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의 재구성]①17년간 4.5조 빼갔다…사회공학· IT기술까지 결합

①전문인력 갖추고 신기술 활용…범죄 수법 '일신우일신'
"보이스피싱, '나는 안당한다' 자신 말고 공부해야"

편집자주 ...보이스피싱, '나는 똑똑하니까', '젊으니까' 안당한다고? 그렇지 않다. 보이스피싱 일당들은 최신 IT·금융기술은 물론 사람의 심리를 노리는 사회공학적 해킹까지 동원하고 있다. '목숨걸고' 진화 중인 보이스피싱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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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보이스피싱 범죄가 진화하고 있다. 과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희화화됐던 해외 동포의 어눌한 말투는 더이상 없다. 이제는 한국에서 건너간 상담원들이 철저한 시나리오를 훈련받은 뒤 피해자들을 농락한다.

인력 구성뿐만이 아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들은 수사기관과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금융·통신업계의 첨단 기술까지 도입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젊다고, 나는 어리석지 않다고 조금만 방심하면 누구든 홀린 듯 감쪽같이 피해를 입을만큼 보이스피싱 범죄는 교묘하고 철저하게 발전하고 있다.

27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국내 보이스피싱 범죄는 최초로 발생한 지난 2006년 1488건을 기록한 이후, 2013년 2만건, 2018년 3만건을 돌파했고, 지난 2019년 3만 7667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피해액 역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7년간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을 모두 합하면 4조4827억원에 이른다. 웬만한 광역자치단체 1년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다.

수사기관 및 정부당국의 노력과 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2020년 3만1681건 △2021년 3만982건 △2022년 2만1832건으로 최근 몇년간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는 줄었다. 그러나 오히려 건당 피해금액은 1699만원(2019년), 2210만원(2020년) 2500만원(2021년), 2490만원(2022년)으로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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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눌한 보이스피싱, 더이상 없다…"첨단·전문화되는 추세"

보이스피싱 범죄는 크게 경찰이나 검찰 등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과 대출을 갈아타라고 유도하는 '대출사기형'으로 나뉜다.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들은 한국에서 '엄선한' 상담책 조직원들에게 범죄 시나리오를 철저히 교육시켜 피해자들이 의심조차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수사를 경험한 한 일선 경찰관은 "실제로 과거 검거된 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기존 한국인 조직원의 친구나 지인 중 직장을 못구했거나 큰 빚을 진 사람, 가족 병원비 등 사정이 있는 사람들만 골라 상담책으로 데려간 곳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조직원들의 충성심을 높여 수사기관 신고를 막고, 피해자를 속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훈련시키기 위해서다.

실제로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과에 따르면 한 대출사기형 범죄조직의 경우, 이렇게 훈련받은 상담원들이 대출을 원하는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게 해 전화를 가로챈 뒤 여러명의 상담책이 돌아가며 경찰, 금융감독원, 은행 상담원 등을 사칭해 감쪽같이 속이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청 '당신이 보이스피싱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 홍보영상 갈무리 /뉴스1

◇번호변작·가상자산까지…전문인력까지 보이스피싱 범죄 가담

상담책뿐만이 아니다. 수사기관에서는 통신·금융 기술자 등 전문 인력들까지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해 지속적으로 범죄에 활용할 수단을 찾아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 중이다.

이들은 해외 전화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활용되는 것이 세간에 알려지자 인터넷 전화(070)를 썼고, 이 역시 알려지면서 국제전화나 인터넷전화 번호를 국내 전화(02, 010)처럼 속이는 기계인 '심박스'(SIM-BOX)까지 동원하고 있다.

또 수사기관에서 심박스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COD'(Calls on Other Devices) 기술 등을 이용한 번호변작 등 각종 기술이 지속적으로 범죄에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 쪽에서도 대포통장이 당국의 강력한 단속으로 공급이 줄어들고 지급정지되는 경우가 많아지자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자결제대행(PG) 업체와 손잡고 허위 가상계좌를 발급해 사용하거나, 아예 추적이 더 어려운 가상자산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범죄까지 등장했다.

국내 1위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 중인 두나무에 따르면 지난해 업비트에 신고된 전기금융통신사고 신고 건수는 310건에 달했다. 그중 약 80%가 '기관사칭형'이었으며, 나머지는 자녀사칭, 해외 결제사기 등이었다.

두나무 측은 "업비트는 현재 보이스피싱 피해 전담 24시간 콜센터를 운영 중"이라며 "이용자가 보이스피싱 피해 인지 후 고객센터를 통해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를 하면 해당 계좌를 동결하고 수사기관 신고를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News1 신웅수 기자

◇범죄 '진화'에 수사기관·당국·업계도 힘모으지만…"국민들도 주의 필요"

이같은 보이스피싱의 '진화'에 수사기관과 당국은 물론 금융 및 가상자산 업계, 통신사 등에서도 보이스피싱 범죄 차단을 위한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는 총리실을 중심으로 금융위·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참여하는 보이스피싱 대응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경찰 역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금융기관, 통신사, 단말기 제조업체 등 부처 및 민간 기관과 예방과 제도 개선 등을 위해 협력 중이다.

일례로 서울경찰청은 두나무 측과 지난해 3월 디지털 자산 관련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업무 협의회를 열었다. 양측은 가상자산 관련 불법행위 수사 협력, 가상자산 전문지식 및 최신 동향 교류 등을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 대응을 강화하기로 합의하고 업무 협력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유지훈 보이스피싱 경찰청 금융범죄수사 계장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들도 사활을 걸고 진화 중"이라며 "수사기관과 당국에서 예방 활동, 계도에 힘쓰고 있지만 범죄 조직들도 계속 회피 수단을 마련하고 있어 국민들께서도 이에 대해 공부하고 주의하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Kri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