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의 끝은 재개발…'문래동 철공소'는 사라지나

[문래동 소공장] ②서울 유일 집적지 사라질 위기
특색은 사라지고 결국 생기는 건 아파트와 상가

편집자주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는 1200곳이 넘는 '문래동 철공소'를 통째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문래동 철공소는 사실상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금속가공제작 집적지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장인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러나 임대료 상승과 개발 압력 등으로 지속적인 이주 압박을 받다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운명까지 마주하게 된 것이다. 뉴스1은 40여년간 문래동에서 일을 해온 소상공인들의 사연과 철공소 이전의 직접전 원인인 젠트리피게이션, 또 통째 이전은 실제로 가능한지 3편의 기획물에 담았다.

영등포구 제공

(서울=뉴스1) 박상휘 박혜연 이정후 박동해 기자 = 약 1300개에 철공소가 밀집해 있는 영등포구 문래동이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된 가장 큰 배경에는 급격히 상승한 임대료가 있다. 2015년부터 시작된 문래동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은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철공소를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모습이다.

업체마다 다르지만 임대료는 불과 수년 만에 적게는 1.5배, 많게는 3배까지 오르면서 철공소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높은 임대료 때문에 이미 영업을 접은 철공소도 적지 않다. 철공소가 떠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카페와 술집이 들어섰다.

철공소와 예술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났고 그 덕택에 유명세도 치렀지만 이제는 그 명성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2015년부터 시작된 요식업의 침투…임대료 상승 부추기다

서울시와 영등포구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문래동 1~4가에는 총 250여개의 요식업이 성업하고 있다. 철공소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문래동의 상황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요식업체들의 유입 시기다. 문래동 2가의 경우 2014년까지 24개에 불과하던 요식업이 2015~2019년 38개가 생겼고 2020년 이후에는 50개가 추가로 생겨났다. 요식업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려놓았다고 원주민들은 이야기한다.

문래동에서 제작·용접 업체를 운영하는 김종철씨(65)는 "카페와 음식점이 너도나도 달려들다 보니 임대료가 2배 가까이 올랐다"며 "우리 뒷집도 올라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가게를 접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부동산들이 이른바 기획까지 한다고 한다. 땅 주인을 상대로 기존 임대료보다 2~3배 이상 받아주겠다며 철공소와 계약을 최대한 미루게 하고 카페나 식당을 모집한다는 게 철공소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2010년 초반만 해도 월 50만원에 불과하던 문래동의 임대료는 3배 가까이 올랐다. '문래동 기계금속 산업 집적지 실태조사 및 산업 활성화 컨설팅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으로 문래동 공장의 1㎡당 임대보증금과 임대료는 각각 16만5000원, 1만6000원이었다.

문래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철공소뿐 아니라 창작촌에 정착하고 있는 예술인들도 체감하고 있는 내용이다. 영등포구문화재단과 '영등포활주로'가 지난해 발간한 '문래동 창작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들의 70.7%가 문래동을 떠나는 예술인들을 본 적 있다고 답했으며 절반인 50%는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제공

◇ 임대료 상승과 재개발 압박이 결국 집적지 상실로

문래동 철공소 집적지는 국내 공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곳이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숙련공들이 뭉치면 '탱크 하나 만들지 못하겠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술과 숙련도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문래동 철공소가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고리처럼 얽혀있는 제조 과정에 있다. 문래동 철공소의 특징은 집적지답게 여러 업체가 협업을 통해 제품을 완성시킨다는 데 있다.

이곳을 찾는 2차 벤더들도 문래동 한곳에서 작업을 완료할 수 있다는 것에 가장 큰 장점을 느낀다고 말한다.

실제로 문래동은 금속 가공과 관련해서는 모든 과정을 처리할 수 있다. 금형과 주조, 가공, 용접, 열처리, 표면까지 제작의 모든 과정을 이 안에서 처리 가능하다. 특히 소성가공과 표면처리와 관련해서는 수도권을 기준으로 38%, 28%의 업체가 이곳 문래동에 몰려 있다.

문래동 재개발이 실제로 이뤄지고 업체들의 이전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집적지의 기능은 상실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영등포구도 '통째 이전'이라는 계획을 꺼내들었지만 업체마다 사정이 다르고 또 문래동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업체도 다수라 애초 계획이 무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래동에서 금형업체를 하고 있는 이현철씨(59)는 "옮긴다고 그곳에 거래처가 생긴다는 보장이 있느냐"며 "여기에 있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건데 만약 여기서 우리를 쫓아내면 이제는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개발 이후 우려되는 점 중 하나가 또 적지 않은 숙련공들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집적지가 유지돼야만 새로운 업체도 들어오고 새로운 소공인들의 유입도 일어나지만 이 같은 문화가 사라지면 순환 구조가 사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영등포구 제공

◇ 철공소 없애고 생겨나는 건 결국 상가와 아파트

문래동은 10년 전부터 재개발 압력을 받아왔다. 서울 내에서 낙후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먼큼 재개발 이슈가 없을 수 없는 곳이다.

다만 재개발 후의 모습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문래동 4가의 경우 이미 재건축을 위한 조합이 들어섰다. 영등포구는 문래동 1~3가에 있는 철공소 이전이 이뤄지면 이곳에 복합 상가와 4차산업 관련 시설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4차산업과 관련 시설을 유치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계획과 바람일 뿐 실제로 이뤄질지는 두고봐야 한다.

문래동이 이른바 '힙'하다며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한 배경은 철공소와 창작자들의 조합으로 서울 내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특색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문래역 2번 출구를 나서면 철공소와 건물 곳곳에 벽화와 조형물을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재개발은 이 같은 특색을 오히려 퇴색시키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래동에서 조형 예술을 하고 있는 이지훈씨(가명)는 "땅값이 오르다 보니 건물주가 여러 이유를 들어 임대료를 올리거나 혹은 퇴거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떠났고 재개발이 시작되면 이곳의 특색도 사라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sanghw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