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표 내고 목수·타투이스트로 변신한 MZ세대 그들은 왜?

"두려웠지만 지금이 더 행복"…돈보다 '성취감' 더 중시
전문가 "직장에 대한 인식 전환·창의력 발휘 욕망 바탕"

최지문씨(28)가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는 모습(독자 제공)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육체적으로는 예전보다 힘들지만 훨씬 행복하고 성취감을 느껴요"

지난 10일 서울 관악구에서 만난 최지문씨(28)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어렵게 들어간 광고 회사를 그만두고 목수(인테리어) 일을 시작했다. 최씨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둘 땐 걱정이 많이 됐지만 꿈에 도전하고 싶었다"며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재밌고 앞으로 전문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MZ세대에게 '평생 직장'은 이미 먼 나라 이야기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주저 없이 퇴사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이 첫 직장을 다니는 기간은 18.8개월에 불과했다.

MZ세대는 조기 퇴사의 이유가 단지 '급여·워라밸 추구·근무 환경'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직접 MZ세대를 만나서 이유를 들어봤다.

◇ "삼성전자 퇴사 두려웠지만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건강 디저트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정지석씨(30)는 얼마 전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직원이었다.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이었지만 정씨는 늘 허전했다. 그렇게 2년 만에 사직서를 던졌다.

모두가 말렸다. 하지만 정씨는 "회사에서 6개월 뒤에도 내 모습이 지금보다 더 나을까를 생각해 봤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일에도 성취감을 크게 느끼지 못해서 어릴 때부터 꿈꿨던 창업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건강 디저트 브랜드 '안낭시에' 대표 정지석씨(30)가 빵을 들고 있는 모습(독자 제공)

정씨는 회사를 그만둔 뒤 비건(Vegan) 빵 사업을 구상했고 2021년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200만원이었던 매출은 지난달 기준 8000만원을 상회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정씨는 "퇴사할 땐 걱정이 많이 됐지만 젊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며 "직장을 다닐 때보다 훨씬 고생하지만 원했던 일을 한다는 점에서 하루하루 행복하다"고 웃었다.

대학교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전공했지만 미술이 하고 싶어 타투이스트에 도전한 청년도 있다.

박성주씨(28)는 4년 넘게 배웠던 컴퓨터 공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박씨는 오랜 시간 취준(취업 준비)을 했지만 입사 1년도 되지 않아 퇴사를 선언했다.

박씨는 "현실적으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입사했지만 미술에 대한 꿈이 생각나 버티기 힘들었다"며 "방향을 잃고 회사에 다녔는데 퇴사 후 뭘 해야 할지 명확해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첫 작업을 했다는 박씨는 "예전보다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원하던 꿈에 도전한다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 중요한 것은 '성취감'…"창의력 발휘, 주도적 근무 욕구"

MZ세대들이 주저없이 사표를 던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MZ세대의 달라진 가치관과 이와 동떨어진 기업문화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로 지난해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112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은 MZ세대의 조기퇴사가 많은 이유로 △개인의 만족이 훨씬 중요한 세대 △평생직장 개념이 약한 환경에서 성장 △참을성이 없음 △시대의 변화에 조직문화가 못 따라간다고 분석했다.

목수 일을 하는 최씨는 노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성취감'을 꼽았다. 최씨는 "취직하고 회사의 일원으로 광고를 만들어도 기쁘지 않았다"며 "주체적으로 일을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훨씬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에 오래 다닌 기성세대가 결국 권고사직 당하는 것을 보며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일이 없을 때도 있어서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일을 할수록 더 흥미를 느끼고 전문 기술자로서 '비전'도 있다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2일 대구 북구 영진전문대 백호체육관에서 열린 '2022 영진 취업박람회'를 찾은 한 취업준비생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2022.9.22/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전문가들은 직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특임교수는 "과거에 비해 새로운 직장이나 일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온라인으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도전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많아졌다"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획일적인 삶의 방식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문화로 한국 사회가 바뀌고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장인으로 고된 삶을 살아야 하는 조건과 수평적이지 않은 회사 환경에 상사의 모습을 보며 동의하지 못해 퇴사하는 청년들이 있을 것이다"며 "이런 현상에는 임금 노동자를 떠나서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일하는 것의 욕구가 밑바탕에 깔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bc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