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에 이태원 참사 분향소 설치…세월호 천막 갈등 재현되나

5년여간 '불법' 상태로 머물렀던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
9년 전에는 시·정부가 예외적으로 설치 받아들여

'10·29 이태원참사' 100일을 맞은 지난 5일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 News1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이태원 참사 유족 측이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기습 설치한 가운데 서울시는 6일 오후 1시까지 자진 철거가 이뤄지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영정까지 갖춰진 분향소를 일방적으로 철거하기에는 부담이 따르는 만큼 과거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천막'을 두고 벌어졌던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와 참사 유족 평행선…강제 집행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이태원 참사 유족 측은 분향소 설치를 두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던 지난 4일 오후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다. 서울광장을 사용하려면 '서울특별시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등에 따라 허가를 맡아야 하는 만큼 이는 '불법시설물'이고 철거 대상이다.

이에 시는 설치 직후 유족 측에 '6일 오후 1시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에 나서겠다'는 입장의 계고장을 전달했다.

유족 측도 "더 이상 시민들의 추모를 가로막지 말고 분향소 운영에 적극 협조하라"며 팽팽히 맞섰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며 철거 시한에 이목이 쏠리지만, 자진 철거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시가 강제 집행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지자체가 물리력을 동원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이유다.

시는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으로 광화문 일대 농성장을 행정대집행으로 철거한 바 있는데, 당시 5톤 트럭 5대와 지게차 등 차량 10대, 직원 100여명과 고용 용역 200여명 등 대규모의 인력과 장비를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활한 집행을 위해 경찰 1000여명과 소방 50여명도 투입됐다. 집행 과정에서 부상도 다수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서울광장 분향소의 경우 규모가 비교적 작지만, 철거시 여전히 분향소 측보다 많은 시측 인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가 유족 반발 속에 이처럼 대규모 인원으로 강제 철거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019년 2월 철거를 앞둔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 모습. ⓒ News1

◇'세월호 천막 갈등' 재현되나

철거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가 제 2의 '광화문 광장 세월호 분향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월호 참사 일부 유가족은 지난 2014년 7월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달 뒤인 8월에는 프란치스코 당시 교황도 농성장을 방문하며 광화문 광장은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이후 지난 2019년 3월까지 세월호 참사 분향소 겸 농성장은 약 5년간 광화문 광장을 지켰다.

당시 중앙 정부의 편의지원 요청에 고 박원순 시장이 화답하며 설치가 용인됐으나, 14개 천막 가운데 3개가 형식상 불법시설물이었던 만큼 광화문 광장 분향소를 두고 사회적 갈등이 잇따랐다.

추모를 위해 농성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과 불법시설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는 가운데 보수 단체 등은 고 박원순 시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분향소가 철거된 이후인 지난 2019년 5월에는 당시 애국당이 광화문 광장을 강제 점거하면서 세월호 천막과의 형평성 논리를 앞세우기도 했다.

시가 마찬가지로 불법인 세월호 천막에는 5년간 점유를 허용한 반면 애국당 천막에는 즉각 조치를 취하는 등 '이중잣대'를 적용한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시와 애국당 측은 행정대집행과 무단 재점거를 주고 받으며 민사 소송을 벌이는 등 극한 갈등으로 치달았다.

당시 시는 세월호 천막이 예외적인 경우라고 밝혔으나 일각에서는 명확한 기준 없는 행정이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세월호와 이태원…그 차이는

형식적 불법성에도 광화문 광장 세월호 분향소가 5년 가까이 지속된 것은 '합의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4년 당시 안전행정부는 세월호 참사 직후인 4월21일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 "장례의식과 관련된 편의 제공, 유족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 등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드린다"며 유가족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시가 이를 받아들이며 광화문 광장 천막 설치에 직접 나섰다. 당시 광장에 펼쳐져 있던 천막 14개 가운데 11개가 서울시 소유였다.

천막을 유지하는 대신 형식상 불법시설물인 3개 천막에 대해서는 추후 변상금을 납부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졌고, 유족 측은 광화문 광장에 천막이 세워져 있던 총 55개월분의 변상금으로 1891만원을 최종 납부했다.

형식상 결함이 있었지만 결국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던 셈이다. 이에 이번 사태에서도 정부·시와 유족 간 협의로 강제 철거 혹은 불법시설물 존치라는 양자택일 상황을 벗어난 중재안이 도출될 수도 있다는 다소 희망 섞인 예측도 나온다.

alicemunro@news1.kr