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이유…보상금 받은 유족 23%뿐"

[독립운동가 후손이 전하는 현실] ②김영조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총장
"행방불명된 유족도 합의해야 보상금…대통령령만 고치면 되는 문제"

편집자주 ...3·1절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부터 지정된 국경일로, 광복 이전부터 독립운동가들과 우리 민족의 기념일이자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104년이 흐른 지금, 국가와 사회의 외면 속에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마음 한편에 간직해왔던 자부심마저 초라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뉴스1은 3·1절 104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목소리를 3편의 기획물에 담아 송고합니다.

김영조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총장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3.2.27/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순국선열 후손들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말한다. 독립유공자 서훈이 이뤄졌는데도 보상금을 받은 후손이 23%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서울=뉴스1) 박상휘 박지혜 박혜연 이정후 기자 = 김영조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총장(76)은 27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유족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만나 이같이 지적했다. 선열들이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바쳤지만 후손들이 힘이 없어 독립유공자 예우는커녕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김 총장은 답답해했다.

학계와 유족회에 따르면 구한말 의병을 포함해 일제에 무장투쟁 운동을 벌이다 희생된 순국선열은 최소 15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대부분 이름과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독립운동 기록이 남아 있는 3500여명(2%)만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유족이 보상금을 받은 경우는 804명(23%)뿐이다.

문제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법)의 보상금 규정상 순국선열의 유족은 아들과 손자까지만 보상금을 지급하게 한 것이다. 일제의 국권침탈과 그에 대항하는 무장 투쟁운동이 사실상 19세기 말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순국선열들의 후손은 현재 증손대 이후만 남아 있다.

김 총장은 "독립운동 역사는 명성황후 시해가 벌어진 을미사변(1895년 8월20일)부터 광복 전일(1945년 8월14일)까지 총 51년으로 봐야 한다"며 "유족 보상금 법이 처음 제정된 1965년은 광복으로부터 20년이나 지난 후라 (독립운동가) 손자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족회가 꾸준히 문제를 제기한 끝에 2012년 법이 개정됐다. 개정된 현행법에 따르면 광복 전 사망한 독립유공자 중 한 번도 보상금을 받지 못한 유족은 직계비속 중 1명을 손자로 간주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개정안에도 허점이 있었다. 보상금을 신청한 유족은 반드시 다른 직계비속들과 완전 합의를 봐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광복 이후 6·25 전쟁 등 사회 혼란기를 거치면서 독립운동가들의 직계 후손들은 월북했거나 해외로 이주하는 등 행방불명된 경우가 많다. 호적에는 남아 있지만 행방불명이 된 다른 유족들을 찾아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보상금을 신청하지 못하는 셈이다. 호적 정리를 위해 행방불명 신고를 하려고 해도 행방 불명자의 직계 가족이 아닌 이상 신고 자격도 없다.

김 총장도 고조부 김준모 지사가 안동 지역에서 유명한 한학자이자 의병 소모장으로 활약한 점이 참작돼 2006년 독립유공자 서훈(애국장)을 받았지만 행방불명된 유족 5명과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받지 못한 사례다.

김 총장은 "법이 개정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보상금을 못 받았던 순국선열 후손 750여명 중 보상금을 새로 신청해 받은 사람은 80명 정도"라며 "완전 합의 대신 유족 4분의 3 이상 합의로 시행령만 개정해도 행방불명자를 걸러낼 수 있는데 정부에서는 '돈과 관련된 일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유족 간 완전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답변이 왔다"고 한탄했다.

김영조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총장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3.2.27/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김 총장은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대거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의성 김씨 문중 소속이기도 하다. 의성 김씨 문중은 퇴계 이황의 학맥을 정통으로 이은 서산 김흥락 선생을 중심으로 안동에서 위상이 높았기 때문에 경북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할 만큼 당대 유림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컸다.

의성 김씨 문중에서는 수백만 평에 달하는 전답을 대부분 독립운동자금을 위해 처분하고 만주로 넘어가 본격적인 독립 투쟁에 뛰어든 이가 많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만주벌 호랑이'라고 불리는 일송 김동삼 선생이다.

일송은 만해 한용운 선생과 심산 김창숙 선생, 김좌진 장군, 지청천 장군 등 거물급 독립운동가들이 한목소리로 존경을 표하는 인물이지만 현재 그 후손들은 월 20만원 상당의 노인연금에만 의존할 만큼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은 "(김동삼 선생의) 후손 분들이 지금 살기가 굉장히 어렵다. 보상금도 못 받는다"며 "이분들도 보상을 받도록 법을 바꿔야 하는데 문제다. 일송과 같은 억울한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또 새로 발굴된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추가 서훈 작업도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족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1월 유족회가 신청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22명에 대한 서훈 결정을 유보했다. 국가보훈처는 '심사가 더 필요해 올 8월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 총장은 "1930년대에는 미국과 영국, 스페인 등 열강들이 전부 일본 편을 들어서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련에 기대했다"며 "사회주의 이념을 갖고는 있었지만 독립운동의 국격까지 무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순국선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나 형편없다"며 "순국선열유족회를 국가유공자 공법단체로 하고 보상금을 제대로 보상하고 국민들이 순국선열을 기리고 참배할 수 있는 추념관을 짓는 것이 우선순위인데 (지금까지) 안 되는 것은 후손이 적으니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순국선열들은 나라를 위해 자발적으로 재산과 목숨을 다 희생했기 때문에 이 얼과 혼은 민족정기로 봐야 한다.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도 순국선열의 정신을 민족 정체성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조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총장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3.2.27/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혜연·이정후 기자)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