성듬성 있어서 오차 범위가 더 넓어진다"며 "만약 위치정보로 다 추적이 불가능하다면 수사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통신자료요청으로 확인할 수도 있지만 아직 시민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비해서는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고 말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파트 같은 경우 주소 위치가 나와도 몇층인지 모르면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일반 주택가면 2~3개 집에 반경 30~50m 이렇게 뜨니까 파악이 가능한데 고층 빌딩이면 발생 위치를 정확히 몰라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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