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소화전·횡단보도에도 주소 만든다…왜?

정부, 주소체계 고도화 본격 추진…3차원 입체주소로 전환
사고·재난 시 신속대응 가능…드론·로봇 배송 더 편리해져

서울 동작구 동작구청 인근 횡단보도에 설치된 도로명주소 기초번호판. ⓒ News1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정부가 고가차도에 주소를 부여하는 등 본격적인 '주소체계 고도화'에 나섰다. 건물뿐만 아니라 공터, 사물 등 국토 전반에 주소가 촘촘히 부여되면 일상적인 길 찾기는 물론 응급 구조 등 비상 상황 대응과 물류·유통 산업에서 편의성이 증대될 전망이다. 정부는 주소체계 고도화와 더불어 주소 정보 산업의 해외 진출 지원에도 나선다.

◇ 서울시, 전기차 충전기에 주소 부여…용산구는 고가차도·지하차도에

10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 24일 단계적으로 시내 모든 전기차 급속충전기에 주소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주소가 부여되면 운전자들이 내비게이션에서 전기차 충전기를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용산구는 지난달 24일 구내 고가차도·지하차도에 첫 입체 도로명 주소를 부여했다. 기존 주소 체계에서는 평면에만 주소가 부여됐던 만큼 고가도로, 지하도로 등에는 주소가 없었다. 이번 주소 부여로 해당 차도에서 교통 사고 등 비상 상황 발생 시 더 빠른 대처가 가능해진 것은 물론 자율주행차 등의 운행 정확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서초구도 지난 3일 서울고속터미널과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 점포 등에 개별 주소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상가 점포마다 주소를 부여해 특정 점포를 손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실내 내비게이션'을 실현한다는 게 서초구 구상이다.

◇ '주소체계 고도화'…2026년까지 도로 주소 4배 확대

정부가 이처럼 기존에 주소가 없던 위치에 주소를 부여하는 '주소체계 고도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주소체계 고도화'는 2차원 평면개념인 현행 도로명주소를 3차원 입체주소로 전환하고, 건물에만 부여하던 주소를 사물·시설물·공간 등으로 확대해 전 국토에 세분화된 주소를 부여하는 게 골자다. 주소 체계의 정확성·범용성을 높여 행정·산업·재난 대응상의 효율을 높이는 취지다.

행안부는 이를 위해 2021년 도로명주소법 개정에 이어 '제1차 주소정보활용기본계획'(2022~2026년)을 수립해 추진 중이다. 우선 아직 도로명주소가 없는 지방 농로 등으로 도로명주소를 확대한 뒤 도로명주소와 연계한 사물주소·기초번호를 새로 도입하고, 기존에 공개가 되지 않았던 국가지점번호를 인터넷상에 공개하는 게 사업 내용이다.

사물주소는 도로명주소(삼양로19길 101)와 마찬가지로 도로에 부여된 명칭(삼양로19길)에 개별 번호를 덧붙여(삼양로19길 223) 전기차충전소, 옥외 지진대피소, 소화전 등 시설물과 사물을 주소 체계에 편입하는 내용이다. 기존 도로명주소의 건물번호 대신 시설물·사물 번호를 부여한 셈이다.

기초번호 또한 같은 원리로 도로명에 번호를 더해 도로변의 가로등, 전신주, 통신주 등에 주소를 부여한다. 지하상가의 점포별 주소 부여도 도로명에 기초번호를 더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야산 등 도로명주소와의 연계가 곤란한 지역에서는 국가지점번호를 활용한다. 국가지점번호는 전 국토를 '10×10m'의 격자형으로 구획하고 구획 지점마다 위치 표시 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등산로, 해안가 등 주소가 없는 사고다발 지역 중심으로 전국에 7만4000여개가 지정돼 있다.

다만 국가지점번호는 지금까지 보안상 이유로 인터넷 지도 등에 위치가 공개되지 않아 사람이 실물 국가지점번호판을 직접 찾아야만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었다. 이에 행안부는 지난해부터 국가지점번호판 위치를 주소정보누리집에 모두 공개하고 모바일 서비스 제공을 시작했다.

행안부는 기본계획에 따라 2026년까지 도로 주소의 경우 현 지상도로 16만개에서 지상·고가·지하·내부도로, 실내 이동경로 64만개로 4배 이상 확대하고, 도로 외 주소는 현 건물 700만개에서 건물·사물·공터 등 1400만개로 2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시민이 드론으로 피자 배달을 받은 모습. ⓒ News1

◇ 위기상황 신속대응…물류산업 패러다임 전환

주소체계 고도화가 이뤄지면 우선 조난·사고 등 재난 상황에서 더욱 신속·정확한 대응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예컨대 고가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난 경우 입체주소, 야산에서 등산객이 조난된 경우 국가지점번호를 통해 빠르고 정확하게 사고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지하철 역사 화장실 등 실내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한 경우에도 도로명주소나 소화전 등 사물주소를 통해서 정확한 위치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주소체계 고도화로 산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전망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주소를 부여한다는 것은 특정 위치를 국가 공공 데이터서비스에 정식 등록하는 것"이라며 "전 국토의 '공공 데이터화'가 이뤄지면 기업들은 별도 비용 없이 관련 산업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물류·유통 산업에서 고도화된 주소체계의 쓰임새가 극대화될 전망이다. 미국 기업들을 필두로 유통 산업은 드론·로봇 등 기계를 이용한 배달서비스로의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 있다.

해외에서는 아마존·월마트·구글 등이 이미 지난해 미국 등에서 상업용 드론 배송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한국에서도 세븐일레븐이 경기 가평군 펜션 지역과 편의점을 잇는 배달 서비스에 드론을 활용 중이다.

드론·로봇 배달 서비스를 위해서는 세분화된 디지털 주소 정보가 필수적이다. 드론 등은 사람과 달리 정확한 위치 좌표가 있어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도화된 주소체계의 해외 수출도 목전에 두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주소 체계가 없는 탄자니아, 에티오피아의 장관이 한국 주소 체계를 도입하고 싶다고 해서 올해 현지 출장을 계획 중"이라며 "현지 사정과 요구 수준을 파악해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주소 제도를 지원해주고 나서 내비게이션·지도 서비스 기업, 데이터 기업 등의 현지 진출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alicemunr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