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재원 대부분 노사 부담…"노사 의견이 가장 중요"
고용보험기금 재원서 정부부담 2%도 안돼…노사 합의 전제돼야
실업급여 하한액 수급 청년층이 최다…사업주 갑질 근절도 필요
- 박혜연 기자, 박상휘 기자, 박동해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박상휘 박동해 기자 = 하루 6만1568원. 한달 30일 기준 184만7040원.
정부와 여당이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행 실업급여 하한액(최저선)이다. 정부는 고용보험기금 재정 악화와 부정수급 등을 문제 삼으며 대대적인 실업급여 손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당장 실업급여 제도를 손보기 전에 고용보험료를 부담하는 노사에 먼저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질적으로 실업급여의 곳간인 고용보험기금은 대부분 노사가 낸 부담금을 재원으로 하고 있는 만큼 노사 합의가 전제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다.
또 정부가 말하는 '공정한 노동시장' 확립을 위해서는 부정수급과 도덕적 해이 문제뿐만 아니라 일부 사업주의 '실업급여 갑질'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고용보험기금 적자, 실업급여가 너무 높은 것이 문제?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노동개혁특위-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포함한 근본적 제도개선 △구직활동을 촉진하면서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예방하기 위한 행정조치 강화 등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이날 "2018년 이후 실업급여 계정의 적자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며 "최저임금에 연동한 하한액과 손쉬운 수급요건이 실업급여 반복수급 등 근로의욕 저하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보험기금은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계정과 실업급여계정으로 운영된다. 고용부에 따르면 고용보험기금의 실업급여계정은 2018년 2707억원 적자, 2019년 1조3731억원 적자, 2020년 2485억원 적자, 2022년 555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2018년 이후 누적된 실업급여 적자로 고용보험기금 재정이 악화한 것은 사실이다. 2017년 10조2000억원이었던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은 2022년 마이너스(-)로 돌아서 3조9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다만 기금 재정 문제에 대해 고용부가 취하는 태도는 정권에 따라 달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1년 9월21일 고용부는 지속되는 기금 재정 악화에 대해 '고용보험 재정건전화 방안 고용보험위원회 의결' 보도자료에서 △OECD 주요 국가들에 비해 낮은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고용 지원 △청년 실업과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맞춤형 청년대책 및 육아휴직 지원 등 지속적인 지출 확대를 주원인으로 설명했었다.
당시 고용부는 실업급여의 하한액이나 수급요건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강화된 실업급여 제도가 코로나19라는 극심한 고용위기를 맞아 수급자들의 소득지원과 생활 안정에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경제위기에 따라 지출이 증가했지만 이는 경기변동의 자동조절장치로서 고용보험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고용부는 고용보험기금 재정건전화 방안으로 보험료율 인상과 정부 재정지원 확대를 꺼내들었다. 고용부는 "재정건전화 방안이 시행되면 2022년부터 재정수지가 개선되고, 2025년에 적립금이 약 8조5000억원에 이르는 등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돼 각 계정 적립배율이 1.0을 넘는 시점(2027년 예상)에서 단계적으로 예수금 상환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 노사 부담금은 10% 증가했는데…정부 재정투입은 77% 감소
실제로 노사가 내는 보험료율은 조금씩 올랐다. 2013년 1.3%(근로자 0.65%, 사업주 0.65%)에서 2019년 1.6%(근로자 0.8%, 사업주 0.8%), 2022년 1.8%(근로자 0.9%, 사업주 0.9%)로 인상됐다. 다만 사업주만 부담하는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계정 보험료율은 2006년 이후 17년째 그대로다.
고용보험기금을 충당하는 노사 부담금도 증가하는 추세다. 고용부가 지난 1월 작성한 '2023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고용보험기금 수입으로 잡히는 2023년도 고용주(사업주) 분담금 수납액 예산은 10조3467억원으로 전년도 예산(9조4121억원) 대비 9.9% 증가했다. 피고용자(근로자) 분담금 수납액 예산은 6조6962억원으로 전년도 예산(6조57억원) 대비 11.5% 늘었다.
반면 정부의 일반회계 전입금은 2020년 1조1502억원, 2021년 1조653억8700만원, 2022년 1조3000억원 등 1조원대 수준을 유지하다가 2023년도 예산안에서 3000억원으로 대폭 축소됐다. 전년도 대비 76.9% 감소한 수치다. 2023년도 예산 기준 전체 고용보험기금 수입 규모(21조6799억원)에서 정부 일반회계 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38%에 불과하다.
즉 2%도 채 되지 않는 돈을 부담하는 정부가 고용보험기금 재정 악화를 이유로 실업급여 제도를 문제삼는 셈이다. 정부가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려면 재원의 대부분을 부담해왔고 그간 보험료율 인상을 감내해온 노사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계는 당정의 실업제도 개선이 사실상 '실업급여 삭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노동자들이 실업급여를 반복해서 수급받는 것은 그들이 그런 일자리를 원해서가 아니라 단기·임시 고용형태의 질 낮은 일자리라는 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꼬집었고, 민주노총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마치 '기금 도둑'으로 몰아세워 실업급여를 깎겠다는 발상은 당장 거두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고용보험기금 적자는 정부가 일반회계로 부담해야 할 출산·육아휴직 급여가 빠져나가는 점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2023년 예산안 기준 고용보험기금에서 모성보호육아지원 사업으로 책정된 금액은 2조1006억원으로, 이는 실업급여(구직급여) 예산(11조1839억원)의 약 18.8% 수준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육아휴직 급여는) 사실 일반회계 부담분이 고용보험 재정으로 들어와서 생긴 것"이라며 "복지제도를 확충하면서 (그 재원을) 기금에서 막 끌어쓰다보니 구조적인 적자 문제가 있고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에서 생긴 문제도 있는데 그것을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의 문제로 돌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 실업급여 최저금액 받는 청년층, 반복수급은 가장 적어…세대 갈등 불씨
앞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담당자는 당정 공청회에서 "여자분들, 젊은 청년들이 계약기간 만료가 된 김에 쉬겠다고 하면서 실업급여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 가고 일할 때 살 수 없었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거나 옷을 사거나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당장 실업급여 최저선이 낮아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30세 미만 청년 구직자들이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연령별 구직급여(실업급여) 하한액 적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도 기준 하한액을 적용받는 비중은 만 30세 미만이 85.0%로 가장 많았다. 당해연도 전체 구직급여 수급자 중 하한액을 받는 사람은 73.1%였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같은 해에 30~39세는 71.2%, 40~49세는 68.5%, 50~59세는 70.2%, 60세 이상에서는 72.0%로 나타났다. 30세 미만 청년층이 최저임금 일자리에서 근무하는 비중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30세 미만은 2018~2021년에도 구직급여 하한액 적용 비중이 88.4~93.0% 사이로 가장 컸다.
반면 실업급여 반복수급자는 연령층이 높을수록 더 많았다. 고용부가 윤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간 반복수급자 연령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반복수급자 10만2321명 중 30세 미만은 5.4%(5570명), 30~39세는 12.1%(1만2423명) 40~49세는 17.9%(1만8298명) 50~59세는 29.5%(3만159명) 60세 이상은 35.1%(3만5870명)이었다.
실업급여 반복수급이 곧 부정수급이라고 볼 수 없지만, '반복수급이 많고 재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실업급여 하한액 조정을 한다면 결국 청년 구직자들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반복수급자가 가장 적은 데 비해 최저선을 적용받는 비중은 가장 높은 청년층에서 고연령층의 반복수급 제한을 요구하는 등 세대 갈등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 "실업급여 못 받게 한다"…사업주 갑질에 우는 근로자들
일부 근로자의 부정수급도 분명 문제가 있지만 5인 미만 사업장 등에서는 여전히 사업주가 퇴직 근로자를 협박, 또는 보복하려는 목적으로 실업급여를 못 받게 '갑질'하는 사례도 계속 나타나고 있어 이를 근절하기 위한 정부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16일 공개한 '실업급여 갑질' 사례를 보면 △정부지원금을 받는 사업장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로 퇴직 근로자와 갈등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사업주가 '고용보험 상실 코드'에서 이직 사유를 '자발적 퇴사'로 허위 신고해 실업급여를 못 받게 하거나 이미 받은 실업급여를 토해내게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A씨는 직장갑질119 카카오톡 상담에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인정받았는데도 가해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자 회사가 '개인 사유로 쓰고 퇴사하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B씨는 "일부 사업의 축소로 인한 권고사직이지만 회사가 정부지원금을 못 받는다는 이유로 절대 (비자발적 퇴사로) 해줄 수 없다고 해서 결국 개인 사유로 사직서를 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업주가 허위 신고를 한 경우 퇴직 근로자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용보험 상실 사유 정정 요청→고용부 심사청구→고용보험심사위원회 재심사 청구→행정소송 등 지난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월 200만원도 되지 않는 실업급여를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절차를 다 밟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장갑질119는 "실업급여가 사장님 쌈짓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직확인서 작성 권한을 노사 양측에 균등하게 부여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한 경우 노동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해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실업급여 지급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하고, 정부지원금 중단 사유에 '자진 퇴사 강요'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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